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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을 따라 걷겠습니다”
[상상사전] ‘아버지’
2019년 12월 04일 (수) 11:27:37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 임지윤 기자

어머니 말로는 내가 옹알이를 떼던 시절 아버지만 보면 울었다고 한다. 낯선 사람이라 생각하고 경계한 것이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 초등학교 교사라면 방학도 있고, 수업도 일찍 끝나니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아버지는 집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가족여행보다 자연이나 역사 탐방을 아이들과 다니는 시간이 많았고, 나는 쫄래쫄래 따라가 나보다 몇 살 나이 많은 형, 누나들과 놀았다. 대중집회나 거리시위에 참여하는 날도 많았다. 어머니가 시켜서 아버지에게 ‘일찍 들어오세요’라고 전화를 하면 차가 빵빵거리는 소리부터 사람들 노랫소리나 함성 등으로 주변이 시끄러웠다.

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를 어디론가 자꾸 데려가는지. 효순∙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소파협정 폐기하라, 주한미군 물러가라”고 외칠 때 나는 겨우 아이들과 공 차는 걸 좋아하는 12살 아이였다. 아버지가 설명해줬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미국을 찬양하는 친구와 싸우곤 했다. 꽃과 나무, 철새와 별을 사랑한 아버지는 시간만 나면 달리던 차를 세우고, 걷던 걸음을 멈추고 자연을 사진기에 담았다. 만화책에서만 보던 만물박사는 멀리 있지 않았다.

   
▲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 밝게 뛰노는 아이들의 미래에 귀 기울이는 '언론인'이 되기로 했다. © Pixabay

교사인 아버지가 부담스러웠다. 자유롭던 내 삶에 아버지는 비교 대상이었고 낮에 학교에서 쓴 반성문은 담임이 아버지에게 전달해 어머니도 보곤 했다. 늘 친구들 중심에 서려고 하던 내가 전교 회장에 당선되자 믿었던 친구들은 “아빠 백이네"라며 비아냥댔다. 아버지가 TV 토론회에 출연할 때면 자랑스러우면서도 다음날이 걱정됐다. 결국 난 그런 ‘당신’을 외면하고 말았다. 사춘기가 올수록 정직하고 따뜻한 아버지와 최대한 다른 삶을 살려고 했다. 반항적이고 사고 치며 희열을 느끼는 못난 아들이 되려 했다.

26살, 사춘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군에서 전역한 지도 2년이 지났지만 내 삶은 여전히 같았다. 오히려 내가 돈을 벌 수 있고 밤늦게까지 놀 수 있게 되니 망나니 삶이 따로 없었다. 대학에서 F학점을 받아도 요즘 세상에 A보다 F 받기가 더 어렵다며 술을 퍼 마셨고, 친구가 여자친구와 헤어지면 마치 내가 헤어진 것처럼 함께 슬퍼하며 귀가도 하지 않았다. 그해 11월 아버지 앞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맞을 각오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설치며 밖을 나돌다가 사기를 당하고,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빚이 생겨 집에 손을 벌리게 된 것이다. 등록금 대출 갚기도 빠듯한 상황에 제2금융까지 손댔으니 어디를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그날 들었던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원망만 하던 ‘당신의 추억’을 파노라마처럼 흩뿌렸다. “영화가 하고 싶으면 아버지한테 얘기하지.”

아버지는 그 말과 함께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 생기는데, 조금이라도 어릴 때 다 경험해서 다행”이라며 “이제 잘될 일만 남았네”라고 크게 웃었다.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눈물이 떨어져 무릎을 적셨다. 어떤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어찌 된 걸까?

지우려던 ‘당신의 삶’을 추억 속으로 다시 불러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당신’을 받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들보다 제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몽매한 생각을 버리고 ‘아들로서 아버지의 삶이 바른 것이었다는 증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마냥 성공에만 눈멀었던 ‘영화감독’ 지망생의 삶을 관뒀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 밝게 뛰노는 아이들의 미래에 귀 기울이는 언론인이 되기로 했다. 길거리에 나와 투쟁하는 많은 아버지들의 아이들이 세상을 모른 채 아버지만 원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로 했다. 상대와 거리를 둘 때 사용되는 ‘당신’이라는 말을 이제는 오롯이 높임말로 아버지께 전해드리고 싶다. “당신의 삶을 따라 걷겠습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윤상은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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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이란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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