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에릭 슐로서 ‘패스트푸드의 제국’

▲ 이강원 기자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릴 적 패스트푸드점에서 ‘서핑하는 구피’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부모에게 떼를 썼습니다. 기어이 한 손에는 햄버거를, 다른 손에는 구피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에릭 슐로서가 쓴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볼 때까지는 몰랐습니다, 구피 장난감과 햄버거는 탐욕의 죄악임을.

<패스트푸드의 제국>에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어떻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지 나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어린이들을 공략했습니다. 문화와 자본을 결합해 패스트푸드가 어린이의 친구인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장난감과 놀이공원을 만들어 어린이를 유혹했습니다. 패스트푸드 회사의 노림수는 어린이가 아닌 부모였습니다. 어린이 한 명은 구매력이 있는 부모를 데려오고, 심지어 조부모까지 끌고 왔습니다. 저도 충실하게 어른 둘을 끌고 들어갔습니다.

▲ 정의당·아르바이트노조 등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맥도날드 유한회사 앞에서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 맥도날드는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를 사용한 책임을 아르바이트생에게 전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패스트푸드 회사의 광고에 넘어가 탐욕에 빠졌지요. 광고에 넘어간 어린이는 간청형, 지속형, 완력형, 실력행사형, 협박형, 가련형의 행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실력행사형이었는데, 가장 위험한 부류였습니다. 원하는 것을 사줄 때까지 드러눕고 소란을 피워 부모를 난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얻어낸 구피 인형은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태우지 않았다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많은 햄버거를 삼키며 그때마다 죄를 범했습니다. 햄버거 빵은 밭에서 자란 밀로 만드는데, 땅 주인들은 쫓겨났습니다. 한입 베어 문 패티의 고기는 공장식 축산 속에서 고통받은 소의 것이었습니다. 목장주들 역시 농부와 비슷한 운명이었습니다. 도축업자들도 10분에 한 마리를 처리하느라 지치고 다쳤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재료는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그릴에 데우고, 기름에 화상을 입어가며 버거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제가 보는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이고, 그마저 키오스크로 대체됐습니다.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중시했고, 사람을 기계의 부품처럼 분업체계에 투입했습니다. 그 결과로 저처럼 단절된 인간들이 나왔습니다. 단절된 인간은 서슴없이 버거를 먹고 자본주의의 착취구조에 기여하며 자본의 공범이 됐습니다.

에릭 슐로서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다그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돌아서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2000년에 나왔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사람들은 더욱 단절되고 있습니다. 이미 키오스크가 아르바이트생을 대체했고, 언택트 시대라 해서 배달산업이 커졌습니다. 깨달아야 돌아설 수도 있는데, 서로 어려움을 알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지 두렵습니다.


편집: 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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