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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실습생 죽음으로 떼미는 기업
[여론광장] 허환주·김미숙 ‘김용균 이후를 말하다’ 북토크
2020년 01월 18일 (토) 20:59:53 윤종훈 임지윤 기자 yoonjh2377@gmail.com

“우리나라 청년들이 너무 위험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제 갓 졸업해서 사회에 나온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받게 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서 일하게끔 만듭니다.”

1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제이유(JU) 동교동의 바실리오홀에서 ‘김용균 이후를 말하다’ 북토크가 열렸다. 현장실습 나간 직업계 고등학생 등의 산업재해를 다룬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의 저자 허환주(41) <프레시안> 기자와 김미숙(52) 김용균재단 이사장, 전수경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이 패널로 나왔다.

‘위험의 외주화’ 해결 못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 실습생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을 낳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 임지윤

지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김용균(당시 24세)씨의 어머니인 김 이사장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이 지난 16일부터 시행됐지만 근본적 변화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안법은 통과됐지만 재계 반대가 너무 심해 하위 법령에서 기업이 (노동자를) 살인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들이 다 삭제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업이 안전장치 없이 비정규직 등에게 위험한 업무를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정 산안법은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 범위를 기존 ‘사업장 내 22개 위험 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 그리고 사업장 밖 원청이 관리하는 장소’로 확대했다. 그러나 김용균씨가 일했던 발전소나 지하철, 조선업, 건설현장 등은 도급을 금지하는 ‘위험사업장’ 지정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해 작업을 전면 중지하는 조항도 요건이 더 까다롭게 바뀌었다.

김 이사장은 “원청은 하청에게 일감을 줬으니 책임이 없다고 하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어서 권한이 없다고 하니, 그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전 사각지대에서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기업 측에 안전사고의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해 2400여명 산재사망, 정부와 기업 모두 방관

   
▲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후마니타스 출판사, <프레시안>이 공동주최한 북토크에 (왼쪽부터) 허환주 기자, 김미숙 이사장, 전수경 조사관이 발언자로 나섰다. ⓒ 임지윤

“우리나라에서 한 해 2400여 명이 용균이처럼 안전하지 않아서 죽고 있다는 걸 듣고 엄청 놀랐어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줘야 할 국가가 어떻게 국민을 무시하고 짓밟는가 싶었어요.”

김 이사장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8년 동안 12명의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동안 고용노동부에서 제대로 조사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면 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들의 죽음 이전에도 위험한 작업현장을 시정해달라고 (하청 노동자들이) 28번이나 목소리를 냈지만 사측은 비용을 이유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11일 발표한 ‘석탄화력발전산업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간 한국남동, 서부, 중부, 남부, 동서발전 등 발전 5사에서 33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중 326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특히 목숨을 잃은 20명은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김용균재단은 위험의 외주화 금지 사업, 비정규직 철폐 운동, 청년노동자 권리보장 사업, 차별 없는 일터를 위한 연대 활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청노동자 죽거나 다쳐도 ‘무사고 기록’은 계속

“정말 죽을 뻔했어요. 제가 일한 곳은 경남 창원에 있는 한 조선소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었어요. 사람 4명 정도 비좁게 설 수 있는 7미터(m) 높이 밀폐된 공간에서 난간 하나 없이 왔다 갔다 했어요. 발을 헛디디면 바로 세상이랑 안녕 하는 곳이죠. 어느 날 점심 먹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거예요. 옆 동에서 일하던 여성 한 명이 배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됐다는 거였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더 놀랐던 건 사고소식을 들은 다음날 출근했는데 ‘오늘도 무사고 699일’이라는 거예요.”

   
▲ 취재를 위해 조선소에 위장 취업했던 경험을 회고하면서, 특성화 고교생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현장실습 실태를 설명하고 있는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 ⓒ 임지윤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는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를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지난 2011년 경남 창원의 한 조선소에 위장 취업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산재사망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갔던 그는 ‘하청노동자는 죽거나 다쳐도 사고기록으로 치지도 않는’ 그곳에 고교실습생으로 왔다가 계속 일하게 된 청년들을 만났다고 한다. 현장실습제도는 1963년 박정희 정권 때 생겼는데, 정규직이 꺼리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열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떠맡기는 구조적 장치가 됐다고 허 기자는 지적했다. 

   
▲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의 산재 사고를 다룬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표지. ⓒ 후마니타스

특성화고 학생들은 실습 나간 일터에서 위험에 내몰리거나 인권침해를 당해도 ‘참고 견딜 것’을 강요받는다고 한다. 1백 명 넘게 근무하는 콜센터에 실습을 나간 경우 한 평도 안 되는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일하는데, 화장실에 가려 해도 ‘어디 가냐’는 핀잔과 함께 시말서를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견디다 못한 학생이 중도에 포기하면 학교에서는 ‘사회 부적응자’ ‘루저’ ‘너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등의 막말을 하고 빨간 명찰을 달게 하거나 교무실에 하루 종일 서 있게 하는 등의 징벌과 모욕을 가하기도 한다고 허 기자는 설명했다.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진 것은 이명박 정부 때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영세사업장에까지 학생들을 내보내면서라고 한다. 허 기자는 “그렇게 하니까 사고가 나는 것”이라며 “근로감독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최근 문재인 정부도 취업률을 60%까지 높이자면서 실습운영 역량과 안전대책을 검증받은 기업이라는 의미에서 ‘선도기업’이란 걸 만들었다”며 교육정책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선도기업이라는 기준이 모호하고 현장심사도 없이 선정하는 등 문제가 있다”며 “결론만 얘기하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과도기 상황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노동 외면하고 편한 것, 싼 것만 찾지 않았나”

   
▲ 윤혜경(28)씨 등 청중 50여 명은 위험한 노동환경, 현장실습제도, 학력차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질문하고 의견을 나눴다. ⓒ 임지윤

허 기자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소비자’인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외면하고, 문제가 많은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우리가 편한 것만 찾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열여덟 살 아이가 위험한 환경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만든 생산품이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은 뒤로 한 채 값싼 것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허 기자는 “그런 공정 아래 김용균 씨가 있었다”며 시민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는데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며 “우리가 불편한 이야기를 보려고 노력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보수·진보의 기울어진 언론 지형과 극성스런 가짜뉴스 등으로 건전한 여론형성이 힘든 사회입니다. 제대로 이슈화가 안 되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갈등이 잠복하는, 이른바 ‘Non-issue, Non-decision Society’가 바로 한국입니다. 주요 정책이나 법을 결정할 때 공론화 또는 숙의 과정이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 또는 소수자의 건강한 목소리조차 기성 언론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네이버> <다음> 포털과도 뉴스검색제휴를 한 <단비뉴스>가 여러분의 목소리를 확성하는 [여론광장]을 개설합니다. 자료를 미리 보내주시면 취재에 도움이 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은초 기자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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