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2020년 아카데미 편집상·음향편집상 수상작 ① '포드 V 페라리'

“편집이 잘 된 영화는 관객의 감정과 사고를 흥분시키고 동화시킨다. 그들은 이 영화가 자기의 전부인 것처럼 영화에 몰입할 것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대부3> <사랑과 영혼> 편집감독 월터 머치)

▲ 1959년 '르망 24시' 레이스 현장. 영화는 강렬한 배기음을 내는 스포츠카가 캄캄한 밤안개를 뚫고 나오며 시작된다. 몸에 불이 붙어도, 눈이 흐릿해져도 운전대를 놓지 않는 드라이버 셸비(맷 데이먼)가 주인공이다. ⓒ 영화 <포드 V 페라리>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블랙화면에 심장을 울리는 강렬한 스포츠카의 시동소리로 시작한다. 1959년 프랑스 르망, 마침내 ‘르망 24시’ 자동차 레이스가 시작됐다. 드라이버 ‘캐롤 셸비(멧 데이먼)’는 단독 선두로 달리고 있다. 캄캄한 밤과 안개가 눈 앞을 가린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질주하는 자동차, 드라이버 셸비는 이를 꽉 문다. 계속 되는 급격한 코너링에 셸비는 한껏 배에 힘을 줌과 동시에 짧고 빠르게 숨을 내쉰다. 계기판을 보니 연료도 떨어져간다. 비는 잠시 정비를 위해 피트스톱(Pit-stop)한다. 뜨거워진 엔진에 연료를 채우는 순간 자동차에서 채 내리지 못한 비의 몸에 불이 붙는다. 팀원은 다급히 불을 끄고, 비가 걱정돼 정비를 머뭇거린다. "Am I on fire?(내가 지금 불타고 있어?) fill the tank!(연료 채워!)"라고 소리치는 비. 불 따위에는 전혀 동요되지 않는다. 바로 다시 차에 오르는 비, 경주는 계속되어야 한다.

점점 짙어지는 밤안개, 대비되며 점점 더 흐려지는 비의 눈. 귀로는 고주파 이명이 울리고, 차는 더 요동친다. 레이스는 마지막 몇 분을 남겨 놓고 있다. 정신을 붙잡으려 본인 머리를 치며 안간힘 쓰는 비. 그만 정신을 잃고 사고가 나기 직전, “비! 셸비!” 비를 부르는 의사, 장면은 같은 앵글, 사이즈로 병원에서 눈을 감고 있는 비의 얼굴로 전환된다. 시간이 흘러 심장판막이 손상되어 드라이버를 그만둔 현재의 비로 돌아왔다. 의사는 비의 심박이 130BPM까지 올라가 잠깐만 유지돼도 심장마비가 올거라고 경고한다. 비는 담담하고 능청스럽게 "약 먹으면 되잖아요, 단거리 레이스, F1만 나가면 돼요"라고 대답한다. 병원에서 나와 차에 오르는 비, 약을 한가득 먹고 다시 과격하게 스포츠카를 몬다. 그의 내레이션과 함께 도로 위 레이스가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7000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차는 무게를 잃고 그대로 사라지지,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7000RPM 바로 거기서 만나는 거야. 그 순간에, 질문 하나를 던지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

무언가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포드 V 페라리>는 2시간 30분이 넘는 영화지만, 관객의 심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관객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수백 개의 컷과 수백 개의 사운드 트랙이 절정으로 관객을 끌고 간다. 영화는 미국 자동차 기업과 레이싱을 다루지만,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는다. 

▲ 레이싱 영화이자, 기업 드라마인 <포드 V 페라리>는 두 사람의 고뇌와 결단을 다루며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는다. ⓒ 영화 <포드 V 페라리>,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생사를 넘나드는 24시간의 레이스 ‘르망 24’ 

1950년 후반부터 미국 자동차 대량생산의 상징이었던 ‘포드’는 매출이 떨어져 위기를 맞는다. 젊은 세대는 저렴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포드보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세련된 외양의 ‘페라리’에 더 열광했다. 포드는 돌파구로 스포츠카 레이스를 선택한다. 포드는 위기돌파를 위해 당시 스포츠카 레이스의 절대적 1위였던 페라리를 인수합병하려 한다. 하지만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포드의 인수합병 제안을 거절하며, ‘공장에서 찍어내는 작고 못생긴 자동차 포드’는 절대 레이스를 펼칠 수 없다며 모욕을 준다. 수치를 당한 포드 자동차 회장, 헨리 포드 2세는 회사의 자존심을 걸고 르망 24 레이스에 참가해 페라리를 박살 낼 것을 지시한다. 르망 24는 당대 최고 자동차 레이스 경기로, 24시간 동안 2~3명의 드라이버가 팀이 되어 지옥의 레이스를 펼치는 대회였다.  

포드는 르망 레이스에서 미국인으로 유일하게 우승한 ‘캐롤 셸비(맷 데이먼)’를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고용한다. 더 이상 레이스를 하지 못하는 비는 레이싱 선수가 되어줄 드라이버를 찾는다. 그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지만, 열정과 실력만큼은 최고인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를 영입한다. 상명하복 문화, 꼰대들로 악명높은 포드 경영진은 두 사람에게 회사의 입맛대로 레이스를 펼칠 것을 강요하지만, 두 사람은 어떤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불가능을 뛰어넘기 위한 자신만의 질주를 펼친다. 

‘르망 24’를 그대로 재현한 미장센 

▲ 르망 24에서 펼쳐지는 레이스는 관객을 숨막히게 한다. 300km를 넘어 달리는 스포츠카, 귀를 뚫는 배기음과 관중의 함성 소리, 드라이버의 굳은 표정은 관객을 레이스 현장 속으로 이끈다. ⓒ 영화 <포드 V 페라리>,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건 경주 시퀀스다. 영화는 관객들을 르망 24 레이스 현장으로 초대한다. 오후 3시 59분, 레이스 출발 직전, 카메라는 헬멧 끈을 꽉 조이는 마일스, 24시간 레이스를 함께할 비와 정비 팀원들, 그리고 포드와 페라리 회장과 멀리서 TV로 보며 간절히 기도하는 가족들을 보여준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와 관중의 함성을 뒤로하고 출발선에 선 까만 선글라스, 마일스가 보인다. 오후 4시, 출발 신호를 알리는 깃발이 내려가면 드라이버들의 달리기가 시작된다. 르망 24는 드라이버가 본인 자동차로 달려가는 것부터 시작이다. 무리한 출발을 감행한 자동차들끼리 충돌해 산산조각이 나고, 이 사이를 빠져나오는 마일스의 스포츠카.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전면, 후면, 측면을 번갈아 보여주는 카메라와 드라이버 마일스의 표정 하나하나, 그리고 함께 빠르게 움직이는 기어와 엑셀 페달까지 숨 가쁜 화면 전환이 이어진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3분 33초! 3분 32초! 3분 31초! 조금씩 줄어드는 랩타임에 맞춰 환호하는 가족과 감독 비, 포드 임원단, 중계진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는다. 모두가 드라이버 마일스만 바라본다. 그는 한순간도 실수하지 않는 퍼펙트 레이스 ‘3분 30초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먹구름에서 번쩍이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엔진 배기음과 빗길과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전자기타와 드럼으로 변주되는 음악이 어우러져 숨 막히는 레이스가 이어진다.

레이스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제작진은 총제작비 약 1100억 원을 들였다. 과거 레이스에 나왔던 차량을 빌리고 직접 경주용 자동차를 제작해 약 400여 대의 차량을 영화에 투입했다. 60년대 경주용 차량을 재현하기 위해 차량 엔진과 볼트 하나까지 세밀하게 고증했고, 차량의 외부와 내부를 따로 촬영한 뒤 교차 편집해 삽입하는 등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으며 사실감을 살려냈다. 

배경인 경주 서킷도 완벽한 미장센으로 구현했다. 현재 사용하는 르망 24 서킷은 1960년대 당시 레이스 코스와 너무 달라서 사용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시골길 풍경에 관중석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감독은 가로세로 12미터(m) 규격의 블루스크린을 서킷에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한 뒤, 그 서킷 안에서 당시의 날씨, 환경,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되는 서킷 배경과 관중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배경 영상은 미국 조지아와 남부 캘리포니아 등 여러 도로에서 분할 촬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광야의 뜨거운 날씨와 갈색 식물, 프랑스 르망 숲의 시원한 날씨와 푸른 나무가 하나의 레이싱 서킷처럼 연결된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정교한 편집 덕분이다. 

감독은 24시간의 긴 레이스가 전개되며 변하는 해의 밝기, 숲의 식물 그리고 인물들이 점점 찌들어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레이싱 시간이 경과할수록 때가 묻어가는 차체와 휠, 그리고 지쳐가는 드라이버의 표정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레이스 장면

자동차의 속도감을 표현하는 건 매우 어렵다. 촬영팀은 르망 24의 코스 중 숲을 달리면 80킬로미터(km)는 160km로 보이고, 사막을 달리면 160km도 80km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전경 요소가 부족하면 속도감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촬영팀은 속도감의 차이를 앵글의 넓은 화각과 최대한 낮춘 로우 앵글을 통해 살려냈다. 카메라의 바로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과감한 클로즈업과 운전하는 드라이버의 땀구멍까지 보이는 클로즈업을 수시로 교차편집해 삽입했다. 또한 촬영팀은 레이스 차량의 앵글도 다양하게 찍기 위해, ‘트레일러 플랫폼 비스킷리그(Biscuit-rig)'장치를 제작했다. 배우들은 스턴트 드라이버의 200km가 넘는 속도를 직접 느끼며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CG 없이도 차를 운전하는 배우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영상 이미지와 함께 관객을 마음을 붙잡는 건 ‘음향’이다. 자동차 배기음이 너무 커서 간단한 이야기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물 간의 대화는 별도의 녹음과 세밀한 음향 편집으로 잡아냈다. 관객은 영화 내내 레이싱 경주의 현장감을 느끼면서, 인물 간의 긴박한 대사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음향감독은 자동차의 브레이크, 클러치, 기어 등의 기계음과 자동차의 시프트, 턴, 트랙을 가르는 소리, 도로 노면 소리 등 수많은 효과음을 따로 녹음했다고 한다. 영화에 사용된 개별 사운드 트랙만 수백 개였다. 정교한 음향 편집은 현장의 모든 소리를 어느 하나 튀지 않는 아름다운 심포니로 이루어 생생한 임장감을 만들어 내, 관객에게 전한다.

레이싱보다 인물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 영화 편집감독 월터머치는 책 <눈 깜빡할 사이>에서 감정, 이야기, 리듬, 시선, 평면성, 3차원 공간을 편집에서 중요한 6가지로 들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정이라 설명한다. ⓒ 이성현 재구성

<지옥의 묵시록> <대부 3> <사랑과 영혼>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으로 아카데미 편집상과 음향상을 휩쓴 할리우드 영화 편집자 월터 머치는 편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6가지를 설명했다. 감정, 스토리, 리듬, 시선, 평면성, 3차원 공간으로 위로 갈수록 중요도가 높다. ‘3차원 공간’은 흔히 말하는 연결(continuity)을 말한다. 컷이 바뀔 때 생기는 옥의 티를 없애는 것이다. ‘이미지 라인’은 ‘두 캐릭터 사이를 연결하는 가상의 선을 카메라가 넘나들면 안된다’는 180도 법칙, ‘다음 컷으로 넘어갈때는 적어도 30도 이상 차이가 나야한다’는 30도 법칙 등을 말한다. 또한 ‘시선’은 관객의 관심과 초점을 편집의 도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리듬은 컷의 길이와 사이즈를 활용해 흐름을 만드는 전개 방식, 스토리는 각본 자체를 의미한다.

월터머치는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감정·정서(Emotion)라고 말한다. 관객은 감정과 정서를 나타내는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한다. 월터머치는 감정·정서가 다른 요소보다 중요하다며 편집에서의 중요도의 비율을 무려 51%까지 준다. 옥의 티가 생겨도, 시선, 리듬 심지어 이야기 전개가 깨져도, 관객은 감정과 정서를 담은 장면으로 인해 영화에 몰입하게 되고, 주인공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인간의 뇌 속에 있는 거울 뉴런으로 인해 상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동요하고 감정이입되기 때문이다.

▲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빛이 나는 설득의 마법사 셸비, 강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진 못하지만 완벽한 재능과 전투력을 가진 마일스. 서로 다른 두 캐릭터는 영화에서 끊임없는 싸움을 일으키고, 두 인물의 감정과 정서는 관객에게 그대로 이입된다. ⓒ 영화 <포드 V 페라리>,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편집 감독은 두 명의 드라이버의 감정의 대비를 활용해, 목표 앞에 순수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영화 속 마일스는 자동차 페라리로 비유된다. 작가주의를 가지고 장인이 수공업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페라리의 방식은 마일스의 완벽주의적 삶의 태도와 닮았다. 마일스가 마지막 경주 전 서킷에서 아들과 함께 그려보는 3분 30초 안에 들어오는 퍼펙트 레이스는 하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레이스를 꿈꾸는, 마일스의 이상을 상징한다. 

반면에 셸비는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포드로 비유된다. 포드의 악덕 임원 ‘비비’가 포드를 대표하는 것 같지만, 비비는 감초에 불과하다. 진짜 포드를 상징하는 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만족을 추구하는 셸비다. 셸비는 양자 사이에서 능청스럽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한다.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보단 마일스에게 넘긴다. 

그랬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에서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레이싱 장면이지만, 심장을 울리는 건 두 주인공 크리스천 베일과 맷 데이먼의 감정과 정서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레이싱이 가장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두 캐릭터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더 신경을 많이 썼죠. 이건 흥미로운 딜레마입니다." (마일스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 인터뷰)

촬영, 편집, 음향이 만들어내는 영상의 힘

영상은 한 편의 시다. 이미지는 소리를 만나 하나의 심상이 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글은 ‘현실’을 상상하거나 생각해야 하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영상은 ‘실재’로 다가온다. 영상은 더 쉽고 자연스럽게 자기 삶과 연결되고, 삶에 실질적인 영향까지 끼친다. 감정이입이나 감동, 설득의 힘이다. 이는 리얼리티 영상의 현실을 환기하는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쟁과 재난의 고통과 위험을 다룬 글보다, 그 현장의 소리와 영상을 담은 장면은 우리의 감정을 격앙시킨다. 감정의 동요는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의 감동은 행동의 변화를 이끈다. 

<포드 V 페라리>에서 편집감독 마이클 맥커스커는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레이스 경기를 그리며 마일스와 셸비, 두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을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편집된 영화 장면 속에서 관객은 때로는 마일스가 되고 때로는 셸비가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의 7000RPM의 질주를 펼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열광하면서, 관객은 전혀 다른 두 삶을 이해하게 된다. <포드 V 페라리>는 영상, 음향, 편집이라는 영화 제작기법이 창조해 낸 영화적 시공간으로 관객을 끌고 가, 관객을 울리고 설득하고 감동시킨다. 영화라는 장르가 가진, 영상의 힘이다.


편집: 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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