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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기후위기시대] ⑰ 지구를 지키는 달리기 ‘줍깅’하는 사람들
2021년 09월 26일 (일) 21:23:43 강훈 김지윤 기자 sbd500man@gmail.com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쓰레기였다. 막상 주워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달리니 사방에 쓰레기가 보였다. 담배꽁초, 사탕 봉지, 플라스틱 음료병... 한 번에 열 발자국을 가기가 힘들었다. 쉴 새 없이 무릎을 굽혀가며 쓰레기를 주워 비닐봉투에 넣었다. 따가운 볕을 등지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평소였다면 오르막길을 감안하더라도 3킬로미터(km) 거리는 15분 내에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오전 11시부터 충북 제천시 신월동 세명공원에서 쓰레기를 줍고 분리배출까지 하다 보니 3km 달리기가 낮 12시가 넘어서 끝났다.

달리다가 줍고...15분 거리 1시간 걸린 체험 

   
▲ 충북 제천시 세명공원에서 줍깅을 위해 출발하는 강훈 <단비뉴스> 기자. ⓒ 강훈

달리면서 쓰레기 줍기, 즉 ‘줍깅’을 하며 달린 거리는 짧았지만 운동 효과는 컸다.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 동작에 허벅지 근육이 뻐근했다. 쓰레기로 꽉 찬 20리터(L) 봉투 두 개를 양손에 나눠 들고 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봉투를 비우기 위해 근처 세명대 한의대 분리수거장을 잰걸음으로 오갔다. 

검은색 반코팅 장갑을 낀 손에서는 담배 절은 냄새가 났다. 유독 담배꽁초가 많았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꽁초들은 퉁퉁 불어있었다. 공원 안에 7~8명이 앉을 수 있게 배치된 의자 주변에서는 맥주캔, 소주병, 막걸리병, 과자봉지, 마스크 등이 수거됐다. 가장 치우기 힘들었던 쓰레기는 부패한 음료가 남아있는 플라스틱 컵이었다. 얼마나 방치됐는지 모르지만 썩은 내용물이 넘실거려 쏟아질 것 같았다. 공원 안에 화장실이 있었다면 변기에 내용물을 내려보내고 빈 컵을 씻어서 내놓고 싶었지만 화장실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내용물을 근처 하수도에 흘려보내고 빈 컵은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었다. 이렇게 내용물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음료잔을 1시간 동안 5개 치웠다. 

   
 
   
▲ 줍깅으로 금방 채워진 쓰레기봉투와 음료수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컵. 쓰레기봉투가 금방 차는 바람에 여러 차례 분리수거함에 비워야 했다. ⓒ 강훈

2016년 스웨덴서 시작된 ‘플로깅’이 원조

줍깅의 원조는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플로깅(plogging)이다. 스웨덴어 줍다(Ploka-upp)와 영어 달리기(Jogging)를 합친 조어다. 한국에선 줍깅 외에 ‘쓰담달리기’로도 불린다. 줍깅은 최근 놀이처럼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단체방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 실제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plogging을 검색하면 20만 건이 넘는 전 세계인의 게시물이 뜬다. 한글로 ‘플로깅’이라고 태그된 게시물을 검색해도 5만 건 정도가 나온다. 

사람들이 줍깅을 하는 장소도 다양하다. 산과 바다, 도심 공원, 동네 골목까지, 달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줍깅을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사진을 올린다. 20L 봉투 하나를 들고 큰 쓰레기만 주우며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변에서 100L 크기 마대 5~6개를 채우는 사람도 있다. 모든 쓰레기를 보이는 족족 담는 사람도 있고 담배꽁초만 주워 500밀리리터(ml) 페트병 하나를 꽉 채운 사람도 있다. 

줍깅을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로 시작해 9년째 이어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름다워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의 저자이자 4남매의 어머니인 이자경(39) 씨다. 그는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첫째 아이가 걷기 시작할 무렵,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서 넣는 놀이를 시작했다”며 “그 이후부터는 아이와 나갈 때 항상 그런 놀이를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찾고 버리는 게 ‘보물찾기’같다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매일 같은 동네를 돌면서 줍깅을 하는데도 주울 쓰레기는 늘 있다. 새로 버려진 것도 있지만, 과거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빗물이나 바람을 타고 내려오기도 한다. 이 씨는 “바닷가에서 줍깅을 할 때는 중국에서 떠밀려온 쓰레기도 주워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놀이로 시작한 줍깅을 9년째 이어가고 있는 이자경씨 가족. ⓒ 이자경

줍깅을 하며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 씨는 자신의 생활양식도 바꿨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버려진 물건의 흔적이 저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며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거나, 수세미를 키워서 설거지에 사용하는 등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쓰레기를 줍는 매 순간이 자신에게 환경문제를 이해시키는 과정”이라며 “기후위기에 맞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어스앤런 플로깅’등 단체 행사도 활발 

줍깅을 단체 행사로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지난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어스앤런 플로깅(Earth & Run Plogging)'행사를 ‘런데이’ 등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증하는 비대면 방식으로 열었다. 김진솔 그린피스 시민참여 캠페이너는 지난달 11일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달간 열린 이 행사에 1만4000여 시민들이 참여했고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 2000건 이상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김 캠페이너는 이번 행사에서 특히 플라스틱 문제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99% 이상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생산, 소각, 재활용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말했다. 실제 줍깅에서 수거하는 쓰레기의 상당량이 페트병, 커피 용기, 과자봉지 등 플라스틱 제품이다.  

미국 국제환경법연구센터가 2019년 5월 발표한 <플라스틱과 기후 : 플라스틱 행성의 감춰진 비용>(Plastic & Climate: The Hidden Costs of a Plastic Planet) 보고서는 플라스틱 생산에서 재활용에 이르는 수명 주기의 모든 단계에서 2050년까지 560억 톤(t)이 넘는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발생한 560억t의 온실가스는 남은 탄소예산(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하는 데까지 남은 탄소배출량)의 10~13%에 해당한다. 또 플라스틱 생산이 현재 상태로 진행된다면 플라스틱 생산과 소각 때문에 한 해 동안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2019년 기준 8억 5000만t에서 2030년에는 13억 4000만t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 그린피스가 주최한 ‘어스앤런 플로깅’에 참가한 시민들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 그린피스

김 캠페이너는 줍깅이 기후위기에 관한 관심과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줍깅을 통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내 주변과 환경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며 “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이 정부와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줍깅이 ‘그린워싱’의 도구가 되는 것은 곤란 

기후위기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줍깅이 유행처럼 번지자 산림청, 볼보자동차 등 공공기관과 기업도 줍깅을 활용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참가신청을 받고, 참여한 사람들은 줍깅 인증사진을 SNS에 올려 상품을 받는 방식이다. 소정의 참가비용을 주최 측에 내면 티셔츠, 쓰레기봉투, 장갑 등을 미리 주고, 정해진 기간 안에 줍깅 인증사진을 올리도록 하는 방식도 있다. 

   
▲ 기업에서 진행하는 줍깅 행사는 티셔츠, 장갑, 쓰레기봉투 등을 ‘줍깅 키트’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 강훈

줍깅이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마케팅에 활용되는 걸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참가자에게 상품이나 장갑, 쓰레기봉투 등의 키트(꾸러미)를 주는 게 오히려 쓰레기를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자경 씨는 “단체에서 제공하는 키트 같은 게 과연 친환경인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며 “분해가 쉬운 비닐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행사를 위해 비닐이 만들어지며 쓰레기가 더 늘어나는 셈”이라며 말했다. 그는 “집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봉투나 장갑 등을 활용해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고도 줍깅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탄소나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줍깅 행사를 통해 ‘그린워싱(친환경을 가장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달 31일 케이티엔지(KT&G) 복지재단은 ‘슬기로운 플로깅생활’ 행사 알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자 줍깅 동호회 ‘와이퍼스’ 회원들이 KT&G가 담배꽁초 처리에 대안을 내놓지 않고 플로깅으로 그린워싱을 하고 있다며 항의 댓글을 달았다. 

   
▲ 줍깅 동호회 와이퍼스 회원들이 KT&G 복지재단 줍깅 행사 게시물에 ‘그린워싱’이라고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 강훈

와이퍼스 회원 정세영씨는 지난 15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거의 매일 아이와 함께 줍깅을 하고 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가 담배꽁초”라며 “정작 KT&G는 담배꽁초 쓰레기에 관한 관심이나 대책은 없는데 그런 기업이 플로깅을 한다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KT&G가 책임지고 흡연자들에게 꽁초를 버리지 않도록 교육을 하거나, 흡연장소 및 꽁초 전용 쓰레기통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와이퍼스 회원 황다정씨도 “회사 측이 담배꽁초를 회수하거나 담배꽁초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 소재를 썩기 쉬운 생분해 소재로 대체하는 등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 : 김대호 PD

[강훈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편집기획팀 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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