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되돌아본 KBS ‘오세훈 내곡동 땅 의혹 보도’의 공정성 논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는 시기 중 하나가 선거기간이다. 후보자를 꼼꼼하게 검증하는 보도는 민의가 선거에 정확히 반영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이력, 경력, 기타 특이 사항 등 업무 수행과 관련 있는 정보를 빠짐없이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언론의 당연한 책무다.

선거철 의혹 보도의 딜레마

하지만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을 보도하는 일은 언론인들에게 상당한 고민거리다. 의혹을 성급히 보도했다가는 후보자가 부당하게 해명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의혹의 진위와 상관없이 후보자에게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가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봐야 한다. 의혹을 보도하는 데 지나치게 신중하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의혹을 제기할 만한 정황을 확보해 놓고도 보도하지 않는다면 직무를 유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 어느 정도나 증거가 확보되었을 경우 후보자 관련 의혹을 보도해야 할까? 입증이 좀 부족하더라도 후보자의 반론을 충분히 담아서 보도하면 되지 않을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보도하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보도 빈도가 높으면 편향적으로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의혹 보도의 공정성에 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국 언론으로서는 그간의 관행을 따르거나 그때그때 자체적인 판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

KBS의 경우 ‘공정성 가이드라인’이라는 자체 윤리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공정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만큼, 관련 논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목적으로 지난 2015년 마련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은 ‘선거 보도’가 갈등적 사안, 국회 보도 등과 함께 공정성과 관련하여 주로 논란이 되는 보도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이 지침이 만들어진 뒤로는 KBS 보도를 향한 공정성 논란이 줄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 세부적인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선거 보도의 주제별 준칙을 보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보도를 금지하면서도, 보도에 공익성이 있는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

사실관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폭로성 주장이나 단순한 인신공격성 비방 또는 명예훼손이 확실시되는 경우에는 보도하지 않는다. 다만, 폭로성 주장의 사실 여부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 경우라도 그 주장을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면 전문적 태도를 견지하여 보도할 수 있다.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선거 보도’ 주제별 준칙의 일부

 

지난해 11월 14일, 박민 KBS 신임 사장은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도의 공정성 문제와 관련해 시청자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날 저녁 <뉴스9> 에서는 박장범 신임 앵커가 과거 보도에서 불공정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박 앵커가 언급한 4가지 사례는 ▲검언유착 사건 오보 ▲오세훈 서울시장 내곡동 땅 의혹 보도 ▲뉴스타파 김만배 녹취록 인용 보도 ▲고(故) 장자연 사건 재수사 당시 윤지오 인터뷰였다.

지난해 11월 14일 KBS의 과거 보도 공정성 훼손 사례를 언급하고 있는 박장범 뉴스9 앵커. KBS  갈무리
지난해 11월 14일 KBS의 과거 보도 공정성 훼손 사례를 언급하고 있는 박장범 뉴스9 앵커. KBS 갈무리

KBS가 전격적으로 보도에서 공정성 훼손 사례가 있었다고 인정한 이후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큰 논란이 일었다. 방송 다음 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리포트에서 소개한 사례들이 정말 불공정했는지 이견이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성명을 냈다.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따져 물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 내곡동 땅 의혹 보도 이후 국민의힘이 KBS 취재진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는데 결과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내곡동 땅 의혹 보도, 공정성 훼손했나?

오세훈 서울시장 내곡동 땅 의혹이 불거진 것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눈앞에 둔 2021년 3월이었다. 오 시장이 과거 시장 권한을 이용해 자신의 땅을 택지로 지정하고 보상금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KBS는 지난 2021년 4·7 재보궐선거 기간에 내곡동 땅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3월 26일 뉴스9에서는 “2005년 6월에 내곡동 처가 땅 측량 현장에 오 시장이 있었다”는 의혹을 직접 제기했다. 방송 이후, 오 시장 캠프는 악의적 허위 보도라고 비판하며 KBS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 고발 건은 언론노조 KBS본부 주장대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해당 보도의 적절성을 따져보았다.

지난해 11월 14일 KBS는 내곡동 땅 의혹 보도를 보도 공정성 훼손 사례로 언급했다. KBS  갈무리
지난해 11월 14일 KBS는 내곡동 땅 의혹 보도를 보도 공정성 훼손 사례로 언급했다. KBS 갈무리

내곡동 땅 의혹 보도와 관련된 공정성 논란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발생한다. 첫째는 사실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보도했다는 점이다.

증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뤄진 내곡동 땅 의혹 보도는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선거 보도 중 ‘폭로성 주장 처리’에 해당한다. 제작 세칙 중 내곡동 땅 의혹 보도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사실관계의 확인 가능성 ▲보도의 공익성 ▲선거 임박 여부(반론 기회 보장)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폭로성 주장을 보도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다만 보도의 공익성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주장을 보도할 수 있도록 했다. 선거일 전날 등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폭로를 하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① 사실관계의 확인 가능성

취재진이 보도 전 내곡동 땅 의혹에 관한 사실관계를 완벽하게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2005년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십여 년이 흐른 시점에서 물적인 증거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국토정보공사는 ‘측량 결과도’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입회인 정보를 비공개했고, KBS 취재진이 원본 열람을 신청하자 이해관계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취재진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증인 진술에 의존했다. 땅 측량 현장을 지켜봤다는 경작인 세 명을 접촉하고, 그중 두 명의 증언을 교차 검증하는 방식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경작인 A, B씨는 오 시장의 장인과 오 시장 본인이 측량 현장에 나타났다고 했다. 오 시장 장인과 관련해 A씨는 “나이가 들어 머리가 둥글다, 성이 정 씨였다”고 증언했고, B씨는 “000씨의 남편이라는 것 같다”며 장모의 이름을 언급했다. 오 시장 본인과 관련해서는 A씨는 “선글라스를 꼈고, 넥타이를 매지 않았으며 ‘콤비’라는 말이 들어간 옷을 입었다”고 진술했고, B씨는 “선글라스를 쓰고 점퍼를 입었다”고 기억했다. 취재진은 선글라스에 관한 증언이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자신이 오 시장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고 했고, B씨도 똑같이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A씨는 측량이 끝나고 점심을 함께 먹었으며, 점심을 먹었던 식당 메뉴는 ‘생태탕’이었다고 했다. A씨가 말한 식당은 취재 시점에 확인할 수 없었는데, 취재진은 오랫동안 식당이 있었다는 인근 주민의 증언을 확보했다. 주민은 식당의 이름과 식당에서 판매하던 메뉴를 진술했다.

지난 2021년 3월 26일 방송된 ‘복수 경작인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있었다”’ 리포트. KBS  갈무리
지난 2021년 3월 26일 방송된 ‘복수 경작인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있었다”’ 리포트. KBS 갈무리

KBS는 26일 보도 이후 추가 증언을 확보해 연이어 방송했다. 보도 이틀 뒤인 2021년 3월 28일에는 측량을 실시한 국토정보공사 직원 3명 가운데 당시 상황이 기억난다는 측량팀장 류 씨와 통화해 “현장에서 오세훈 후보를 봤다”, “측량이 끝날 때쯤 하얀색 상의에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는 증언을 보도했다. 보도 일주일 뒤인 2021년 4월 2일, 오 시장이 방문했다는 식당 주인 아들의 증언을 추가로 내보냈다. 식당 주인 아들도 선글라스 이야기를 했고, 거기에 ‘페라가모’ 비슷한 신발을 신었다는 증언도 덧붙였다.

내곡동 땅 의혹을 제기한 KBS 방송 리포트 중 일부. 그래픽 지수현
내곡동 땅 의혹을 제기한 KBS 방송 리포트 중 일부. 그래픽 지수현

보도 시점에서 7개월이 지난 2021년 10월, 검찰은 증인 진술의 일관성을 인정했다. 검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오 시장에 대한 불기소 결정서에 복수의 증인이 오 시장이 측량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의 말을 믿을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2021년 4월 5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6년 전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고 했다. 취재진이 만난 증인들은 오 시장의 인상착의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억했는데, 16년 전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증인이 오히려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물적 증거가 아닌 기억에 의존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당시 보도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② 보도의 공익성

보도의 공익성은 내곡동 땅 의혹 보도가 후보자 적격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일 때 인정된다. 해당 의혹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공익적인 정보는 ‘시장 직위를 남용해 사익을 추구했는가’, 그리고 ‘해명이 진실했는가’다. 전자는 후보자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후자는 도덕성을 검증하는 셈이다.

KBS의 보도는 도덕성을 검증하는 효과가 더 컸다. 오 시장은 자신과 장인이 법률상 땅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입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 해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 시장은 2021년 3월 30일 내곡동 땅 측량 서류를 공개했다. 처남의 정보공개 청구로 한국국토정보공사, LX가 발급한 내곡동 땅 측량 서류에는 장인 정 모 씨가 입회인으로 서명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KBS는 이를 근거로 오 시장이 배척해 온 경작인 A, B씨의 기억에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KBS의 취재 결과 오 후보 측이 받은 측량 결과도에 입회 서명한 사람은 큰처남이 아닌 장인 정 모 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힘 주장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겁니다.

큰처남 송 모 씨가 입회 서명했다면 측량 당일 오세훈 후보를 현장에서 봤다는 경작인들과 측량팀장의 기억은 신뢰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동안 오 후보 측은 큰 처남의 입회 서명을 주장하며 이들의 기억을 배척해 왔습니다.

지난 2021년 3월 30일 방송된 '내곡동 땅 측량 입회 서명은 큰 처남 아닌 장인' 리포트 중 

 

KBS는 2021년 4월 1일에도 오 시장의 해명에 반박하는 보도를 했다. 오 시장은 큰 처남인 경희대 송 모 교수가 측량일인 2005년 6월 13일 측량에 입회하느라 대학원 행사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KBS는 경희의료원에서 열린 병원경영 MBA 과정 수료식 사진을 입수해 송 교수가 오후 1시 반부터 행사에 참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오 시장이 밝힌 입장과는 배치되는 정황이다.

오 시장의 또 다른 거짓말이 밝혀지면서 KBS 의혹 보도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2021년 3월 1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내곡동 땅의 존재와 위치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2000년 국회의원 시절, 그리고 2009년 서울시장 시절 내곡동 땅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이와 관련해 오 시장은 2021년 3월 31일 관훈토론회에서 ‘존재 자체도 의식 못 했다’는 것을 잘못 표현했다고 해명했다. 아예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못했다는 뜻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KBS 보도가 이해충돌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해충돌이 성립하려면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 내곡동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시장 직위를 이용했는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당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다른 주장을 했고,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내곡동 땅 사업 관련 오세훈 시장 이해충돌 가능성에 관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주장 비교. 그래픽 지수현
내곡동 땅 사업 관련 오세훈 시장 이해충돌 가능성에 관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주장 비교. 그래픽 지수현

국민의힘 측은 내곡동 땅 사업은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2006년 7월 이전에 추진된 것으로 오 후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2007년 3월 22일 건교부가 작성한 문서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006년 3월 29일 건교부에 최초로 내곡국민임대주택단지예정지구 지정 제안을 했고, 같은 해 6월 29일 주민 공람과 관계 기관 협의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캠프에서는 내곡동 땅이 사업 대상으로 ‘확정’된 시점에 주목했다. 참여정부 때 국민임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던 사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 보금자리주택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국토부에서 내곡동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확정한 시점은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12월이다. 사업의 근거법인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는 주택지구의 지정·변경에 지자체장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민주당 박영선 후보 캠프에서는 이 과정에서 오 시장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2005년 6월에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 시장이 있었다”는 KBS의 보도는 오 시장이 보금자리주택사업에 관여했다는 민주당의 의혹과 일맥상통한다. 박영선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2021년 4월 5일 KBS ‘주진우 라이브’ 방송에서 오 시장이 이명박 시장 선거에서 대변인으로 인연을 맺어 내곡동 개발 호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BS 보도가 집중적으로 검증했던 땅 측량 현장 입회 여부만 가지고는 오 시장이 직위를 이용해 혜택을 얻었는지 입증할 수는 없다.

③ 선거 임박 여부(반론 기회 보장)

문제의 내곡동 땅 의혹 보도 시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기 12일 전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반론을 청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오 시장은 2021년 3월 26일 KBS가 이 의혹을 보도한 뒤 나흘이 지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측량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또한 KBS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측량 사실조차 몰랐다”, “측량은 불법 점유자 때문에 경계를 정확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등 오 시장의 반론을 싣기도 했다.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에 따른 내곡동 땅 의혹 보도 평가. 그래픽 지수현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에 따른 내곡동 땅 의혹 보도 평가. 그래픽 지수현

KBS가 추구할 공정성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KBS 보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선거 보도의 공정성 기준 가운데 ‘보도의 공익성’ 부분에서 크게 갈렸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오 시장의 권한 남용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 핵심이며, 내곡동 땅 측량 현장 입회 여부는 지엽적인 사안이라고 봤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오 시장이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입회하지 않았다는 해명이 거짓이라면 도덕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영선 후보는 KBS가 보도한 오 시장의 내곡동 땅 입회 여부가 이해충돌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목격자들의 증언만을 토대로 측량 현장에 갔느냐 아니냐를 따져야 할 정도로 공익성이 있는 보도였느냐는 지적도 있다.

결국 선거철 후보자 의혹 보도에서 공정성을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렵다. 공정성 개념은 모호하며 가이드라인이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도 않는다. 보도의 필요성은 기자가 최종적으로 판단하되, 내부 기준을 참고해 공정성을 최대한 구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에서도 공정성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KBS가 추구하는 공정성이란 특정 견해, 세력, 집단에 편향되지 않은 내용을 방송함으로써 구현된다. ‘편향’은 이해하기 쉽지만 ‘편향되지 않음’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공정성을 내용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 ‘공정성과 유관 가치들’ 중

 

경영진이 교체된 KBS가 다시금 공정성과 신뢰도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박민 사장은 불공정 방송의 경위와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백서를 발간해 오보 사례의 재발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공정성이 훼손되었는지 짚지 못했고, 또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도 제시하지 않았다.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몇 번이고 강조되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반론 기회를 보장하는 데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떤 의혹에 대한 보도를 무작정 막는다면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고 유권자의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경영진이 바뀐 KBS가 추구할 공정성이 꼭 필요한 권력 감시 보도를 주저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공정성에 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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