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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달’ - 슬픔은 왜 우리들 것인가
[상상사전] ‘4월’
2020년 04월 16일 (목) 12:59:55 조현아 PD joninja@naver.com
   
▲ 조현아 PD

한자 ‘슬플 비’(悲)는 ‘아닐 비’(非)에 ‘마음 심’(心)을 합친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마음이 영 아니다’란 뜻이다. ‘연민’(憐愍)이란 단어의 앞 글자는 ‘불쌍히 여길 연’ 또는 ‘이웃 인’으로 읽어도 되니 ‘이웃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 들어있다. 연민은 남의 슬픔을 헤아리는 마음인데 자기 것도 아닌 남의 슬픔을 오랫동안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타인의 슬픔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연민을 지니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기억’이다. 남의 슬픔을 흘려버리지 않으려면 기억해야 하고 그래야 지속적인 공감능력이 생긴다. 지금은 모든 것이 쉽게 잊혀지는 ‘망각’의 시대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정보, 매일 쏟아지는 사건∙사고, 빠른 호흡으로 넘기는 스낵컬처 미디어 속에서 타인의 슬픔은 쉽게 잊힌다. 누군가의 고통은 그저 하나의 ‘발생사건’일 뿐이다. 신문과 방송, SNS와 웹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한다. 타인의 슬픔은 전시-소비의 경계를 아우르며 쉽게 망각된다.

5세기경 그리스에는 ‘비극 경연대회’가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극작가가 최고 지성인이었고, 수많은 청년이 비극 작품을 내놓아 경쟁했다. 관객들은 무대 위 주인공들이 자신인 양 함께 울고 웃었다. 비극 경연은 그리스라는 문명국가를 낳은 아주 중요한 의식이었다.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아테네 시민들이 그 과정을 통해 성인으로서 시민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도덕적, 감정적 성숙을 연마했고, 이기적 개인에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비극 경연이 일종의 시민교육이었고, 인류 최초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대 위 주인공 얘기를 마치 내 얘기처럼 이입하다 보면, 타인의 슬픔을 내 슬픔처럼 느끼고, 눈물을 흘리다 보면 놀라운 감정의 전이가 일어난다. 공포와 떨림에서 두려움과 연민, 슬픔으로 이어지는 전이가 바로 ‘카타르시스’다. ‘영혼의 정화’라는 카타르시스를 온 시민이 함께 느꼈다. 그러면서 도시국가 그리스만의 의식과 정체성을 형성했다. 슬픈 이야기를 함께 공유한다는 의식, 내 것이 아닌 슬픔을 공유하고 슬퍼하는 문화, 거기서 빚어지는 특별한 공동체성... 집단적 슬픔과 공유하는 카타르시스는 공동체를 만든다.

   
▲ 팽목항에는 너와 내가,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슬픔이 머문다. ⓒ Pixabay

4월이면 우리에게도 꼭 기억해야 할 슬픔이 있다.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그것이다.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막다른 처지에 몰렸을 때, 국가∙해경∙선원, 어느 누구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낡은 선박을 억지로 개조한 자본의 탐욕과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빚은 참사다. 그 후 유가족들은 오히려 ‘정치 집단’으로 몰렸고, 숱한 오해와 비난을 견뎌내야 했다. 자식 잃은 슬픔을 위로받지 못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해명을 듣지 못했다. 그들의 슬픔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다. 장준형 군의 아버지 장훈 씨는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는 책에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우리가 진상규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이 따로 있는 줄 알아요. 우리는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은 것뿐이에요. 박근혜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왜 구하지 않았고, 왜 해경들 중에는 배에 들어간 놈이 한 명도 없는지...”

우리에게는 우리의 ‘슬픔’이, 함께 슬퍼할 이야기가 필요하다. 특정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불운∙사고∙참사가 아니라 너와 내가 같이 슬퍼하고 애통해 할 슬픔이 필요하다. 슬픔이 진정한 ‘내 마음’이 되려면,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인은 비극 경연에서 같은 슬픔을 기억했고, 함께 슬퍼하는 영혼 정화작용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그런 참사가 되풀이되면 안 되기 때문이고, 그 일이 그들만의 불행이 아닌 우리 모두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인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하긴 했지만, 왜 우리의 4월은 잔인한 일들이 이토록 겹쳐 일어나는 걸까? 4월 3일은 수만명이 희생된 제주 4.3사건의 기점이고, 4월 9일은 인혁당 관련자 8명이 ‘사법살인’된 날이다. 4월 19일에는 자유당 정권에 맞선 학생들이 당일에만 104명이나 희생됐다. 우리나라는 4월 3일부터 19일까지 조기를 달아서 전국민이 그날들을 기억하고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서정 PD

[조현아 PD]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미디어콘텐츠부 조현아입니다.
타인을 이웃으로. 사회를 공동체로. 따뜻하게 세상을 '기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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