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⑨ 대한민국 헌법 1조 개정안 제안 기자회견

대한민국 헌법 1조에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 의무’를 명시해 ‘환경국가’로 도약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6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헌법 1조 개정안 제안’ 기자회견에서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등 각계 인사 29명이 ‘대한민국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를 지닌다’는 3항을 헌법 1조에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현행 헌법 1조는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때 이 같은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함께 국민투표에 붙이자고 제안했다. 

각계 인사 29인 ‘헌법 1조 3항’ 신설 제안 

환경재단 주관으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청년대표인 하지훈(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신민희(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씨가 낭독한 제안서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재난은 지구자원을 소진해 풍요를 누린 대가”라며 국가적 경각심을 촉구했다. 이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와 폭염, 폭우, 가뭄, 산불 등 전대미문의 기상이변은 지구가 임계선 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신호”라며 “국가와 정부, 기업의 운영원리는 물론 우리 삶의 양식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헌법 1조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초등학교 때부터 환경운동에 참여해 온 하지훈, 신민희 씨가 헌법 개정 제안자 대표로 제안서를 낭독하고 있다. ⓒ 김대호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진행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승효상 건축가, 엄홍길 산악인 등 21명의 제안자가 현장 참석했고 안성기 배우,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도 제안서에 이름을 올렸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긍정적 의사를 밝혔으나 ‘당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불참했다고 최열 이사장이 밝혔다.

성낙인 전 총장은 개정안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프랑스는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헌법 제1조 개헌안이 이미 하원을 통과했다”며 “환경국가임을 선포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기회를 프랑스에 빼앗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3월 16일 ‘공화국은 생물다양성과 환경보전을 보장하고 기후위기에 투쟁한다’는 새 헌법조항 제안을 찬성 391명 반대 47명으로 통과시켰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개헌안이 상원까지 통과하면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세연 사단법인 아젠다2050 대표(전 미래통합당 의원)는 “헌법 제1조 3항이 환경헌법으로 규정되면 국가공동체 최고규범의 정신이 바뀌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후위기 대응 모범국이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은 기후위기로 ‘개죽음’ 맞고 싶지 않다 

김지윤 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 공동대표는 “기후위기 때문에 발생한 폭염, 산불, 장마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류를 위협하고 있지만 경제성장과 개발이 최우선 순위인 한국은 눈앞의 기후위기를 애써 부정하고 있다”며 “성장중심주의 관성을 끊어낼 수 있는 헌법 개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년들은) 기후위기 때문에 개죽음을 맞고 싶지 않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 김지윤 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 공동대표 발언 영상

제안자 중 고3으로 가장 나이가 어린 최민웅(민족사관고) 군은 “우리나라엔 환경과 관련된 공교육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며 “청소년들이 환경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심각성이나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청소년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3월 대선에서 후보들이 환경교육에 관한 정책 제안을 많이 받아들여 준다면 청소년이 미래세대의 주체로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현행 헌법 제35조1항에 환경권이 명시되어 있으나 제2항에서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해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헌법상 환경권은 주거환경의 평온, 소음이나 일조권 등을 해치지 말라는 소극적인 의미로만 활용된다”며 “이런 소극적인 내용으로는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직 변호사로서 현행 헌법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와 국민에게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확실한 목표와 의무를 부여해야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현지현 변호사 발언 영상

기후위기 대응에 좌우 없어야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정치권이 진영을 떠나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구체적인 기후위기 전략을 내놓은 후보가 한 명도 없었다”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의 ‘ㅎ’만 꺼내도 좌파 취급을 받는데, 기후위기 대응에는 좌우가 없어야 한다”며 내년 대선에서 각 후보들이 헌법 개정 제안을 받아줄 것을 기대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고문현 숭실대 교수는 개정안과 관련한 향후 일정을 설명하면서 “다양한 의견수렴과 국회 논의를 거쳐 내년 3월 9일 대선과 동시에 원포인트 헌법 개정안 찬반투표가 진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2/3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야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열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외에 다른 정당에도 개헌 논의 동참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대한민국 헌법 1조 개정안 제안 참가자들이 ‘STOP CO2 GO ACTION(탄소배출 중단, 행동 시작)’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대호

편집 : 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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