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공모전] 가작

우리나라 헌법 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지방대의 위기는 여기서 ‘능력’을 잘못 해석하고 교육의 ‘균등’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대학이 어느 지역에 있는가와 상관없이 청년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존중받아야 비로소 헌법 제31조의 가치가 지켜지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담보될 것이다. 나는 지역대학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줄탁동시(啐啄同時)’, 즉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병아리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껍질을 쪼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줄’은 지역대학 구성원 전체의 노력이다. 지역대학은 지역사회에 속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해당 지역에 관한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지역학 연구 및 실천을 제안한다. 전북 전주시의 경우 시의회 차원에서 ‘전주학 연구 및 진흥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고, 전주역사박물관에서는 ‘전주학 학술대회’를 개최해 호남과 수도권 대학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이는 시민들이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가장 전주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전주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지역학 연구는 지역의 고유문화를 지키고 특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지역대학이 중심이 되어 지역학 연구를 수행한다면 대학생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대학이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7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22회 전주학 학술대회에서 대학교수들이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 전주역사박물관
2020년 7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22회 전주학 학술대회에서 대학교수들이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 전주역사박물관

일부 지역대학생의 경우 주어진 기회에 도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구조적 모순이 생겨난 까닭이다.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실패를 두려워하며 도전을 꺼리는 학생이 많다. 그러나 지역대학과 기관들이 협력한다면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크고 작은 성공을 경험한다면 자아효능감이 향상될 수 있다. 높은 자아효능감은 실패에도 자존감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바탕이 된다. 오히려 실패를 재도전의 기회로 승화하며 학생 스스로 성공에 이르는 방향성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탁’은 지방대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이다. 우리나라를 수도권과 지방으로 구분하는 위계적 사고를 지양하고, 여러 수평적 지역의 존재를 인정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수도권 대학’이라는 말 대신 ‘서울지역 대학’ ‘경기지역 대학’ ‘인천지역 대학’으로 부를 필요가 있다. ‘지방대’라는 말 대신 ‘강원지역 대학’ ‘충청지역 대학’ ‘영남지역 대학’ ‘호남지역 대학’ 등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지방대’는 사실 가치중립적 명칭인데도 그동안 혐오와 차별의 인식 속에 오염됐으므로, ‘지역대학’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차별을 무너뜨리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명칭의 변경뿐 아니라 ‘대학통합네트워크’와 같이 지역에 속한 대학 간의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대안도 필요하다. 학점교류뿐 아니라 학생들의 피부에 와닿는 취업 전략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학 간 상호 인턴십 기회를 제공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하거나, 동일지역 대학생들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면 청년들이 지역사회를 살리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지역의 특색을 고려해 내실 있는 학과를 육성한다면 지역대학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읊조렸다. 우리 사회가 지역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가치를 존중할 때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지방으로 이분된 것이 아닌, 여러 동등한 지역이 모인 선도국가가 될 수 있다.

인구절벽시대, 지역대학의 위기는 곧 지역사회의 위기이자 대한민국의 위기다. 특히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상황에서 앞으로 맞이할 통일한국시대를 생각할 때, 지역대학이 살아야 지역사회가 함께 살고 북한의 여러 지역도 통일한국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통일 후 누군가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라고 물을 때 “저는 함경지역 대학 출신입니다. 우리 대학은 무역학과가 특화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함께 살아가는 연대의 미덕’을 새로운 가치 규범으로 요구하고 있다. 연대의 흐름 속에 지역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줄탁동시’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과 저널리즘연구소가 한국 교육의 불공정 구조와 지방대 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개최한 논술대회의 수상작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단비뉴스>가 펴낸 단행본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를 토대로 한 이번 논술대회에는 학생, 교사, 직장인, 주부 등 79명이 응모해 입시 위주 경쟁교육, 지방대 위기, 공정과 능력주의에 관한 성찰 등을 주제로 다채로운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엄정한 심사를 거친 3편의 당선작 중 최우수작, 우수작, 가작의 순서로 원고를 싣습니다. (편집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