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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면 편집자라면?”
[저널리즘특강]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 부국장
주제 ① 굿바이 편집장: 종이신문 시대의 기억
2020년 09월 13일 (일) 21:11:35 민지희 권영지 기자 kjih0130@hanmail.net

“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이렇게 편집할 수 있구나. 이렇게 사진 찍을 수 있구나. 이렇게 기획할 수 있구나.”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 부국장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저널리즘특강에서 ‘레퍼런스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어떤 기사나 방송 등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 그것을 보완해 자발적으로 실행하기까지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장인처럼 매일 정해진 일을 하는 것보다 정해지지 않은 일들을 스스로 정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설렌다”고 말했다. 그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창간팀으로 다양한 기획을 시도했고, 작년 블록체인 온라인미디어 ‘코인데스크코리아’를 설립했으며 지금은 다시 신문을 만들고 있다.

   
▲ <한겨레21> 2006년 1월호. 국민의례에서 문제의식을 느껴 만든 기획이다. ⓒ 고경태

어떻게 기획하고 ‘요리’하는가

고경태 부국장이 한겨레신문사 주주∙독자 체육대회에 갔을 때 일이다.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국민의례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왜 우리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충성을 해야 하지?’ ‘왜 태극기가 자랑스러워야 하지?’. 문제의식을 느낀 그는 1년 동안 국민의례를 만든 이부터 그 의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 야구장에서 왜 꼭 애국가를 부를 때 일어나야 하는지까지 확장해 기획했다.

그 결과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내용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개정되었다. 그는 아예 없애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문제의식이 전달되고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 한국 신문 역사상 처음으로 일간신문 1면과 3·4·5면을 장식한 대형 특집 동물 기사 '제돌이의 운명'. ⓒ <한겨레>

1면 머리기사로 돌고래를 낸다고?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는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돌고래를 불법포획해 거래하는 일들이 있었고, 제돌이도 그렇게 ‘대공원’에 왔다. 이 이야기를 고경태 부국장은 ‘제돌이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1면에 실었다. ‘뉴스 현황보다 돌고래가 중요하냐’는 논란이 오갔지만 고 부국장은 1면을 고수했고, 그의 노력이 변화를 일으켜 1년 6개월 만에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갔다.

“가장 보람 있던 기사였습니다. 모든 언론사 신문에서 특종, 단독기사는 누군가의 안타까운 사연, 죽음을 쓰는데 돌이킬 수 없죠. 그걸 통해서 기자는 특종상도 받고 기획상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는 단순하게 제돌이의 문제가 아니라 돌고래를 지키려는 시민단체 등 여러 이해관계들이 제돌이를 통해 투사됐습니다. 완전히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고 부국장은 “동화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고, 이 기사는 100년 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고경태 부국장이 지난 6월 18일 저널리즘특강을 하면서 <한겨레21>에서 20년 동안 발행한 표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 권영지

유치함이 아이디어가 되는 방법

고 부국장은 “유치한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 반응에 주눅들지 말고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모든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지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유치한 생각을 아이디어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설명했다.

“처음 뭔가를 생각할 때 다 유치한 거 같아요. 유치한 걸 계속 생각하다 보면 유치한 게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이디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건 진짜 유치하게 끝나기도 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유치한 아이디어를 갖고 어떻게 실행에 옮길까 고민하는 거죠.”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다

“’글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다’라는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이 저에게 엄청 큰 깨달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경태 부국장은 ‘우리말 바로쓰기’에 평생을 바친 이오덕 선생을 언급하며 ‘고지식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오덕 선생은 살아생전 외래어를 쓰는 대신, 되도록 우리말로 풀어 쓰고 한자어를 배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부국장은 “어떻게 보면 이오덕 선생은 보수적인 눈높이에 계신 분이지만, 그분이 강조한 ‘아이들의 글쓰기’처럼 ‘솔직하게 써라’는 말이 큰 울림이 됐다”고 말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말고, 지어내지 마라.’ ‘아름답게 쓰려고 하지마라.’ ‘너의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써라.’ 고 부국장은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책에서 본 이런 가르침이 자신의 글쓰기 지침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글을 쓸 때 “어떻게 하면 솔직하게 쓸 것인가, 웃길 수 없을까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거운 이슈를 다룰 때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대한 이야기를 일상으로 가져오기

   
▲ 이회창, 노무현 후보의 영남권 여론조사를 명랑만화와 납량특집으로 표현한 <한겨레21> 418호 신문광고. ⓒ 권영지

고 부국장은 어떻게 거대한 이야기를 일상으로 가져와 친근하게 설명할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예로 2002년 영남권 대선 지지율 여론조사를 들었다.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58%로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율 23%보다 훨씬 높았다. 숫자로 드러난 사실을 독자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고민하다 ‘이회창 명랑만화, 노무현 납량특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선 후보 지지율이란 거대한 이야기를 일상으로 가져와 독자로 하여금 자신과 멀지 않은 이야기라고 느끼게 만든 것이다.

   
▲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새롭게 시도한 <한겨레21> 김규항∙김어준의 ‘쾌도난담’ 코너. ⓒ 고경태

신문의 힘을 빼다

고 부국장은 1990년대만 해도 언론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던 시기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뭔가 다르게, 뭔가 새롭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게 <한겨레21>에서 만든 김규항∙김어준의 ‘쾌도난담’이란 코너다. 새로운 방식의 대담 코너라 과도하게 형식을 파괴하고 엇나갈 수 있을 거란 우려도 했다. 그런데 이 코너가 나중에 <나꼼수>의 원형이 됐다. 고 부국장은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방식을 고민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들에 의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나 한잔하자”거나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는 말은 굉장히 막연한 약속이다. 고 부국장은 기획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뭔가 해보고 싶은 기획이 생기면 많은 난관에 부딪히는데, 이럴 때 기획자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획자는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전문가가 되지 않더라도 전문가보다 더 많은 기획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체 흐름을 알고 어떤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면 효과적인 기획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더 깊, 더 힙.’ 고 부국장이 정한 자신만의 슬로건이다. 어느 사안에 관해 저널리즘적으로 누구보다 더 ‘깊’게 파고들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힙’하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게 그의 목표다.

   
▲ 고경태 부국장의 30년 가까운 시간의 편집장 생활이 담겨있는 책 <굿바이, 편집장>. ⓒ 민지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학기 [저널리즘 특강]은 김언경, 김양순, 곽윤섭, 정연주, 강진구, 고경태, 민경중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정헌 기자

[권영지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디지털뉴스부 권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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