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드러낸 한국사회 밑바닥] ② 구직 청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여파로 대학졸업반 등 취업준비생들이 기업과 공공기관 등의 채용 연기, 자격시험 일정 취소, 학습비용 증가 등 ‘3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높은 청년실업률 속에 더욱 불확실해진 미래를 불안해하는 취준생과 복지전문가들은 ‘재난 수당’ 등 국가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채 연기, 자격시험 취소, 학습비용 증가 ‘3중고’

취업준비생 김모(28·부산 금정구) 씨는 입사 전형을 밟던 부산교통공사와 반도체부품 제조업체 A사에서 지난달 말 모두 잠정 시험 연기 통보를 받았다. 부산교통공사는 필기시험, A사는 인공지능(AI)면접 후 인·적성 검사단계가 지난달 말로 예정돼 있었는데 일정이 전격 연기됐다. 김 씨는 “도서관에서 컨디션 조절하면서 시험에 모든 걸 맞추고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돼서 허탈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채용 일정이 주요 기업들 공채와 겹쳐 부산교통공사 시험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 코로나 사태로 입사시험 일정을 잠정 연기한 부산교통공사. 오른쪽은 지원자들에게 보낸 필기시험 연기 공지. ⓒ 부산교통공사, 이동민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박지영(28·서울) 씨는 주요 신문·방송사들이 코로나 사태 등의 여파로 2,3월 중 채용 공고를 전혀 내지 않아 막막하고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라디오방송사와 지역신문사 등) 이맘때 뜰 것으로 예상했던 공고가 나지 않고, 향후 공채도 연기 여부를 알 수 없어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부산에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허원혜(25) 씨도 “부산 지역 신문사와 방송국들이 지난해 채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는 이때쯤 공고가 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감감 무소식”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허 씨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더라도 경기에 영향을 미쳐 언론사 채용문이 더 얼어붙을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예년 같으면 대기업들의 상반기 공채와 공무원 시험이 시작됐을 3월이지만 올해는 ‘연기’ 공고만 이어지고 있다. 삼성, 현대·기아차, 씨제이(CJ) 등 유수 기업들이 3월 초 시작할 예정이었던 상반기 채용일정을 4월 이후로 연기했거나, 연기를 검토 중이다. 공무원 시험도 연기됐다.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9일로 예정됐던 5급 공무원 공채와 외교관후보자 선발 1차시험, 지역인재 7급 수습 필기시험을 잠정 연기했다. 또 이달 28일로 예정됐던 국가직 9급과 소방직 공무원 필기시험을 5월 이후로 잠정 연기했다.

일정 무너져 마음 ‘붕 뜨고’ 주머니 ‘텅 비고’

부산에서 일반행정 직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모(34) 씨는 자신의 상황을 ‘붕 뜬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는 “시험 예정일에 맞춰 공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뤄지니까 마음도 해이해지고 그 틈바구니로 끼어든 다른 일을 하다 보니 계획을 잡을 수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 달 4일 경찰공무원 필기시험을 치르려다가 무기연기 통보를 받은 김모(25·인천) 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했다. 그는 “4월 시험을 예상하고 생활비를 그에 맞게 준비했고, 끝나면 바로 알바를 할 생각이었는데 시험이 미뤄지면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됐다”며 “부모님 신세는 지지 않고 싶었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겨울 방학 중 각종 공인점수를 확보하려던 취업준비생들은 어학시험과 자격시험 등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곤란한 처지가 됐다. 토익시험(TOEIC)을 주관하는 와이비엠(YBM) 한국토익위원회는 코로나 감염 예방을 이유로 지난달 29일과 이달 15일 예정됐던 정기시험을 모두 취소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가기술자격 상시시험을 3월 한 달 동안 전면 중단했다. 또 2020년 제 1회 기사 자격증 필기시험을 이달 22일에서 다음 달 25일로 미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컴퓨터활용능력 등의 자격검정을 3월말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 지난 12일 저녁 부산 서면의 한 경찰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 코로나 사태 여파로 로비가 텅 빈 모습이다. Ⓒ 강찬구

이런 공인시험 취소는 취업기회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학생 김모(28·부산) 씨는 오는 29일까지 입사지원서를 받는 베트남 진출 기업에 영업관리직으로 지원할 생각이었으나 지난 15일로 잡혀있던 토익시험까지 취소되면서 지원을 포기해야 했다. 토익 시험은 시험일부터 성적발표까지 2주 가량 걸리는데, 지원 마감 때까지 점수를 받을 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영어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일본어가 특기여서 영어·일본어 특기자를 우대하는 이번 전형을 기대했다는 김 씨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낙담했다.

취업준비생 전모(28·경기도) 씨는 “(공채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어학성적과 자격증을 따 놓지 못하면 1년 취업 준비에 모두 영향이 있을까 봐 불안하다”며 “(시험이 연이어 취소되면서)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전반적인 취업준비와 인생이 꼬인 듯한, 매우 안 좋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공공도서관 휴관, 비싼 ‘스터디 카페’ 전전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공공도서관이 일제히 휴관하면서 취준생들은 공부할 장소를 확보하는 데도 불편과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지난달 5일 공공도서관을 포함한 공공시설 운영을 중단했다. 부산도 지난달 21일 부산시립 시민도서관 등이 휴관을 시작했고 지난 5일부터 모든 공공도서관이 휴관을 공지했다.

▲ 부산 연제구의 한 독서실 게시판에 붙은 공지.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해 독서실을 찾는 학생들에게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을 권하고 있다. 공공도서관 대신 사설 독서실을 이용해야 하는 것도 취준생들에겐 큰 부담이다. Ⓒ 강찬구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박두호(27·경북 김천) 씨는 다니던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2주에 6만원씩을 내며 독서실에 등록했다. 박 씨는 “확 트인 공간에서 공부를 해야 잘 되는데, 독서실은 칸막이가 돼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역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박지영 씨는 “도서관이 휴관한 후 스터디카페 등에 가는데 지출이 코로나 사태 이전의 2배 정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4000원짜리 백반을 먹고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다가 스터디카페에서는 커피 값으로 4000원을 쓰고 밥값으로 7000~8000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 인천 서구에 있는 80석 규모의 스터디카페. 한 달에 약 16만원의 이용료를 받는 이곳은 코로나 사태 이후 공공도서관이 대거 휴관하면서 평소 15명가량이던 이용객이 40명 이상으로 늘었다. Ⓒ 조한주

‘재난 수당’ 적극적 검토 희망

취업준비생들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공채 연기와 시험 일정 취소, 도서관 휴관 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구직의 불확실성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고통 받는 청년들을 위해 국가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전 씨는 “주머니 사정이 딱한 취준생들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구직수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해 온 가톨릭대 백승호 교수(사회복지학)는 지난 11일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을 ‘위험의 보편화’ ‘위험의 유동화’로 진단했다. 그는 “남녀노소, 소득수준 등과 무관하게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위험의 보편화), 당장은 큰 고통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위험에 노출돼 있다(위험의 유동화)”며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보편적으로 지급하되, 덜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난기본소득이 필요 없는 부유층은 청년이나 특정지역(대구 등) 등을 지정해서 기부하도록 제도화 할 수 있다는 게 백 교수의 구상이다. 그는 경기도가 시행하고 있는 ‘청년기본소득(연간 100만원 지급)’을 성공사례로 들며 “기본소득을 받은 청년들은 이 위기가 극복되면 그 고마움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염병은 우리 사회가 눈감아온 병폐들까지 남김없이 드러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가 펼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있는가 하면, 고립돼 있으면서도 서로 혐오하고 배제하고 ‘위험의 정치화’를 꾀하는 모습들도 목격된다. 직격탄을 맞은 특수고용노동자와 자영업자, 무한 연기된 채용시험에 공부할 곳조차 폐쇄된 취업준비생, 일하는 부모의 갈 곳 없는 어린이, 영세 요양원과 정신병원에 버리다시피 방치해온 노인과 환자들은 우리 정치경제 체제와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벌거벗겨 놓았다. 그럼에도 힘있는 세력들은 부끄러운 참상을 얼른 가리고 싶은 걸까? 일부 교회는 구원의 주체가 되기보다 질병 전파의 매개체가 되고 있고, 상당수 정치세력과 기성 언론은 정략과 정파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대로 가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우리 사회가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병폐는 다시 잠재된 채 일상으로 돌아갈 테니까. 비영리 대안 매체 <단비뉴스>가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단면들을 부각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편집 :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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