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김현대 <한겨레> 농촌전문기자

농업·농촌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제가 대학 진학을 위해 대구에서 처음 서울 오니까 전부 '촌에서 올라왔다'더군요. 그런데 저는 100% ‘아스팔트 보이’입니다.”

대구 출신까지 촌놈으로 취급하는 서울 중심주의를 꼬집으며 강의를 시작한 김현대 기자는 농촌전문기자다. 대도시 출신인 그가 농업·농촌 영역으로 발을 들여 놓은 건 지난 2008년, 한겨레신문사 지역경제디자인센터 초대 소장으로 일하면서부터였다.

▲ '농업•농촌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김현대 기자. ⓒ 안형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캐나다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딴 그는 피폐해가는 농촌사회의 현실을 눈여겨보면서 지역경제디자인센터 아이디어를 냈고, 지역경제와 농촌사회를 살리기 위한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소장직을 그만둔 뒤 편집국에 복귀하면서 농업•농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전문지를 뺀 주요 언론사에서 처음으로 농촌전문기자가 탄생한 것이다.

김 기자는 농업•농촌을 다루는 우리 언론의 큰 문제로 우선 ‘기사가 많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최근 한두 해를 뒤돌아봐도 우리 언론에서 크게 다룬 농촌 관련 이슈는 ‘쇠고기 파동’ ‘배추값 폭등’ ‘구제역 사태’ 등이 기억날 정도다. 언론에서도 선거에서도 ‘농’자가 거의 사라졌고, 농업•농촌 관련 기사를 쓰더라도 농촌은 도시민의 여가 공간일 따름이다. 그는 “언론이 자주 쓰는 귀촌•귀농이란 말 자체가 도시인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라며 “농촌 사람들의 관점에서 쓴 기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만 있고 농민은 없는 농촌 기사

“농촌 기사에는 소비자만 있고 농민은 없어요. 예를 들면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기사가 나옵니다. 하지만 내리면 기사가 없어요. 기사의 균형점이 없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서 농민이 피해 보는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죠.“

농촌 기사가 많지 않은 것은 ‘농촌 기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언론사에서 농촌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김 기자는 지적했다. 그는 “보통 1년 정도 지나면 농식품부 기자들은 출입처가 바뀌고 신문사의 에디터들도 농촌 기사를 쓰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니 농업에 전문성을 가진 기자가 탄생하기 힘든 환경이 되고 만 것이다. 그는 “농식품부, 학계, 농민단체, 농협 등 많은 농업•농촌 관련 기관과 단체가 있는데도 언론이 농촌 문제에 성의가 없고 독자들도 관심이 없으니 아무리 농촌 기사를 써도 의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며 농촌전문기자의 고충을 토로했다.

농촌전문기자가 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협동조합과 학교다. 지난 2년간 가장 많이 다룬 주제 역시 협동조합이다. 그는 “소규모 가족농이 대부분인 우리 농촌에서 협동조합은 필수”라고 말했다. 대기업 유통망에 대항해 농가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협동조합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럽에 다녀와서 쓴 기사 ‘무한경쟁시대 ‘착한 대안’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한겨레 2011.7.5)를 소개하며 “협동조합은 기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에서 기업은 보통 주식회사 형태이지만 유럽의 협동조합은 기업이기는 하지만 주식회사는 아니다. 

이탈리아·스위스는 협동조합이 유통 장악

유럽에는 시장경제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말고도 ‘시민경제’ 또는 ‘사회적 경제’라는 분야가 존재한다. 그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지역총생산(GRDP)의 30~40% 정도가 협동조합 경제이고, 스위스 협동조합인 ‘미그로’나 ‘코프스위스’는 우리나라 이마트나 홈플러스처럼 소매 유통의 40%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에서는 코프스위스가 세계적인 유통업체인 까르푸를 인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 이탈리아 볼로냐시 외곽에 있는 대형 생협 매장. ⓒ <한겨레> 김현대 기자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처럼 무리하게 이윤을 내려 하지 않고 이익이 나면 조합원들에게 모두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요. 또 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이 고객이고, 고객이 조합원이니 거기서 엄청난 충성도가 발생합니다. 조합원의 높은 충성도가 협동조합의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거죠.”

김 기자는 세계적 브랜드인 ‘선키스트’도 협동조합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가 지속적으로 선진국 협동조합 사례를 보도하자 사람들 인식도 점점 변해갔다. 처음에는 “협동조합은 구질구질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다수였지만, 최근 한국에서도 협동조합 열풍이 불고 있다. 그의 기사는 올 하반기에 발효될 협동조합기본법을 이끌어내는 데도 기여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기자 생활 중 가장 보람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협동조합이 필수’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나라 농업협동조합, 곧 농협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나쁜 농협’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농협이 망해야 농업이 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농협이 협동조합의 틀은 갖췄지만 협동조합의 가치는 탈색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농업 정책자금 중 80%는 농협을 통해 집행되고 농협중앙회장이 조합장들에게 나눠주는 돈만 해도 8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중앙회장 선거 때만 되면 특혜 시비가 일고,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농협이 제 구실을 해왔다면 국가의 농업보조금 지급이 ‘농업 퍼주기’라고 비난 받을 이유가 없었다는 게 그의 견해다. 

▲ 이탈리아 볼로냐의 감자협동조합 코메타에서 일하는 여성 농민들. ⓒ <한겨레> 김현대 기자

김 기자는 “그동안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기사를 많이 써왔지만 학교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못해서 아쉽다”며 “농촌에 교육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도시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대도시로 유학 보내는 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에는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했다. 농촌이 사람이 돌아오고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되려면 사회적 서비스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충남에서 유일한 농업고등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농촌에서 계속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학생, 학부모 모두 전무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농촌이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해 정체되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농촌 지키기’는 환경운동

그는 기자가 농촌 문제를 보도할 때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구제역 파동이 잠잠해질 무렵 그는 구제역이 발생했던 농촌을 찾아가 가축 매몰 현장의 문제점을 집중보도했다. 그는 당시 현장에서 제대로 묻지 않은 돼지들의 시체를 야생동물들이 뜯어먹은 것을 보고 철저하지 못한 관계 기관의 행태를 고발했다.

“영국은 구제역 파동을 겪고 나서 농업 담당 부처 이름을 농식품부(MAFF)에서 ‘환경식품농촌부(DEFRA)’로 바꿨습니다. 이때부터 농촌이 땅, 공기, 물을 지키는 현장이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농촌 정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거죠. 구제역 해결을 위해 3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기껏해야 방역작업에 그친 한국과 대조되는 모습 아닌가요?”

농업 선진국에서 농촌은 농작물 생산만 하는 곳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들은 농촌의 아름다운 경관 자체가 경제적 자원이고 그런 경관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농민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에는 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농촌에 지원되는 직불금 제도까지 있다.

▲ 학생들이 김현대 기자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 안형준

최근에는 농촌 문제가 환경 문제로 직결된다. 김 기자는 “전 세계 온실가스 중 18%가 가축에서 배출된다”며 “자동차나 공장의 매연보다 환경에 더 해로운 것이 동물 분뇨”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까지 축산 분뇨를 국제협약까지 어기며 바다에 버려왔지만 이 문제가 공론화하지 못했다. 그는 “돼지 분뇨가 수질오염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미FTA의 최대 피해자가 양돈농가라는 인식 때문에 이들을 기사로 비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요 관심 영역에는 ‘로컬푸드’도 들어있다. 그는 “세계인의 관심은 유기농 식품보다 로컬푸드 쪽에 더 많이 쏠려 있다”며 “이제 한국에서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로컬푸드를 정책에 반영할 때”라고 역설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로컬푸드가 핵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컬푸드는 지구 온난화와 식품 안전성 문제까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농촌 기사는 도시민에게도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2년 남짓 농촌전문기자를 하면서 그가 아직 다루지 못한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앞으로 기사를 통해 ’기후 변화’ ‘식량 위기’ ‘농가 양극화’ ‘동물 복지’ ‘꿀벌의 위기’ 등 좀 더 다양한 키워드를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경제디자인센터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마을 공동체’ 역시 그에게는 중요한 소재다.

농촌전문기자 꿈 키우는 ‘농업기자포럼’

현재 우리나라 종합일간지나 방송에는 농촌전문기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둘뿐이다. 김현대 기자 말고도 <내일신문>에 정연근 기자가 있다. 이들과 농식품부 출입기자 등은 지난해 ‘농업기자포럼’을 결성하고 한 달에 한번씩 강연회를 여는 등 농업·농촌 보도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고 있다.

농업기자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김 기자는 “농업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기회가 없어서 농촌 기사를 못 쓰는 기자들이 많다”며 “농업기자포럼을 통해 메이저 언론사에도 농업전문기자가 한 해 한 명씩, 5년 뒤엔 다섯만 더 가세해도 좋겠다”고 말했다.

“혼자 있을 때는 밀고 나가기 힘들지만 같이 있으면 힘이 되는 겁니다. 농촌전문기자 다섯이면 농업정책이 바뀝니다. 같이 뜻을 맞춰서 기사를 쓰면 못 바꿀 정책은 없다고 봅니다.”


 * [농촌문제세미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농업·농촌 문제에 대한 기자·PD 지망생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이번 학기 신설한 강좌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권위있는 학자, 전문농사꾼, 농촌지역 사회활동가, 농업·농촌전문기자와 데스크 교수 등이 참여해서 이론과 농촌현장실습, 취재보도를 하나로 결합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단비뉴스>는 그 강좌 중 일부를 중계해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