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특강] 정연주 전 KBS 사장
주제② 저널리즘의 기본

“국민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는 완전 바닥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저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질 낮은 기사를 꼽습니다. 기사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는 겁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주제로 두 번째 강연을 이어갔다. 정 전 사장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언급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를 이야기했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국제적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2012년부터 해마다 ‘뉴스 신뢰도 조사’를 통해 나라별 언론 신뢰도를 조사한다. 2016년부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이 연구에 공식 협력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2016년 23%, 2017년 23%, 2018년 25%, 2019년 22%로 해마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꼴찌였다.

▲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지난 6월 4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특강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홍석희

안팎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한국 언론

우리 언론계의 내부 평가는 더 박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언론인 의식조사 2017’을 보면 한국의 기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2017년 8월 21일부터 10월 20일까지 전국 256개 언론사 소속 기자 167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우리나라 언론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이 ‘매우 그렇다’ 1%와 ‘약간 그렇다’ 16.4%를 합친 17.4%를 기록했다.

저널리즘의 기본인 정확성, 공정성 평가에서 드러난 결과를 보면 이런 낮은 신뢰도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언론은 정확하다’는 응답은 ‘매우 그렇다’ 1%, ‘약간 그렇다’ 16%를 합친 17%이고, 공정성에 관한 답은 ‘매우 그렇다’가 0.7%, ‘약간 그렇다’가 9.1%로 합쳐서 9.8%였다. 정 전 사장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자 스스로 평가하는 우리 언론의 신뢰도가 국제적으로 바라보는 신뢰도보다도 낮다”고 말했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조사한 2018년 언론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37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 디지털뉴스 리포트 2018

언론에 대한 국민들 신뢰도 또한 다른 공적 주체와 비교해봤을 때 하위권이다. 코로나 이후에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했다. 지난 5월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공적 주체의 신뢰도’에 관하여 전국에서 만 18세 이상 1,000명 남녀를 설문조사한 결과, 언론의 신뢰도는 30%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질병관리본부가 92%로 1위를 기록했고, 뒤이어 국립중앙의료원(84%), 공공보건의료기관(80%), 보건복지부(79%) 등이 뒤를 이었다.

정 전 사장은 “결국 언론 신뢰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내부에 있다”라며 “포털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대에 그 포털 안에서 속보와 단독이라는 터무니없는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사 자체의 완성도나 퀄리티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나 스스로 기자로서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 ‘내가 여러분들 나이라면 기자를 다시 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언론의 위기와 돌파구

“우리는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없이 사회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한 전망에 직면해 있다.” (We are, for the first time in modern history, facing the prospect of how societies would exist without reliable news.)

영국 신문 <가디언>에서 20년간 편집국장을 지낸 앨런 러스브리저(Alan Rusbridger)는 ‘저널리즘의 재창조와 왜 그것이 지금 중요한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언론계의 위기 상황을 위와 같이 지적했다.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문제는 우리나라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 전 사장은 “1인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온갖 종류의 가짜뉴스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미디어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대표적인 전통 언론매체인 신문은 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신문에 따라붙던 광고비가 대부분 페이스북, 유튜브, 구글 등으로 옮겨가면서, 광고비가 회사 운영의 절대적 원천이었던 신문사는 생존 위협을 겪고 있다. 미국의 뉴스 산업 통계를 발표하는 미국신문편집자협회(ASNE)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신문사 취재인력 숫자는 2007년 5만2600명에서 2014년 3만2900명으로 급감했다. 정 전 사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6개월 동안 특히 많은 신문사들이 문을 닫고 있다”라며 “미국 언론계 내부 동향을 알 수 있는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서 오는 이메일의 대부분이 오늘 어느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라고 말했다.

▲ <뉴욕타임스> '보도준칙과 윤리(Standards and Ethics)' 페이지에 걸린 글귀. 독자들의 신뢰를 가장 강조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 <뉴욕타임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는 꾸준히 유료 구독자수를 늘리며 수익 구조를 개선해나가고 있다. <뉴욕타임스> 온라인 유료구독자는 지난 2012년 100만 명 수준에 불과했지만, 작년 5월을 기준으로 450만 명에 이르렀다. <뉴욕타임스> 마크 톰슨 사장은 작년 영국에서 열린 제71차 세계뉴스미디어총회(World News Media Congress)에서 “<뉴욕타임스>의 핵심 전략은 단연 질 좋은 뉴스”라고 밝혔다. 과감한 뉴스룸 투자로 능력 있는 기자를 채용하고 고품질 기사를 양산하고 구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그러한 <뉴욕타임스>가 보도준칙에서 가장 강조하는 가치가 ‘독자들의 신뢰(The trust of our readers)’다. 정 전 사장은 “<뉴욕타임스>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정말 노력하는 회사”라며 “미국에서 특파원 할 때도 그랬고 지금도 미국 관련 뉴스를 <뉴욕타임스>로 읽으면서 판단하는 나에겐 교과서 같은 신문”이라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열 가지 기본원칙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로 ‘질 낮은 기사’를 꼽았다. 그러면서 질 높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익힐 만한 책으로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기자 출신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The Elements of Journalism)을 제시했다. 이 책에는 저널리즘의 핵심적 목적으로 ‘시민들에게 정확하고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다.

정 전 사장은 “통제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개인이 시민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믿을만한 정보가 그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연구 단체인 PEJ(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와 CCJ(the 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m)에서 언론학자와 언론인들이 수년에 걸쳐서 의논하고 토론한 끝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열 가지 저널리즘 원칙을 만들어냈다.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을 향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은 철학적인 의미도 아니고, 추상적인 개념도 아니다. 정 전 사장은 “진실을 향한다는 것은 어떠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정보로 만들어가는 과정, 절차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해야 할 대상은 ‘시민’이다. 저널리즘은 가진 자들의 눈높이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정 전 사장은 “시민들 중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사실확인의 규율’이다. ‘사실확인’은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그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많은 언론사가 ‘팩트체크’ 코너를 신설하고 사실확인을 위해 공들이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다. 정 전 사장은 “작년 여름 이후 우리나라를 흔든 ‘조국 사태’ 당시를 떠올려보라”며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그 주장을 검찰이 했건 어떤 단체가 했건 개인이 했건, 기자들은 그대로 옮기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 한국 언론은 양편으로 갈라져, 한쪽은 서초동, 다른 한쪽은 광화문 쪽 견해를 검증 없이 전달하기에 급급했다. ⓒ KBS

“검찰 기자들 검찰로부터 독립되어 있나”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네 번째 원칙인 ‘취재 대상으로부터 독립성 유지’와 관련하여 검찰 출입 기자들을 힘주어 비판했다. 그는 2010년 자신이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중 일부 내용을 직접 낭독했다.

“(기자들이) 특히 검찰 권력과 거의 일심동체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검찰이 먹이로 던져주는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해 버린다. 검찰이 던지는 ‘피의사실’이라는 먹이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검찰의 논리와 검찰이 짜놓은 틀에서 사건을 본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의자의 기본 권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법조 취재의 본거지도 검찰청에 있고, 법조 기사의 주된 공급원도 검찰이다. 그렇게 함께 뒹굴다 보니 닮아 가서, 검사인지 기자인지 구분이 안 된다. 행태도, 논리도 너무 닮았다.”

정 전 사장은 “내가 이 글을 2010년에 썼는데, 지금도 (검찰 출입 기자들 행태는) 하나도 안 변했다”며 “저널리스트를 넘어서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건 그만큼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몸담을 언론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원칙은 각각 ‘권력 감시자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비판과 타협의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 전 사장은 “내가 <동아일보>에 다니던 시절에는 감시해야 할 대상이 ‘정치권력’ 뿐이었는데, 지금은 자본권력, 문화권력, 종교권력, 언론권력 등등 그 대상이 다양해졌다”며 “권력은 그 속성상 견제받지 않으면 100% 부패하기 때문에 반드시 권력에 관한 감시, 견제, 비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공영방송인 KBS가 서로 다른 견해들을 녹이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거운 주제도 흥미롭게 전달해야

일곱 번째는 언론이 ‘중요한 내용을 재미있고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 전 사장은 그 원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자기 일화를 소개했다.

“미국 특파원 시절, 출장 가는 길에 <월스트리트저널>을 비행기에서 읽었어요. 그런 대형 매체는 중요 뉴스를 광고 없이 싣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당시 읽은 게 에이즈를 앓는 청년에 관한 기사였어요. <월스트리트저널>은 매우 보수적인데도. 에이즈 관련 기사를 스트레이트로 잔뜩 실었더라고요. 그 기사를 읽으며 많이 울었어요. 주제는 무거운데, 에이즈를 앓는 젊은 청년에 관하여 스토리텔링을 훌륭하게 해낸 거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끝까지 다 읽도록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그 기사는 눈을 뗄 수 없는 내용이었어요. 그뿐 아니라, 에이즈가 왜 생겼고 동성애가 무엇이고 이것이 후천적이지 않고 선천적이라는 정보까지도 알게 됐죠. 에이즈와 관련한 어마어마한 기사로 아직까지 기억합니다.”

여덟 번째 원칙은 ‘어떤 뉴스든 단편적이지 않고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관해 한 단면만 보여주지 말고, 팩트를 문맥에 따라 포괄적으로 전달하라는 의미다. 아홉 번째는 ‘저널리스트는 개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 전 사장은 “예컨대 종군기자로서 전쟁의 한복판에 취재를 나갔는데, 누군가를 쏴 죽이려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며 “아홉 번째 원칙은 ‘저걸 (숨어서) 사진만 찍어야 할지, 양심에 따라 저 사람을 구해야 할지’에 관한 대답”이라고 말했다.

“1인미디어는 축복 또는 재앙”

▲ 유튜브 저널리즘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기존 레거시 미디어를 위협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 KBS

마지막 열 번째 원칙은 ‘시민들 어떤 뉴스에 부딪혔을 때,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누구나 1인미디어를 통해 스스로를 ‘기자’라고 칭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정 전 사장은 현직 시절과 비교하여 지금은 언론인이 되기 위한 진입장벽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 전 사장은 “요새는 누구나 1인미디어가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언론권력을 분산시키는 일”이라며 “독점적 권력을 분산한다는 측면에서는 이것이 축복일 수 있지만, 1인미디어에서도 ‘저널리즘의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저널리즘이 지금처럼 함부로 하지 않고 기본원칙을 지키도록 억지력을 가질 수 있는 수단으로 ‘징벌적 배상제’를 언급했다.

‘책임질 줄 아는 언론’ 돼야

정 전 사장은 이어 ‘윤리적 저널리즘의 다섯 가지 원칙’에 관해 설명하며 언론의 ‘책임질 줄 아는 태도’를 강조했다. 현재 한국 언론이 많은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보도에 관해 책임지지 않는 태도다. 그는 “자동차에 결함이 있으면 리콜되는 것처럼 품질이 나쁜 제품은 시장에서 퇴출되는데, 우리나라 언론이 퇴출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도에 책임지지 않는 언론사는 그 기본이 안됐으므로 문을 닫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정 전 사장은 진실과 정확성, 독립성, 공정성과 불편부당성, 인도주의적 태도 등 나머지 원칙을 설명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리스트 만들기 과제를 내기도 했다.

짐 레러의 저널리즘 원칙

미국 공영방송 PBS는 영국 BBC나 일본 NHK, 우리나라 KBS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형태의 공영방송이다. 수신료를 받지 않고 보스턴, 워싱턴DC, 시애틀 등 지역 PBS가 각각 모금을 통해 운영한다. PBS에서 36년간 저녁 뉴스를 진행한 앵커가 짐 레러(Jim Lehrer)이다. 대부분 미국 저널리스트들이 정당에 가입해 있는데, 짐 레러는 언론인으로서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지도,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그가 독립적인 저널리스트로 오래 활동하면서 세운 저널리즘 원칙 16개가 있다. 2006년 하버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그중 가장 중요한 9개를 뽑아 이야기했다.

▲ 36년 동안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자기 이름을 내건 1시간짜리 뉴스쇼를 진행했던 언론인 짐 레러(Jim Lehrer). ⓒ Pixabay

첫 번째는 기자 자신이 방어할 수 없는 기사는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기사에 관해 제기하는 비판에 반론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기사를 쓸 때 그 대상이 기자 본인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다뤄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 전 사장은 “마구 펜을 휘두르지 않고 사려 깊게 보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짐 레러 본인이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직접 느낀 점을 원칙으로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세 번째로 모든 이야기에는 겉에 드러난 것과 다른 측면의 주장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특히 논쟁적인 문제는 모든 사람들 이야기를 다 듣고 반영해야 하며, 한 가지 주장만 듣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도해서는 안 된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각각 독자가 기자 본인만큼 똑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전제할 것, 보도하는 모든 대상을 똑같이 생각할 것을 주문했다.

여섯 번째는 이야기의 합법적인 전환이 다른 것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개인의 생활이 사적인 문제라고 가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 전 사장은 “우리 언론은 누군가 주장을 하면 법적 판결이 나오기 전에 범인으로 규정지어 보도할 때가 많다”며 “이 규칙은 법률적인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개인의 생활이 사적인 영역이므로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일곱 번째는 스트레이트 뉴스와 의견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이고, 여덟 번째는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익명의 소스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언론 기사를 보면 ‘소식통에 따르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등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 매우 많다.

정 전 사장은 2019년 12월 6일자 <경향신문> ‘윤석열 “충심 그대로…정부 성공 위해 악역”’ 기사를 예로 들었다. 기사 제목을 보면 큰따옴표를 사용해 윤석열 총장이 기자에게 직접, 혹은 기자회견에서 그 내용을 말했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기사 내용을 보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충심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악역을 맡은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나와 있다. 이어지는 내용에도 ‘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윤 총장은 최근 주위에 “대통령에 대한 충심은 그대로고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도록 신념을 다 바쳐 일하고 있는데 상황이 이렇다”고 말했다’고 돼있다. 기사 어디에도 정확한 출처가 없고 ‘주위’에 의해 ‘전해진 내용’이 전부다.

정 전 사장은 이런 관행이 우리 언론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러분도 언론인이 되면 주위에 이런 유혹이 많을 것”이라며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데스킹 받는 과정에서 ‘소식통’에 의한 것으로 보도하라는 지시도 받게 될 텐데, 그때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할 때 반드시 괄호 안에 ‘본인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아 익명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을 표기한다.

마지막 원칙은 기자는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타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되고, 흥미 위주 기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 정 전 사장은 “짐 레러가 실제로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을 규칙으로 만든 것이라 아주 현실적이고 생생하다”며 “여러분도 이런 규칙을 만들면 언론인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정 전 사장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언론인이 됐을 때 데스킹 받는 과정에서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관해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김현균

‘정직성’ 강조하는 일류신문 <뉴욕타임스>

다음으로 정 전 사장은 <뉴욕타임스>가 지향하는 저널리즘의 세 가지 기본을 소개했다. 세 가지 기본은 진실, 공정성, 정직성이다. 그중에서도 정직성을 강조하며 ‘정직성에 관한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했다. 가이드라인 첫 번째는 인용할 때 큰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말은 반드시 취재원 입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 전 사장은 우리나라 언론이 이것을 가장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다른 이의 보도에 관해 쓸 때 출처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할 때 대부분 언론이 ‘한 인터넷 매체 보도에 따르면’이라고 쓰고 <뉴스타파>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기자 본인이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니면 타 매체 보도를 인용할 때 더욱 정직해야 한다.

세 번째는 팩트체크를 가장 먼저 하고 그에 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기자 자신이라는 것이다. 팩트체크를 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주소, 전화번호, 취재원의 직위 등이 있다. 만약 마감시간이 가까워져서 직접 팩트체크할 여유가 없을 때는 데스크에게 확인을 부탁해야 한다.

정 전 사장에 따르면 언론은 비판당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반론을 꼭 찾아서 보도해야 한다. 2007년 5월부터 KBS에서 <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이라는 제목으로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재벌이나 대기업에서부터 소상공인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의 잘못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고발>이 대기업의 문제는 제쳐두고 주로 소상공인의 잘못만을 보도한다는 것이었다. 정 전 사장이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수도 없이 강조한 내용이 있다. 그는 “소상공인에게는 <소비자고발>에 나오는 것이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꼭 비판해야 한다면 반드시 그들의 반론까지 담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정 전 사장은 <뉴욕타임스>의 정직성 가이드라인을 언급하며 취재시 가짜 이름이나 나이, 주소 등으로 신분을 위장하지 말 것과 사진을 있는 그대로 찍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보도준칙에 정직성과 관련된 내용을 이렇게 세세하게 명시해 놓은 것을 보면 <뉴욕타임스>가 왜 일류 신문으로 평가받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 전 사장은 ‘평탄하지 않았던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버텨냈는가’에 관한 질문에 답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혼자서 감당해야 했으면 힘들고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동료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선택의 순간에 힘이 됐던 것은 기독교 신앙이에요. 어려울 때마다 ‘내일 일은 염려하지 마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며 힘을 냈지요.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오면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어느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만 생각해요. 여러분도 앞으로 살면서 어려운 선택의 순간이 올 텐데, 그때 이 말을 떠올리세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일인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학기 [저널리즘 특강]은 김언경, 김양순, 곽윤섭, 정연주, 강진구, 고경태, 민경중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민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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