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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낳은 교육’을 동네에서
[단비인터뷰] 임성재 파이데이아 청주지부 공동지도자
2021년 09월 12일 (일) 21:56:26 김동우 기자 nownhere92@gmail.com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古典)을 ‘모두가 읽었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는 것(Something that everybody wants to have read and nobody wants to read)’이라고 정의했다. 가치 있는 책이라는 걸 알지만, 어렵고 지루할 것이란 생각에 선뜻 집어 들지 않는 모습을 꼬집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 ‘파이데이아’ 청주지부를 운영하는 임성재(67) 공동지도자는 이런 편견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시민들과 함께 꾸준히 고전을 읽으며 ‘지루하고 어려운 이야기’라는 오해를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있다. 임 지도자를 지난 6월 24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의 인경리작은도서관에서 만나고, 지난 11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고전은 어렵고 지루하다’ 편견에 반기 든 독서 모임

   
▲ 고전학습단체 파이데이아 청주지부의 임성재 공동지도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인경리작은도서관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동우

'파이데이아(paideia)'는 교육 혹은 교양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고전학습단체 파이데이아는 대구 본부와 청주, 부산, 시흥, 경주, 안동, 창원 지부 등 전국 14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임 지도자는 2017년부터 파이데이아 청주지부를 이끌며, 자신이 운영하는 인경리작은도서관에서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로버트 허친스 총장이 1930년대에 도입한 ‘위대한 고전 100권 읽기’를 모방한 것이다. 

허친스 총장은 ‘위대한 고전 100권을 외울 정도로 읽은 학생만 졸업할 수 있다’며 고전 읽기를 교육과정에 적극 반영했다. 제임스 D. 왓슨(1962년 생리의학), 폴 로머(2018년 경제학) 등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시카고대에서 배출된 배경에는 고전 중심 교양교육 정책인 ‘시카고플랜’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파이데이아 청주지부는 시카고플랜에서 ‘서양의 위대한 저서’로 꼽힌 고전 54권 중 51권을 12년에 걸쳐 읽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임 지도자는 원래 대전문화방송(MBC)과 청주방송(CJB) 등에서 30년 동안 프로듀서(PD)로 일한 방송인 출신이다. 대전MBC에서 ‘참된 생활인’ ‘문화 살롱’ 등 지역민과 지역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방송국에서 은퇴한 그가 고전 읽기에 빠져든 데는 대구 계명대학교 신득렬 교수의 강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교육철학자인 신득렬 교수는 1991년 대구에 비영리교육기관 ‘파이데이아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임 지도자는 2016년 세종시의 국립세종도서관에서 그가 강의하는 플라톤의 <국가>를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발견한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고전 읽기와 관련된 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천 년 전 사상가와 공감케 하는 고전의 보편성  

임 지도자는 파이데이아 공동지도자 과정을 이수한 후, 자신이 운영하던 인경리작은도서관에서 청주지부를 설립했다. 인경리작은도서관은 그가 2011년 방송국에서 퇴임한 후 청주 도심에서 교외인 인경리로 이사하면서 집과 함께 지은 건물이다. 이웃과 소통하며 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한다. 2013년에 문을 연 이 도서관에서는 파이데이아 모임뿐 아니라 ‘하우스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 임성재 지도자가 파이데이아 청주지부의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인경리작은도서관.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온라인으로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 김동우

기술과 제도,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데 ‘오래된 책’인 고전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 지도자는 ‘보편성의 발견’을 꼽았다. 

“인간의 본성은 기원전 8세기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겪는 비극을 그때 그 사람들도 느꼈을 것이고, 고전이 이야기하는 그 시절의 문제가 오늘날 우리의 문제와 같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의 음유시인 호메로스가 집대성한 <일리아드>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겉보기에 지금과 다르다. 하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품는 감정과 생각, 고민은 본질적으로 지금과 같다. 문제가 드러나는 현상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도, 그 이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고전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 지도자가 고전의 보편성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그는 새로운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마다 참가자들에게 “고전을 읽는 것이 삶을 바꾸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서인가”라고 묻는다고 한다. 고전 읽기가 ‘읽기’로 끝나선 안 되며 실천으로, 삶으로, 배움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100번 읽는 것보다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투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온갖 철학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보다, 집 팔 때 다운계약서(실거래 가격을 낮춰 쓴 것)를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이데이아 청주지부의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에는 현재 64명이 참여하고 있다. 중학생부터 직장인, 주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 중 40~50대 주부들이 가장 많다. 참가자들은 월 회비 5만 원을 내고 주 1회 모임에 참여한다. 지정된 책의 60~70쪽 분량을 읽은 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공동지도자는 고전에 관해 ‘해설’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참여자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른 참여자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참가자의 공통점은 ‘지적 호기심’ 

   
▲ 임성재 지도자가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 참가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동우

참가자들이 모임에 나오는 이유도 다양하다.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작 읽어본 것은 없다’는 생각에 나온 사람,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의미에 관해 고전을 통해 배우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는 사람, 오랫동안 동경해 온 ‘독서하는 삶’을 누리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순수하지만 강렬한 지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임 지도자는 “다른 독서 모임과 달리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뚜렷한 의지가 없으면 지속하기 힘든 것이 고전 읽기 모임”이라며 “한 번 참여하면 오기가 생기는지 쉽게 그만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파이데이아 대구에는 이미 12년 차 과정을 마친 참여자도 있고, 청주지부에는 현재 4년 차 과정을 이수하는 참여자들이 있다.

하지만 고전을 실제로 읽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대학생은 학업과 취업, 직장인들은 생업에 쫓기느라 시간이 부족하다. 유튜브와 같은 콘텐츠의 범람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해해야 하는 고전 읽기를 ‘가성비 낮은 활동’으로 만든다. 임 지도자는 “삶에서 책을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술 마시고 골프 치고 남는 시간에 책을 보는 게 아니라, 30분이라도 하루에 책 읽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독서와 관련한 여러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완독’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순서’에 대한 강박이다. 임 지도자는 “이러한 강박들은 독서에 대한 부담을 높이고, 흥미를 떨어뜨린다”며 “서문과 목차를 먼저 꼼꼼하게 읽는 습관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책 읽는 시간’을 우선순위에 

그에게 2021년 지금, 한국인이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쓴 <엥케이리디온>인데요, 도덕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편람처럼 담은 책입니다. 요즘처럼 물질적 성공이나 높은 명예와 지위만을 추구하는 시대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 능력 밖에 있는 일을 잘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에 힘을 기울이고, 나를 돌아보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모티브가 되기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임성재 지도자는 ‘함께 읽으면 좋을 고전’으로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을 추천했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됐고, 같은 역자가 주석을 추가하고 번역을 다듬은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이 시중에 나와 있다. ⓒ 김동우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은 ‘수중에(in the hand)’ ‘준비된(ready to hand)’ 등의 의미로, 흔히 설명서(manual), 편람(handbook) 등으로 풀이된다. 즉 이 책은 곁에 두고 활용해야 하는 철학적 설명서, 편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임 지도자는 <엥케이리디온> 중에서 다음 내용을 특히 추천했다. 

“세상사 가운데는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이 있고, 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은 사고(思考), 노력, 바람, 혐오 등 우리가 하는 행위다.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육신, 재산, 명예, 통치 등 우리가 하는 행위가 아닌 것들이다. (중략) 겉으로 보기에 근사한 것이 있어 탐이 난다면, 이것을 기억하라. 그러한 것들은 적당하게 노력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것들은 완전히 포기해야 할 줄도 알고, 어떤 것들은 현실을 위해 뒤로 제쳐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내 뜻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거나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내 소관에 속하지 않는 이러한 것들을 탐하고 좇느라 내 소관에 속하는 것들을 놓칠 수 있고, 그로 인해 내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들도 정작 놓쳐버릴 수 있다.”


편집 : 정승현 기자

[김동우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시사현안팀 김동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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