투기꾼 대신 주민이 웃는 주거정비사업, 서울·부산서 성과

기존 건물을 부수고 아파트 등을 새로 지어 올리는 재개발·재건축 대신 낡은 집을 고치고 마을길과 상하수도 등을 정비하는 ‘마을만들기’가 확산되고 있다. 부동산가치 상승을 노린 건물주와 개발업자들이 세입자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강제철거와 환경파괴 등 부작용을 낳았던 ‘속성’ 재개발 방식을 지양하고, 마을 공동체를 살리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자는 움직임이다. 마을만들기는 특히 동네 텃밭, 마을회관 등 필요한 시설을 주민 스스로 제안하고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정부나 기업이 주도하는 정비방식과 차이가 크다. 
 
25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도시재생, 근린재생으로도 불리는 마을만들기 사업은 서울의 재건축 해제지역 등 13개구 22개 마을에서 지난 2009년부터, 부산의 25개 지역 44개 마을에서 지난 2011년부터 1차로 추진되고 있다. 국토부는 또 최근 전북 전주시와 경남 창원시를 시범지역으로 지정하고 마을만들기 지원을 위한 ‘도시재생법’ 입법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 4일에는 서울시청에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심포지엄이 열려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이 향후 추진 방안을 토론하기도 했다. 

서울 방아골, 주민 주도 계획 수립만 1년 걸려

서울시의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을 이끌어온 코레스 도시환경연구소 유나경 소장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도봉구 방학동 방아골을 예로 들며 ‘마을만들기는 주민참여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유 소장은 “방아골에서 가장 고민했던 것이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었다“며 ”주민들이 사업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전문가와 함께하는 워크숍 8번, 주민 자체회의를 6번 열었고 소식지를 만들어 동네 곳곳 배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 방아골 마을만들기 진행 과정. 워크숍과 회의를 통해 생각을 모으고 함께 의논하는 과정이 마을만들기에서 중요하다. ⓒ 서울시

“마을 통장, 반장님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마을길과 주차시설, 자투리 공지 등을 살피고 어떤 문제와 잠재력이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대화를 기록하고 돌려보면서 주민들이 마을 상황을 이해하게 했습니다. 사업을 이끌어갈 주민대표를 뽑고 의논할 기구도 만들었습니다. 워크숍이 세 번 쯤 열렸을 때, 주민들 스스로 마을회관 설립, 쓰레기 공동집하장 설치 등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문제와 필요를 파악한 후에는 논의를 구체화했다. 마을회관, 텃밭 등 공공의 공간배치와 집 앞마당, 앞길, 주차장 등 사적공간의 조정을 의논했다. 토의 결과를 반영해 마을 규약도 준비했다. 최종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는 예산이나 법적 제약 등 각 사업의 현실성을 따져 우선순위와 진행방식을 협의했다.

▲ 방아골 마을의 주민 자치 활동. ⓒ 서울시

주민들은 처음에 사업에 대한 불신이 컸지만 교육과 협의를 거치면서 인식의 변화를 보였다. 또 ‘내 집’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우리 동네’로 생각을 확장했다. 그러나 주민 중에는 ‘마을만들기를 하면 앞으로 재개발을 못한다’며 반대하는 이도 있어 갈등이 없지 않다고 유 소장은 털어 놓았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면서 공동체 운영의 비용문제 등 부담 해소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과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현재 방아골에는 마을 학교와 마을 까페가 운영되고 있으며 마을버스 등 자치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다.

부산 산복도로마을에는 공모로 뽑은 활동가 투입  

부산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해온 한승옥 부산시 산복도로마을지원센터장은 ‘산복도로 르네상스사업’을 설명했다. 산복도로 주변 마을은 고령인구비율과 기초생활 수급비율이 높고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대표적 빈민촌이다. 노인들과 편부편모 가정이 많아 마을만들기의 주체가 될 사람들이 부족했다. 그래서 부산시는 주민들을 위해 뛰어 줄 마을활동가를 공모했다. 이들은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파악해 전문가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심포지엄'에서 한승옥 센터장이 부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이성제

피난민 정착지였던 산복도로 주변마을은 상하수도 시설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구릉지가 많아 교통도 불편하다. 주택도 무허가로 지은 불법건축물이 많다. 부산시는 ‘달동네’라는 지역특성을 살리면서 에너지를 덜 쓰는 적정기술을 도입하고 문화예술사업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한 센터장은 설명했다. 현재 4개 지역에 2차년도 사업까지 진행된 상태다. 초량 지역의 ‘이바구 길’은 언론에도 널리 알려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고 감천 문화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불리며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지난 5일에 산복도로 지역을 안내하는 마을기업이 들어서는 등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 마을만들기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부산 감천문화마을. ⓒ 박세라

부산시는 또 도시 전체적으로도 쇠퇴하는 마을이 많다는 점을 중시, 전체 214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소득·고용·건강장애 등 사회적 지표를 반영한 ‘결핍지수’를 산출한 뒤 결핍이 심각한 마을부터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결핍심각마을로 지정된 곳은 5%인 11개동이다. 부산시는 또 마을만들기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자치구 단위의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를 만들어 전문인력과 주민조직도 키우고 있다.

도시재생법 올해 안 통과 기대

한편 국토부가 마을만들기 지원을 위해 입법추진 중인 도시재생법은 현재 국회 법안심사소위에 넘어가 공청회를 기다리고 있고, 올해 안에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토부 도시재생사업단 이영은 총괄과제팀장은 “도시재생에는 보건과 환경개선, 마을기업 만들기 등 여러 부처의 업무가 연관돼있어 이를 총괄조정할 기구도 필요하다”며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의 기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또 “지자체마다 지역 활동가가 부족해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며 “현장과 밀착되지 않으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만큼 지역마다 마을활동가를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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