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축제' ③ 삶과 죽음

떠들썩했던 할아버지 장례식장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죽음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학교에서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찾아와 소식을 전해주셨다. 얼떨떨했다.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는 할아버지와 떨어져 살아 거의 보지 못했기에 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엄마에게는 아빠의 죽음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힘든 일이 있을 땐 부모님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그때 엄마가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은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했다. 까불기를 좋아하는 왈가닥이었지만, 엄마가 슬플 테니 장례식장에서는 얌전하게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은 밤새 화투를 치거나, 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에게 물었더니 ‘나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호상이라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아흔이 다 돼서 돌아가셨다.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며 망자의 명복을 빌되, 가족이 슬픔을 이겨내도록 곁에서 소리를 채우고 온기를 나누는 것이 어른들의 이별 방식이었다. 장례식장은 죽은 이를 기리는 동시에 살아남은 이가 살아갈 용기를 주는 자리였다. 죽음의 의례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남은 삶과 이어진다. 

죽음을 즐기는 '망자의 날' 축제

멕시코에는 죽음을 즐기는 축제가 있다. 매년 10월 31일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망자의 날(Day of the dead)' 축제다. 멕시코 사람들은 망자가 신의 허락을 받고 일 년에 한 번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아와 축복을 전해준다고 믿는다. 축제는 망자를 환영하기 위해 열린다. 죽음을 다루는 축제지만, 분위기는 음침하지 않다.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집을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길목에 노란 금잔화를 뿌려놓거나, 장난감과 술을 챙겨 묘지에 찾아간다. 핼러윈에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귀신 분장을 하지만, 망자의 날에는 죽은 이를 환영하기 위해 얼굴에 해골 분장을 한다. 흰색으로 얼굴 전체를 칠하고 두 눈덩이는 까맣게 파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골 분장을 한 사람들이 떠들썩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거리를 행진한다. 동그란 반죽 위에 해골과 뼈를 상징하는 모양을 낸 '망자의 빵'도 나눠 먹는다.

▲ 망자의 날 축제에서 멕시코 사람들은 얼굴에 해골 분장을 한다. 망자의 빵을 나눠 먹고 노란 금잔화로 집을 꾸민다. 신의 허락을 받아 살아있는 이를 축복하기 위해 잠시 이승에 오는 죽은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서다. 멕시코인들에게 죽음은 삶과 연결돼 있다. ⓒ Pixabay

망자의 날 축제는 아즈텍 문명에서 유래했다. 아즈텍인들은 오늘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도 어제 죽은 자들이 해를 밀어 올리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현재의 삶은 과거 죽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이어진다. 멕시코인에게 죽음은 공포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의 바탕이다. 망자를 위한 멕시코 망자의 날 축제는, 죽음의 축제가 아니라 삶의 축제인 것이다. 

웃고 떠들 수 없는 죽음들

먼저 떠난 이의 죽음이 남겨진 이들의 삶에 활력이 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이하는 당연한 죽음이거나, 납득할 수 있는 죽음이어야 한다. 친척 어른들이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와 웃고 떠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죽음이 늙으면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고 납득할 수 있는 죽음 앞에서만 장례식이 남은 이가 슬픔과 아픔을 견뎌내 살아갈 힘을 주는 의례가 될 수 있다. 아프게도, 이 땅에는 우리가 웃고 떠들며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이 너무 많다. 

아픈 죽음의 맨 앞에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이 국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나라를 지키고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총부리를 국민에게 겨눴다. 41년이 지났지만, 쿠데타와 발포명령자에 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행방불명이고, 정확한 사망자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강상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김군>은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김 군을 추적한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던 주옥 씨는 그를 한동네에 살며 어울리던 '넝마주이', '고아'라고 기억한다. 이름도 확실하지 않은 김 군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꺼내기 싫은 고통으로 남았다. 오기철 씨는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며 희생자 시신 관리 일을 맡았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김 군에 관해 묻는 감독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 안 하고 싶은 걸 기억해 버리면 잠을 못 자. 자네한테 이런 얘기하고 나면 난 또 오늘 저녁에 잠 못 자. 잠재웠던 걸 다시 깨우는 거나 똑같은 거야."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도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없었다. 우리는 두 눈 멀쩡히 뜬 채 300여 명이 수장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국가와 국군에게, 어제만 해도 함께 웃던 내 가족과 이웃이 죽임을 당한 상처와 고통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이 시민들을 진압하는 장면. 손에는 총을 들었고 군화를 신은 채 시민들에게 발길질하고 있다. ⓒ KBS

노동자의 죽음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평택항에 아버지를 따라 일하러 간 23살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 이선호(23) 씨가 300킬로그램(kg) 개방형 컨테이너(FRC) 날개에 깔려 죽었다. 노후화한 컨테이너는 날개 부분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컨테이너 한쪽 날개가 접히자 그 반대쪽 날개가 컨테이너에 있는 나무 조각을 줍던 이선호 씨를 덮쳤다. 현장에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안전관리자가 없었고 이 씨는 안전모도 쓰고 있지 않았다. <한겨레>는 "업무 지시 대부분은 원청인 물류 업체 '동방'이 내렸다"며 불법 하도급 정황을 보도했다. 한 해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이 2000여 명에 이르고, 노동자의 사망사고 소식이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다. 사고방지와 노동자 보호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유명무실하고, 기업은 여전히 효율과 이윤 타령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노동자는 오늘도 살아서,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 출근해야 한다.

▲ 대학생 이선호 씨가 인력사무소에 다니는 아버지 이재훈 씨를 따라 평택항에 일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죽은 이선호 씨를 발견한 아버지 이재훈 씨는 현장에서 졸도했다. 노동자의 죽음은 이제 일상이 됐다. ⓒ 연합뉴스

어린아이와 동물같이 작고 힘없는 생명의 죽음도 이어지고 있다. 어리고 연약한 생명의 죽음은 이 땅의 인권과 생명 경시 풍조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낸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정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사망자 수는 90명이다. 매달 2명이 넘는 아이가 고통 속에서 생명을 잃었다. 국과수 김희송 법심리실장은 정부 공식 통계의 4.3배에 이르는 아이들이 아동학대로 죽어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동물의 죽음도 처참하다. '고어 전문방'으로 불리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70여 명이 길고양이를 포함한 동물을 죽이고 학대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즐겼다. 한 해 얼마나 많은 동물이 죽임을 당하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죽음 앞에 노출된 생명들의 비명이 이어진다.  

▲ 웃는 모습이 예뻤던 정인이는 양부모의 학대로 생명을 잃었다. 태어난 지 16개월 만이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살인죄를 인정했고 정인이 양모에게는 무기징역, 양부에게는 징역 5년의 판결을 내렸다. ⓒ KBS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상실의 5단계'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자기 혹은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5단계를 거친다. 광주와 세월호 희생자, 노동자, 영아의 죽음은 부정과 분노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수용' 단계까지 가려면 타협을 거치고 우울이라는 자기 치유,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원인 규명과 사과, 화해가 우선돼야 타협과 우울의 단계가 있다.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고, 다시는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을 장치와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땅의 죽음들은 여전히 방치돼 있다. 부정과 분노만이 들끓고 있다.

미얀마 ‘띤잔축제’의 역설

군부 쿠데타에 맞선 미얀마 시민의 시위와 죽음이 다시 아프다. 미얀마의 역설은 축제와 학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에선 매년 4월 13일경 ‘띤잔축제’가 열린다. 미얀마 최대의 전통 축제로, 물을 뿌리면서 더러움과 귀신 등 부정적 기운을 몰아내고 행복을 빈다. 알록달록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채워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뿌리면, 물을 맞은 사람도 뿌린 사람도 웃고 마는 것이 평소 띤잔축제의 풍경이었다. 소방서에서도 물뿌리개를 내어준다. 올해는 다르다. 미얀마 군부에 저항하다 사망한 시민이 800명이 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상황의 심각함을 가리려 시민들에게 축제를 즐기라고 권고했다. 시위대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속이기까지 했다. 삶을 위한 띤잔축제는 미얀마 군부에 의해 죽음을 가리고 권력을 장악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 올해 미얀마 띤잔축제는 피로 물들었다. 군부는 축제 기간에도 총격을 멈추지 않았고 2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군부는 시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띤잔'을 즐기라며 권고했다. 시민들은 축제를 거부하며 "당신들은 시민의 피를 물 대신 사용할 것이냐"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 단비뉴스

이 땅에서도 축제가 죽음을 가리는 도구로 활용됐다. 1981년 전두환 정부는 '국풍 81' 축제를 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기로 쏠릴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그해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마실 거리로 채워졌다. KBS가 주최한 축제를 언론들이 나서 보도했다. 천만 명이 축제에 몰렸고 6억5천만 원이 쓰였다. 당시 짜장면 가격이 700원 정도였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였다.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으로 관심을 돌려 정치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을 유발하는, 전형적인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애도를 마치지 못한 억울한 죽음들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즐기는 축제는 폭력일 뿐이다.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SNS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길고양이 사진가 김하연 작가는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달력을 만들었다. 작가의 사진 속에 담긴 길고양이들은 꾀죄죄하고 말랐다. 집고양이들은 평균 15년을 사는데 길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은 3~5년이다. 짧은 생이지만, 길고양이는 로드킬과 배고픔,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사료에 넣은 독약 같은 것들과 매일 싸워야 한다. 여름엔 더위와 싸우고 겨울엔 추위와 싸우다 생을 마감한다. 버려졌던 길고양이의 죽음은 작가에 의해 기록되면서 우리에게 기억되었다. 기록과 기억은 죽음을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잠시 잊힌 삶과 생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이다.

▲ 김하연 작가는 길고양이들의 사진이 담긴 달력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를 만들었다. 그는 달력에 "사람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제인 구달의 말을 인용했다. ⓒ 김하연

축제의 계절에 죽음을 보며 삶을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축제인가, 죽음조차 삶으로 이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삶은 축제여야 한다. 이름 모를 넝마주이 시민군의 죽음, 노동자의 죽음, 아이와 동물의 죽음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있다. 이 모든 죽음은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현실의 삶이 꾀죄죄하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생명은 귀하다. 죽음을 슬퍼하고, 아파하고, 애도하자. 반복되는 죽음의 행진을 멈출 싸움에 나서자.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도, 그 죽음조차 삶에 활력과 용기를 주는 축제로 만들자. 우리 사회의 죽음들이, 미얀마 시민의 죽음이, 길고양이들의 죽음이 슬픈 이유는 '더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늙어서 죽으면 좋겠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축제’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과 곳곳에서 벌어지던 다양한 행사들, 마음도 덩달아 부풀어 올랐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춘 오늘, 돌아올, 아니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축제를 꿈꾼다. (편집자)

편집 : 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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