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서울미술관,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석파정과 미술관의 인연

서울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 잡아 서울답지 않게 맑은 공기가 감도는 고즈넉한 곳, 거기에 서울미술관이 있다. 서울미술관은 미술애호가인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사립미술관이다.

▲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 ⓒ 서울미술관

미술관 말고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별장으로 사용한 ‘석파정’이 미술관 터에 포함돼 처음 시민에게 공개됐다. 석파(石坡)는 흥선대원군의 호로, 그 자신이 빼어난 화가였다. 그는 특히 난을 그릴 때 독특한 난법(蘭法)을 구사해 ‘석파난(石坡蘭)’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석파정에 미술관이 생긴 게 우연이 아닌 듯하다. 

개관기념전인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에서는 한국 근대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둥섭’은 이중섭의 이름을 서북방언으로 부른 것이며, ‘르네상스’는 부산 피난 시절 예술인이 즐겨 드나들던 다방이다.

▲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 전시 포스터. ⓒ 서울미술관

1952년, 르네상스 다방에서 동인전인 ‘기조전’을 열었던 이중섭, 한묵, 박고석, 이봉상, 손응성에, 이듬해 소품전을 연 정규까지 여섯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섭의 유명작 ‘황소’와 ‘자화상’을 비롯해, 작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친필편지도 볼 수 있다.

피난지에서 꽃핀 한국 미술의 르네상스

“회화 행동의 길이 지극히 준엄한 것이며 무한히 요원한 길이라는 것을 잘 안다. 만일 아직도 우리들의 생존이 조금이라도 의의가 있다 친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일에 대한 자각성이어야 할 것이다. 진지하고도 유효한 훈련과 동시에 우리들은 먼저 한 장이라도 더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유의하고 싶다.”

그 당시 기조전에 부쳐 서양화가 박고석이 쓴 서문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한국전쟁 중에도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은 예술가들의 열정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1950년대 작품들은 작가 평생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부산에서 제주로, 제주에서 다시 부산으로 피난을 다니는 중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던 여섯 화가들. 서울미술관이 개관전으로 그들의 작품을 초대한 것은 박고석의 말처럼 ‘한 장이라도 더 그릴 수 있’도록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이들의 작가정신을 한데 모아 재연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주헌 관장은 지난 21일 ‘인문교양특강’을 위해 서울미술관을 찾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어렵고 혼란한 전쟁통에 그들은 자신들의 르네상스가 오길 간절히 바랐겠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다방에서 전시회가 열렸던 그 당시가 우리 근대 미술의 르네상스였음을 부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이도 근현대 미술가 이중섭과 박수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러브레터 밖 이중섭의 슬픈 자화상

이중섭이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한국명 이남덕)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아고리(이중섭의 일본식 별명) 군은 머릿속과 눈이 차츰 더 맑아지고 자신감이 넘치고 넘쳐서 번쩍번쩍 빛나는 머리와 안광으로 제작, 제작-표현 또 표현을 계속하고 있다오. 한없이 살뜰하고 한없이 상냥한 나만의 천사여, 더욱더 힘을 내어, 더욱더 올차게 버텨주시요. 기필코 화공 이중섭 군이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군을 행복의 천사로 높게, 아름답게, 널리 빛내어 보이겠소.’

▲ 이중섭, '자화상'.

이는 한국전쟁 중 일본으로 피난간 아내에게 보낸 중섭의 러브레터다. 편지에서 자신감이 넘친다는 이중섭의 실제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한국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화풍에 등돌린 세간의 평가와 가족과 떨어진 슬픔에 조금씩 병들어갔다.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힘들었던 중섭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려는 듯 섬세한 필치로 <자화상>을 그렸다. 퀭한 눈, 푹 팬 볼, 단호하지만 쓸쓸한 눈빛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자화상>을 보면 그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이중섭이 “백정과 소도둑도 나만큼 소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민중을 상징하는 소를 철저히 관찰했던 그의 걸작 <황소>도 공개된다. 소를 너무 열심히 본 나머지 소도둑으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던 이중섭은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소를 보고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다만 철저하게 관찰한 소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구조화하고 소의 본질만 남겨 특유의 시원한 필치로 소를 그렸다. 그리 크지 않은 캔버스에 담긴 <황소>는 작은 덩치에도 그림을 뚫고 나올 듯한 생생한 위용을 자랑한다. 

▲ 이중섭, '황소'.

닭으로 부부의 정을 표현한 <환희>, 첫아들을 잃은 슬픔에 그리기 시작한 아이들 그림, 종이를 살 돈이 없어 초콜릿이나 담뱃갑 포장지에 그린 은지화, 이중섭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습작 <활 쏘는 남자> 등도 전시되어 있다.

술 심부름에 지친 아내의 초상화 

▲ 이봉상, '초상'.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이봉상 작가의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이봉상의 잦은 술 심부름에 지친 듯한 아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초상>을 포함한 15점이 유족의 도움으로 전시됐다.

“고향인 평양이란 고장이 우선 인간으로 하여금 정서적인 혹은 시정신 같은 것을 간직하게끔 수려치묘(秀麗致妙)한 자연적 조건을 너무나 많이 간직하고 있다 하겠다. 산수의 짜임새가 보통이 아니었다.” ‘산의 화가’라 불릴 만큼 산을 그리는 데 능숙했던 박고석 작가를 향한 찬사이다. 대표작 <노적봉>과 연필스케치 <서울풍경>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추상화가 한묵의 초기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미술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모던보이들의 작품을 따라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면 한 켠에 재현된 그 시절 르네상스 다방에서 달콤한 다방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맛볼 수도 있다. 11월 21일까지. 성인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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