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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라 부르지 말라
[청년기자의 시선2] ’가족’ ① 이름
2020년 06월 07일 (일) 20:30:13 박서정 PD outsidebox94@gmail.com
지난 가을학기에 연재한 [청년기자들의 시선]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봄학기 [청년기자의 시선2]는 현상들 사이(Between)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갈등과 대립 너머(Beyond)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가족’이다. ‘가족’은 사회공동체의 기본 구성단위이자 인간관계의 1차적 연결구조다. 과거 방식과 단절하고, ‘뉴노멀’을 요구하는 코로나 시대는 삶의 기본요소인 가족의 개념과 의미에 다른 시선을 요청한다. ‘이름, 동네, 숨결, 일’의 키워드로 코로나 시대 가족을 주목한다. (편집자) 

‘위안부 사기극’에 넘어갈 뻔한 우리 할머니

작년 겨울 대구가톨릭대학교 도서관 게시판에서 화제가 된 광고가 있다. ‘경력 무관, 학력 무관, 나이 무관, 급여 월 300 이상’이라는 구인광고였다. 광고 하단에 있는 QR 코드를 찍으면 이런 글이 떴다. ‘1930년 그들도 속았습니다. 조선인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방식은 취업사기로 인한 유괴, 인신매매 등 명백한 강제징용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광고가 사기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광고였는데,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친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열예닐곱 나이 할머니는 높은 급여를 받고 타지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전해 들었다. 할머니는 갑갑한 마을을 떠나고 싶었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지역 유지였지만, 당신 몸보신과 첩 살림에 가산을 탕진했다. 어머니는 아들만 간절히 바랄 뿐, 여자아이인 할머니가 공부해 세상에 나가겠다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돈을 벌면 공부를 할 수 있다,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때 당신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감행하려 했다.

할머니는 오래 망설이다가 결국 겁이 나서 포기했다. 그 뒤 할머니는 나물을 팔아오라고 장에 보내면 장사하는 시늉도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떡을 입에 물고 돌아다녔다. 하도 제멋대로 굴어서 ‘되바라졌다’는 말을 듣는 별난 아이가 됐다. 세상 물정 모르는, 꿈만 많던 시골 소녀의 담이 조금만 더 셌더라면 꼼짝없이 일제의 위안부 사기극에 넘어갔을 것이다. 그만큼 할머니의 향학열은 뜨거웠다.

   
▲ 10대 때 마을 친구들과 사진을 찍은 할머니(맨 오른쪽 서있는 이). 사진과 당시 사정을 물어보자, 할머니는 “여기 동무들 중 나만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며 울었다. 그만큼 할머니의 향학열은 높았으나,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 배수연

우리 할머니, 배수연이 꿈꾸던 삶

이 땅의 대부분 여성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는 성취하려는 욕망이 컸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세운, 마을 소녀들을 간단하게 가르치는 야학을 2년 다니고는 소를 몰아야 했다. 야학에서 1등을 해 교장인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는 자리에서, 열한 살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얼굴을 가리고 서 있을 뿐 상을 받으러 나가지 않았다. 야학을 지을 정도로 지식도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서도 딸을 정식 학교에 보내지 않은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표출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성 리포터가 되고도 싶었지만 이미 자식 다섯이 딸린 몸이었다. 아첨하는 사람 말을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망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남들 앞에서 내 잘났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다. 공부를 제대로 못 한 자격지심이었을까? 할머니는 암기를 잘했고 붓글씨도 뛰어났다. 여든 나이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멋지게 써서 자랑스레 문 앞에 붙여놓곤 했다. 할머니에게 허용된 일은 거기까지였다. 이 땅의 여성에게 기회는 없었다.

할머니는 술을 마실 때마다 “못 배운 게 한”이라고 울먹였다. 배워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했다. 할머니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교육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 강렬한 성취 욕망을 원천으로 여성을 향한 편견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당당히 설 수 있었을까? 할머니가 아니라, 자기 이름 배수연으로 살았을까?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그럴 수는 없었을 거라고 하는데, 난 아니다. 배수연은 할 수 있었다. 기회가 제대로, 아니 동등하게만 주어졌더라면, 배수연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수연은 없었다. 할머니란 이름만 있었다.

‘할머니’란 이름에 갇힌 이용수 씨

 

 

 

 
▲ 이용수 씨가 5월 25일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연 운영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서 있는 자리와 정체성에 관한 간절한 외침이라는 것을 우리는 왜 주목하지 않을까? ⓒ KBS

기자회견에 나선 이용수 씨에게서 나의 할머니 배수연 씨의 모습을 본다. 이용수 씨는 되풀이해서 “그게 왜 그런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진행돼온 위안부 사업 활동에서 자신이 주체가 아니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조차 힘들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위안부 사업 논란에서 돈은 핵심이 아니다. 누가 운동의 주체인가가 중요하다. 전쟁범죄 피해를 입고도 살아남은 여성이, 인권과 평화의 미래를 한일 학생들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면서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식민주의의 잔재를 극복하고 인권을 바로 세우자는 담론과 운동에서 주도권을 빼앗겼다.

세상은 이용수 씨를 ‘할머니’라는 말에 가두었다. ‘할머니’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붙이는 친근한 호칭이지, 사회 운동을 하는 자리에서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당사자를 존중하는 표현도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대상을 일종의 성역화하고, 주체인 대상을 프레임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마치 청나라에서 살아 돌아온 여성에게 ‘화냥년’이라 이름 붙인 것처럼. 그의 문제 제기에 음모론을 제기하는 배경에도 그가 이 이야기에서 주체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용수 씨는 식민주의와 전쟁의 폭력에서 살아남아,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인권운동가이다. 할머니라는 호칭부터 그만둬야 한다. 이용수 씨에게 붙이는 할머니란 호칭은 그동안 이 땅이 저질러 온 ‘여성’에 대한 핍박에, ‘늙었다’는 이미지까지 덧씌운 끔찍한 용어다. 이름은 대상을 규정하고 대상이 가진 의미와 역사를 상징한다. 호칭과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일본 강점과 전쟁폭력의 잔재 극복은 불가능하다.

‘할머니’란 이름이 드러낸 역사

누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이용수 씨의 아픔이 가족 이야기처럼 느껴지니까, 우리 할머니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공감할 수 있으니까,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니라고. 그럴까? 아니다. 가족이라면 오히려 더욱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끊을 수 없다는 연으로 이어진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소망과 두려움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 OO는 원래 그렇다”고 말한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내가 상대를 잘 안다는 오만을 넘어서야만 진정한 가족, 아픔을 같이 극복할 수 있는 가족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성취 욕망과 주체적 삶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다시 ‘위안부 할머니’가 아닌 ‘이용수 씨’를 제대로 바라보자. 우리 할머니에겐 ‘배수연’이란  이름이 있다. 이름에는 주체성이 있고, 개인의 역사가 있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세상의 역사가 된다. 하물며 개인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딛고, 세계 인권운동에 우뚝 선 이용수 씨에게서랴. 우리 사회가 이용수 씨와 각각 욕망과 경험, 성격이 다른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불쌍하고 약한 피해자’ 프레임에 욱여넣은 채 ‘할머니’라고 부른다면,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인권과 평화로 가득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에, 가족의 이름 할머니에서 한국 노인 여성이 선 역사의 자리를 확인한다.


편집 : 김현균 기자

[박서정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기획탐사팀 박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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