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시청등급 등 유해성 관련 정보도 제공해야

‘인기폭발’, ‘흥행질주’, ‘신드롬’ 등은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홍보하는 기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구다. 홍보성 기사는 배우와 감독, 줄거리 등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흥행 요소까지 짚어주면서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짧은 길이에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홍보 기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시청 등급이나 프로그램의 유해성에 관한 정보다. 프로그램의 기본정보에 해당하는 시청 등급을 알려주지 않는 홍보성 기사, 콘텐츠가 담고 있는 유해성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 언론의 보도 방식은 괜찮을까?

‘인기 폭발’, ‘신드롬’ 등의 표현이 담긴 프로그램 홍보 기사들의 제목. 모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기사 화면 갈무리
‘인기 폭발’, ‘신드롬’ 등의 표현이 담긴 프로그램 홍보 기사들의 제목. 모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기사 화면 갈무리

이른바 K-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각종 언론에서는 이를 홍보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사에는 시청 등급과 유해성에 관한 정보는 빠져 있다. ‘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에 아동·청소년이 무분별하게 노출될 우려가 커지면서 홍보 기사에도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1년 9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게임’은 글로벌 OTT를 통한 ‘K-콘텐츠 열풍’을 불렀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캐릭터와 컨셉, 심지어 소품까지도 유행이 됐고, 지난 2022년 9월엔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최초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말 그대로 ‘대흥행’을 거뒀지만, 콘텐츠의 유해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었던 ‘오징어게임’은 작중 등장인물들이 상금을 얻기 위해 생과 사를 오가는 게임을 하며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노출했기 때문이다. 일부 회차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성행위를 길게 보여주는 등 선정성이 높은 장면들도 포함됐다. CNN 등 해외 언론은 ‘오징어게임’의 폭력성을 경고하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은 프로그램은 아동·청소년 시청에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28일 NYT는 뉴욕시의 여러 학교에서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하는 핼러윈 의상을 금지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NYT 갈무리
2021년 10월 28일 NYT는 뉴욕시의 여러 학교에서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하는 핼러윈 의상을 금지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NYT 갈무리

프로그램의 성과와는 별개로 콘텐츠가 가진 유해성이나 시청등급은 좋고 나쁨의 영역이 아닌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정보 중 하나다. 흥행에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일수록 아동·청소년에게까지 미치는 파급력이 세기 때문에 언론은 홍보성 기사를 보도할 때도 유해성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시청 전에는 프로그램 유해성 알 수 없어…언론은 홍보만

과거에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에 따라 국내에서 유통되는 영화나 영상물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 등급을 받아야 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주제, 선전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의 7가지 고려 요소를 평가해 영상물의 등급을 분류하는데, 이 요소들이 구체적, 직접적, 노골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지난 2022년 9월에는 ‘OTT 자율등급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OTT 콘텐츠의 상영 등급 분류를 사업자에게 맡기게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은 영비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의 ‘OTT 영상 등급 분류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를 보면 자체 등급 분류를 시작한 이후 OTT 등록 콘텐츠의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비율이 25.5%에서 14.7%로 줄었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영비법 개정안 내용의 일부. 그래픽 강민정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영비법 개정안 내용의 일부. 그래픽 강민정

자체 등급 분류가 도입되면서 사실상 영상물 등급 기준이 완화됐음에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건 유해성이 매우 높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런 정보를 미리 알기 어렵다. 대부분의 기사는 홍보에만 치중하고 있을 뿐, 어떤 요소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기사는 없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시리즈로 지난 9일 공개됐다. 해당 시리즈는 공개되기 전부터 이미 각종 언론에서 홍보성 기사가 연이어 보도됐고, 공개 직후에도 화제성을 중심으로 한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시리즈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과 이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자체 분류에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시리즈가 공개되기 전인 지난 6일 기준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빅카인즈(BIGKinds)’에 ‘살인자ㅇ난감’을 다룬 기사는 이미 28건이나 됐다. 기사들을 모두 살펴보니 이 중에서 프로그램의 관람등급을 언급한 기사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기사는 콘텐츠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아도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오락성을 위주로 보도한다. 최근 SBS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7인의 탈출’은 각종 선정성, 폭력성 논란에 휩싸였지만, 관련 보도에서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과 화제성에 대한 내용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해당 드라마는 아동학대, 미성년자 원조교제 등의 내용이 방영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8건의 항의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5화부터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시청 등급이 조정됐지만 이런 시청 등급에 대한 안내가 담긴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빅카인즈’를 통해 ‘7인의 탈출’을 다룬 기사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홍보 기사이며, 콘텐츠의 유해성을 다룬 기사는 4건에 불과했다. 출처 빅카인즈 누리집
‘빅카인즈’를 통해 ‘7인의 탈출’을 다룬 기사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홍보 기사이며, 콘텐츠의 유해성을 다룬 기사는 4건에 불과했다. 출처 빅카인즈 누리집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6개월 동안 SBS 드라마 ‘7인의 탈출’을 다룬 기사들을 수집한 결과 관련 기사는 총 248건, 그중에서 해당 드라마를 홍보하는 기사는 133건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회차별 내용을 흥미 위주로 소개하거나 배우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홍보성 기사들이었다. 이들 중 관람등급을 표시해 콘텐츠의 유해성 정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는 기사는 단 4건에 불과했다.

열풍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 역시 폭력성과 선정성이 높아 ‘청소년 시청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관련 홍보 기사에선 시청등급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빅카인즈를 통해 드라마가 공개됐던 지난 2022년 12월부터 1년 동안 보도됐던 기사들을 수집한 결과, 398건 가운데 단 한 건만이 시청 등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헤드라인에도 대부분 ‘흥행’, ‘열풍’, ‘인기폭발’ 등의 긍정적인 단어가 많이 사용됐다.

관람등급 등 유해성 정보 충분히 제공돼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청소년들은 직간접적으로 해당 콘텐츠를 소비하기 쉽다. 특히 스마트 TV가 보편화되면서 각 가정에서 여러 OTT를 시청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으면 부모가 없는 시간대에 청소년들도 관람불가 콘텐츠를 시청할 수도 있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콘텐츠를 제공하는 영상 플랫폼 영향도 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22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97.3%)였다. 다음으로 유튜브 쇼츠(68.9%)와 인스타그램 릴스(47.6%), 틱톡(39.6%)이 뒤를 이었다. 이용률 2~4위가 모두 짧은 영상을 제공하는 이른바 숏폼 콘텐츠 플랫폼이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소년미디어문화연구실의 배상률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조사한 ‘미디어 속 학교폭력 양상 분석을 통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 방안 도출’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청소년이 얼마나 쉽게 관람불가 콘텐츠에 노출되는지 보여준다. 조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에게 최근 1년간 시청한 영화와 드라마 콘텐츠를 물어본 결과 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인 ‘더 글로리’, ‘범죄도시 1편’ 등을 일부 내용이라도 보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이 넘었다. 시청 경로에 대한 질문에서는 ‘유튜브로 시청했다’고 답한 청소년이 가장 많았다. 또한 청소년들 상당수가 유튜브, OTT 등의 콘텐츠를 이용하면서 폭력적 콘텐츠에 쉽게 노출된다고 응답했다.

한국청소년연구원이 지난해 2005년생부터 2010년생에 해당하는 청소년 1,03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OTT,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폭력적·선정적 콘텐츠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그래픽 강민정
한국청소년연구원이 지난해 2005년생부터 2010년생에 해당하는 청소년 1,03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OTT,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폭력적·선정적 콘텐츠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그래픽 강민정

배 연구원은 <단비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요즘 같은 다매체 시대에 단지 콘텐츠의 관람등급을 구분해 놓는 것에서 끝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한테 물어보면, 작년에 인기였던 범죄도시, 더글로리, 무빙 이런 청불(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를 봤다고 답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청소년의 유해 콘텐츠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거나 온라인 유해 콘텐츠를 필터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함께 논의를 해야합니다. 이러한 콘텐츠를 상업적으로만 홍보하는 일부 언론의 자성도 필요하고요.”

이렇듯 아동·청소년이 유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프로그램과 콘텐츠에 대한 유해성을 알리는 언론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홍보 기사만 읽고는 해당 콘텐츠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지 알기가 어렵다. 단지 ‘얼마나 재미있는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를 홍보하는 기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대부분의 성인들도 ‘나 빼고 다 보는 인기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게 된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은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인지도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선택해 시청할 우려가 더 높다.

관련 전문가들은 언론에서라도 시청 등급 등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고 콘텐츠의 유해성을 알리는 기사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언론인권센터의 한상희 사무처장은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 시청불가 콘텐츠를 홍보성으로만 다루는 기사가 많은 것은 우려스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한 사무처장은 “19금 드라마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홍보성 기사라고 할지라도 시청 등급에 대한 고지는 기사에 함께 언급돼야 할 필요가 있다”며 “청소년 시청불가 판정을 받은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홍보하는 기사에 시청 등급 등이 빠져 있으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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