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㉒ ‘기후정의 세계공동행동’ 전국 집회

“대기업 이윤 아니고, 정의로운 전환 보장하라.”
“탄소성장법 폐기하고, 기후정의법 제정하라.”
“기후대응 발목 잡는 관료·기업 정신 차려라.”

영국 글래스고의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서 환경운동가들이 ‘강력한 실천’을 각국 대표단에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등 국내에서도 동조 집회가 열렸다. 청소년, 환경, 인권, 노동 등 다양한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날 서울, 인천, 청주, 창원, 부산 등 전국에서 ‘기후위기 세계공동행동’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집회와 행진 과정에서 확실한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등 전국서 ‘지금 당장 행동’ 요구 

▲ 각자 준비한 손팻말에 ‘석탄화력 중단’ ‘지금 당장 기후정의’ 등의 구호를 적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모인 시민들. ⓒ 김지윤

이날 서울 대학로 집회는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참가자 수를 499명으로 제한한 가운데 오후 2시에 시작됐다. 이오이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장은 “오늘 전 세계 250여 곳에서 200만 명이 넘게 저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임미정 수녀와 비정규교수노조 김민정 대의원, 두 명의 활동가는 ‘기후정의 세계공동행동 선언문’ 낭독을 통해 “정부는 기후정의에 입각해서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다시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글래스고 회의에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 40% 감축’을 약속하는 국가감축목표(NDC)를 제출했으나 기후위기비상행동은 ‘2018년 대비 최소 50%는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또 “COP26 총회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의 말은 ‘내용 없는 선언’일 뿐”이라며 “가장 배출량이 많은 나라들은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가장 큰 힘을 가진 나라들은 책임을 뒤로 미룬다”고 비판했다. 온실가스 배출 세계 1위인 중국과 4위인 러시아의 정상이 글래스고 회의에 불참했고, 개발도상국에 기후금융을 지원하기로 한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선진국들이 지원 시기를 당초보다 3년 늦은 2023년으로 연기한 일 등을 꼬집은 것이다. 선언문은 이날을 ‘기후정의를 위한 공동행동의 날’로 정하고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외친다고 밝히며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심상정 의원은 집회 발언을 통해 “대선 대진표가 확정됐는데 그레타 툰베리 말마따나 더 이상 '블라블라(말뿐인) 대통령' '그린워싱(가짜 친환경) 대통령'은 안 된다”며 “이제는 산업과 성장, 개인의 삶까지도 지구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어야 하고 불평등과 지방소멸, 청년소외도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족 참가자 등 ‘이윤과 성장 대신 기후정의’ 외쳐 

 
기후정의 세계공동행동 서울 집회에 나온 참가자들이 손팻말과 지구 모양 풍선 등을 들고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종로 보신각까지 행진하고 있다. ⓒ 김지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윤과 성장 말고 기후정의 실현하라’ ‘아이들의 생존을 지켜주세요’ 등의 구호가 적인 손팻말과 지구 모양의 풍선 등을 들고 종로2가 보신각까지 행진했다. 석탄발전소 모양의 탈을 쓴 사람, 북을 치는 사람,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보였다. 가족과 함께 집회에 나온 박지훈(9) 어린이는 “엄마가 기후정의 시위한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참여하게 됐다”며 “저번에도 기후운동에 한번 참여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사람이 엄청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미래를 지켜주세요! 우리가 위험해요!’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행진 대열에 있던 이모(35) 씨는 “기후위기가 심각해서 개인의 실천과 함께 구조적 원인도 해결해줘야 하는데 그런 물결이 이뤄지지 않고, 기후위기를 이슈로만 소비하려는 모습이 너무 화가 나서 나왔다”고 말했다. 길가에서 행렬을 지켜보던 김모(21) 씨는 “올해 들어 기후위기에 관심이 생겼는데, 이런 시위가 열리는 줄은 몰랐다”며 “다음에 또 열린다면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행진을 마친 후 각자 준비한 손팻말을 들어 보이는 시민들. ⓒ 이주연

기후위기비상행동의 활동가 김영준(47) 씨는 “당장 우리나라에 대선이 있는데 누가 뽑히느냐에 따라 기후위기 대응이 굉장히 달라질 것”이라며 “더 많은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고, 정부나 기관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우리가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흐름에 같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구를 ‘말아먹는’ 기업에 상 주는 ‘먹방대회’도

이에 앞서 기후단체 ‘멸종반란한국’은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COP26배 지구먹방대회 시상식’을 열었다. 에스케이(SK)‧포스코‧두산·한화·하림 등 대기업과 문재인 정부, 탄소중립위원회, 세계 정상들에게 불명예스러운 상을 주면서 탄소배출과 생태파괴에 앞장서거나 방임하는 행위를 고발하는 자리였다. 행사에는 동물해방물결, 사회변혁노동자학생회 회원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시상식은 멸종반란한국 활동가들이 각 기업 이름이 적힌 종이상자를 가면처럼 쓰고 연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7위 기업인 한화는 ‘지구 쌈싸먹은 상’을,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을 하는 닭고기 전문기업 하림은 ‘지구 뻥쳐먹은 상’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는 ‘베스트 커플상’, 영국의 보리슨 존슨 총리는 ‘지구 갈라먹기 상’을 받았다. 

▲ ‘지구먹방대회’에서 수상한 기업과 인물들이 신호탄을 들고 지구오염을 축하하고 있다. © 이주연

특히 ‘지구 활활 태워먹은 상’을 받은 두산은 “문재인 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내세웠던데, 베트남에 있는 붕앙2기 석탄화력발전소 2년만 가동하면 목표 수치 바로 초과 가능하다”며 “석탄발전으로 지구를 마지막까지 활활 태워먹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재 두산은 베트남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자바섬, 강원도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어 ‘온난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참석자들은 활동가들이 레드카펫을 걷고 수상 소감을 얘기할 때마다 “우우” “물러가라” 등의 야유를 보냈다. 

멸종반란한국은 기후위기에 따른 생명체 멸종에 저항하는 비폭력 시민불복종운동단체로, 영국의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등과 비슷한 성격이다. 멸종반란한국 활동가 고린(25) 씨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기후위기 관련 뉴스는 매일 나오지만, 기후위기의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리는 기사는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며 “시민들이 개인적 실천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기업과 정부를 향해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길 바랐다”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동물권리장전에서 활동하는 정미영(20) 씨는 “사회의 말뿐인 기후위기 논의에 답답함을 느끼고 개인으로라도 움직임여야겠다는 생각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린 씨는 “평범한 주부, 학원 선생,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난생처음으로 모여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고 희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구먹방대회’에 참여한 활동가와 시민들. 각자 만든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 김지윤

편집: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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