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공모전] 최우수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과 저널리즘연구소가 한국 교육의 불공정 구조와 지방대 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개최한 논술대회의 수상작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단비뉴스>가 펴낸 단행본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를 토대로 한 이번 논술대회에는 학생, 교사, 직장인, 주부 등 79명이 응모해 입시 위주 경쟁교육, 지방대 위기, 공정과 능력주의에 관한 성찰 등을 주제로 다채로운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엄정한 심사를 거친 3편의 당선작 중 최우수작, 우수작, 가작의 순서로 원고를 싣습니다. (편집자)

능력주의는 개인의 실력과 업적에 따른 보상을 주장한다. 계급, 권력 등 세습된 요소를 배제하고 자유 경쟁에 따라 보상해야 공정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과 달리 능력주의는 현실에서 공정하지 않게 작동한다. 능력에는 부모의 경제력, 경험의 차이, 행운 같은 다양한 요소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능력을 유일한 기준으로 절대화하면 현존하는 차별적 구조를 보기 어렵다. 책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가 지적한 현실처럼, 한국은 과도한 능력주의가 낳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능력주의의 각자도생보다 포용의 가치가 더 필요하다.

능력주의는 자유 경쟁을 전제해 기회 불평등을 간과한다. 형식적으로는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개인의 자기 계발을 추동하는 듯 보이지만, 이 경쟁이 실질적인 공정성을 갖지는 않는다. 경쟁에 참여조차 못 하는 사람이 있을 뿐 아니라 저마다의 출발선도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중시되는 학벌의 경우, 부모의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가 묘사했듯이 교육 제도에서의 보상은 학생의 능력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능력주의의 자유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벌어진다. 이는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 등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배타적 경쟁’ ‘배타적 공정성’에 불과하다.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누군가 불평등에 처한 원인은 그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책은 “대학 입시 성적으로 ‘학벌 피라미드’의 아래 칸에 위치하는 순간, 차별과 배제가 당연시 된다”고 지적했다.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오히려 ‘공정’한 결과로 보는 태도는 교육 외 영역에서도 부작용을 드러낸다. 가령 노동 시장에서 공채 시험을 통과한 정규직은 능력이 인정되니 고임금을 받고,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보장받지 않아도 정당하다는 식의 생각이다. 이런 사회에서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정책적, 인식적 노력은 ‘반칙’이라는 반발을 사기 쉽다. 공정한 것은 배려가 아니라 시험주의, 서열주의라고 생각돼서다.

▲ 대학 입시 성적으로 '학벌 피라미드'의 아래에 위치하는 순간, 능력주의는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한다. ⓒ pixabay

결국 능력주의는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을 강화한다. 경쟁에서 한번 승리하면, 승자의 이점을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이 누리는 혜택이 한 사례다. 책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즉) 스카이 대학은 정부 수립 초기부터 엘리트 교육기관으로서 집중 지원 대상이 돼 여러 특혜를 받았다”며 “1990년대 이후부터는 대학재정지원제도가 평가를 통한 선별 및 차등 지원으로 발전하면서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독점적인 혜택을 누렸다”고 밝혔다. 이미 유리한 교육 여건에 있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지원을 받는 ‘역진적 배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이른바 ‘1등 시민’과 ‘2등 시민’이 한번 정해지면, 그 격차를 돌이키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에서 승자는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에, 패자는 열패감에 익숙해진다.

능력주의와 불평등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능력주의가 주목받는 이유부터 살펴야 한다. 일자리, 내 집 마련 등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기회는 부족하고, 능력이 있는 데도 합당한 보상을 못 받는다는 박탈감이 지금 같은 의미의 능력주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 확보, 집값 안정, 투명한 경쟁 시스템 등 사회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한, 능력주의 논리는 계속 인기를 얻을 것이다.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며 능력주의를 강조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청년층의 지지를 얻었듯이 말이다. 책에 인용된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의 말처럼 ‘어떤 계기로 계층 사다리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이익 공유, 복지 확대,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충분히 행복하고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능력주의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책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박권일 작가는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당연시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며 “불평등이 심화되면 민주주의도 악화한다”고 했다. 민주주의 악화는 모두에게 위험 요소다. 공론장과 협의의 토대가 흔들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책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의 맺음말처럼 ‘교육 기회와 자원 배분 원리의 다원화’ ‘누구도 소외받거나 차별받지 않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제는 능력주의가 주장하는 자유 경쟁과 각자도생을 넘어, 불평등을 해소하는 포용의 가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편집: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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