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유재인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좀비 바이러스, 역병은 왜란에서 처음 등장한다. 당시 조선은 왜군과 잇단 싸움에서 패해 병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턱 밑까지 들어온 왜군을 이기려면 일당백을 할 수 있는 병사가 필요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에서 이겨야 했던 영의정 조학주는 그때 ‘생사초’를 생각한다. 생사초는 죽은 이를 되살릴 수 있는 풀이다. 이 풀로 살린 사람들은 인육을 탐하는 괴물로 되살아난다. 조학주는 문둥병을 앓고 있는 수망촌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왜군에 대적할 계획을 세운다. 전쟁은 이겼으나, 죄 없는 수망촌 사람들은 이용당하고 무참히 죽는다. 역병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세계관이, 역병의 피해자는 가장 하층부터 시작된다는 설정이 그리 낯설지 않다.

두 해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세상이 시끄럽다. 전 세계에 300만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죽었다. 21세기에도 재난의 피해는 위계적이었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대부분이 하층민이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하고, 아파도 일을 쉬지 못할 정도로 소득이 낮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밀접 접촉을 하는 사람들이 감염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높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코로나19 확진자 중 장애인의 비율은 4%이지만, 사망자 중 비율은 21%였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의 40%가 요양병원에서 나왔다. 반면 고위험군 확진자에 속한 74세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만에 백악관에 복귀했다. 수많은 의료진과 신약, 의료기구가 그를 치료하는 데 투입됐다. 바야흐로 ‘유전무병 무전유병’의 시대다.

▲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세자 이창은 역병의 전선에서 백성들과 함께 싸운다.ⓒ 넷플릭스

죽지 않을 확신이 있는 기득권층은 코로나19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한다. 정부는 끊임없이 K-방역을 언급하며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방역에 힘써 달라는 국민의 염원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팬데믹 2년째인 지금, 정부가 과시하던 K-방역의 성과는 꽤 손상됐다. 하루에 7백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와서 4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더이상 버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인들이 한가롭게 소독과 거리두기가 잘 돼있는 국회 테이블에 앉아 백신 수급과 재난지원금 예산 관련 토론을 하는 동안에도 서민들은 죽어갔다. 팬데믹 상황에서 실효성 있고 신속한 민생 대책을 내놓지 못한 민주당은 결국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다.

재난 상황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최소한의 사회 정의다. 힘없는 국민의 한 표, 한 표로 권력을 잡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킹덤> 속 기득권은 둘로 나뉜다. 백성들을 이용만 하고 역병에 걸린 백성들을 모른 척하는 조학주와 백성들과 함께 역병의 전선에서 뛰는 세자 이창이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조학주는 죽고, 이창이 끝까지 살아남는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결말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편집 : 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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