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화재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석 달째 계속되면서 인도네시아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섬 6개주에서 시작된 산불로 서울시 면적의 5배가 넘는 지역이 불타고 진한 연무로 100만명에 육박하는 급성 호흡기 감염환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동(東)자바 중심 지역 산에서 불이 나 인근 지역으로 번지는 등 산불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이면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인 아르요노 디다 <단비뉴스> PD가 동자바 자와르티무르 주도 수라바야를 다녀왔다. (편집자)

인근 국가까지 번지는 연무···대책이 없다

두 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산불이 동자바로 번지고 있다. 수마트라와 칼라만탄을 중심으로 거세게 번지던 산불은 10월 초 내린 비로 대부분 자연진화됐지만, 이번에는 동자바 지역 스메르산과 아르주나산에서 시작된 불이 이젠산과 아르고푸로산 등으로 번져 모두 여섯 개 산이 불타면서 자와티무르주 일대를 짙은 연무로 뒤덮고 있다. 동자바 중심인 자와르티무르 주도 수라바야도 남쪽 아르주나산과 스매루산에서 날아온 연기가 깔리고 있고, 동자바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르주나산 등은 등산금지령이 내려졌다. 지난 19일부터는 태풍영향권으로 들어가면서 바람이 거세져 불길이 급속히 번지면서 바투시 마을 세 곳이 불에 타 1명이 숨지고 1,18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 동자바 지역 자와르티무르 주에 있는 아르주나산이 불타고 있다. © 자팀네닷컴

수라바야에 들어가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현지 주민들은 “힘들지만 방법이 없다”며 마스크도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불이 나기 시작한 스메루산과 아주르나 산 근처는 하늘이 온통 누런 먼지와 회색 연기로 뒤덮여 있다. 한국에서 황사나 미세먼지가 아주 심한 날 볼 수 있는 심한 먼지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날이 매일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현장은 나무들이 시커멓게 불에 탄 채 쓰러져 있고, 하늘은 검붉은 불길과 누런 연기로 가득하다”고 전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호랑이 등 야생동물들도 산불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한 소방대원은 “얼마 전에 불을 끄다 호랑이 발자국을 발견했다”며 “산불을 피해 안전한 지역으로 옮겨간 것 같다”고 말했다. 산불이 난 곳에서 가까운 지역 주민들은 정전으로 불편을 겪고 있고, 주요 생계 수단인 커피농장으로 불이 옮겨 붙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곳 산불로 카위산(2,561m)과 부타크산(2,874m) 사이 해발 440m 고원지대에 있는 시원한 별장지 말랑도 더워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온다. 수라바야 지역은 아직 연기가 많이 퍼지지는 않아 휴교 조처는 내려지지 않았으나 스메르산과 아루주나산 인근 주민들은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불로 식수원이 말라 붙는 바람에 식수가 없어 고통받고 있다. 말랑시 근처에 있는 아르주나산은 불 난 곳이 도로에서 걸어서 다섯 시간을 들어가야 하는 오지여서 진화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주 정부는 산불진화용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진화작업을 하고 있는데, 산불이 장기화하면 장마철 산사태와 강물 범람을 유발할 수 있어 2차 피해가 예상된다.

산불로 급성호흡기 감염환자 100만 육박

이달 초 내린 비로 일부 자연진화가 된 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섬에서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화재비상사태’를 선포한 리아우, 잠비, 남부수마트라, 남·서·중부 칼라만탄 등 6개 주에서 지난 두 달간 서울시 면적의 5배가 넘는 32만ha이상이 불탔다. 이들 지역에서 산불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하루 평균 1130만톤으로, 유럽연합(EU) 지역 전체 하루 배출량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 자와르티무르 주 정부 소방대원들이 스매루산 산불 진화작업을 위해 화재 현장으로 다가가고 있다. © 자팀네닷컴

산불이 뿜어낸 연기와 안개로 두 달간 100만명 가까운 ‘급성 호흡기 감염’(ARI) 환자가 발생했다. 자연재해관리단체(BNPB)의 정보·홍보데이터센터 아구스 위보우 센터장은 “2월부터 9월까지, 산불 연기로 급성 호흡기 감염 환자수가 91만9516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보르네오섬 남부 칼리만탄주 주도 반자르마신에 사는 터랭 프브리아나 위다(24) 씨는 “이곳 병원들에는 매일 호흡기 감염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몰려 온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불편은 이뿐만이 아니다. 산불이 아주 심하던 지난 9월 18일부터 2주 동안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섬의 8개 공항이 폐쇄됐다. 짙은 연기와 안개 때문에 시정이 짧아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학교도 임시휴교했다. 이곳 탈루나 플루스 고등학교 3학년 레자 샤 팔레비(17) 씨는 “지난 9월 초순 연기 때문에 등교하자마자 아침 10시에 학교를 마쳤다”며 “산불에 따른 연무와 먼지로 공부를 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 지역 학교들은 지난 9월 10일부터 19일까지 휴교했다. 팔레비 씨는 “휴교기간이 끝나고 9월 20일 개강했는데 연무와 먼지가 너무 심해 10시에 다시 조퇴를 시켰다”며 “한동안 집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9월 24일 저녁에 비가 많이 내려 산불이 일부 꺼지고 공기가 맑아지면서 25일부터 다시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산불에 따른 연무 피해는 인접한 다른 나라로 확산되고 있어 주변국들의 항의와 공동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산불로 발생한 연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주변 국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필리핀 등이다.

▲ 수마트라섬에 있는 리아우주 프칸바루시의 한 마을이 산불로 발생한 짙은 연무에 뒤덮여 있다. © 아르요노 디다

인도네시아 두 달 산불 이산화탄소, 스페인 한 해 배출량 맞먹어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환경수산부는 의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지난 8월 이후 인도네시아 산불로 3억6천만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다’며 “이는 작년 한 해 스페인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양과 맞먹는다”고 밝혔다. 환경수산부는 “지난 2015년의 경우 두 달간 인도네시아 산불 연무로 보건 비용 상승과 생산성 저하, 관광산업 악화 등이 발생하면서 싱가포르가 입은 피해는 18억3천만 싱가포르 달러(한화 1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환경수산부는 “삼림과 농토 태우기를 단속하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문제는 불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인데, 인도네시아 정부에 연무 사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제안했지만 인도네시아 당국은 답이 없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9월말 국경을 넘어 날아 오는 산불 연무로 피해를 겪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정부에 ‘산불을 꺼 달라’고 요구하는 외교 공문을 보낼 예정이란 보도들도 나왔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황사와 미세먼지로 고통받는 한국처럼 인도네시아 인접국들은 산불 연무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식물 유해 퇴적된 땅이 함께 불타 진화 어려워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기후가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인재(人災)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태평양 지역에서 올해 초 약해진 엘니뇨 현상이 평소보다 긴 건기를 불러왔다. 오랜 가뭄으로 나뭇잎과 수풀이 말라붙어 자연발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불은 탄소 성분이 풍부한 땅속 토탄층으로 옮겨 붙어 나무와 풀과 땅속이 함께 불타는 것이 인도네시아 산불의 특징이다.

원시열대림으로 뒤덮인 인도네시아 삼림지역은 불이 붙기 쉬운 식물 유해가 뒤섞여 있는 ‘이탄지(泥炭地, peat land)’라는 특이한 토양으로 덮여있다. 이탄지는 해안습지와 배후습지 등에서 수생식물 등의 유해가 미분해되거나 약간 분해된 상태로 두텁게 퇴적된 토지를 말한다.

▲ 인도네시아 리아우주 프칸바루시 산불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고 난 뒤 뒷정리를 하고 있다. © 아르요노 디다

건조한 덤불에서 자연발화가 이뤄지거나 누군가 불을 지르면 탄소가 풍부한 땅 속 토탄층으로 바로 옮겨 붙는데, 이 토탄층은 오래 타고 지표면의 불을 꺼도 땅속 불씨가 살아 있어 다시 불이 붙는 등 불 끄기가 아주 힘들다. 토탄층 깊이가 수십m에 이르는 곳도 있어 불을 끄고 지나간 곳에서 다음날 다시 불이 붙기도 하고 살아난 불길에 갇혀 소방대원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자연발화도 있지만 사람들이 불을 지르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지난 9월 중순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섬에서만 3,000개 가까운 ‘핫스팟’(hot spot=위성으로 감지한 지표면 온도 45도 이상의 불이 나기 쉬운, 아주 건조한 지점)이 발견됐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완화국에 따르면 올 들어 8개월 동안 이들 핫스팟 지역을 중심으로 불이 나 약 328.724헥타르가 불탔다.

팜유 생산 기업의 대규모 화전 일구기가 요인

인도네시아 산불은 자연발화나 실화도 일부 있지만 팜유를 채취하는 팜나무 경작을 위해 화전을 일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정부당국은 보고 있다. 팜나무 경작용 화전 만들기는 현지 농민에 의한 것도 있지만 팜유 생산 기업의 대규모 기업형 화전이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인도네시아 그린피스 캠페인 키키 타우피크 본부장은 "정부가 화재예방과 문책 등 관련법 집행에 철저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정부의 미지근한 대응이 매년 산불이 나는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올해 핫스팟 일부를 모니터링 한 결과, (산업활동이) 허락된 핫스팟을 많이 발견했는데, 이런 데서 산불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산불 제재는 민형사 등 사법절차와 단속 등 행정조처 등으로 이뤄진다. 민사사건과 행정조처는 벌금이나 배상금 지급 명령으로 집행된다. 면허취소와 면허정지 또는 정부조처 준수명령도 있다. 행정제재 발동 전 조사와 증거수집 단계에서 산불이 발생한 토지를 봉쇄하기도 하는데, 이 기간 동안 회사는 봉쇄된 지역에서 경작 등 생산활동을 할 수 없다.

제재를 풀려면 기업들이 제재 대상인 지역에서 산불 발생을 예방하고 개선하기 위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기업이 취해야 할 조처의 내용이나, 관련 조처가 취해졌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는 비정부기구(NGO)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공개돼 있지 않다.

미지근한 정부 대응과 처벌이 산불 유발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업들에게 산불 책임을 물어 여러가지 조처를 취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9월 24일 BBC 인도네시아판 기사에 따르면, 환경부 법무법인 라시오 리도 사니 법집행국장은 산림과 토지 화재에 관련된 64개 기업에게 현장 보수나 면허정지 또는 취소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면허가 취소된 업체는 PT 후타니 솔라 레스타리(Hutani Sola Lestari) 등 3개였다.

하지만 정부 설명과 달리 기업들이 수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고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는 사례가 많아 정부 조처가 솜방망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가 조사한 결과 산불 피해 배상금 내라는 명령을 받은 기업 중 실제로 납부한 업체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불에 타버린 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야자유와 펄프 생산 회사들 중 어느 곳도 정부 제재에 따라 제대로 처벌된 적이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23일 인도네시아 국가재난관리위원회의 정보통신센터 베르나디우스 위스누 부장은 “정부가 산불을 계속 관리할 것”이라며 “특히 핫스팟 관리와 관련법 시행 등에 중점을 두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지역 보건소에서는 주민들에게 마스크 사용을 장려하고 산불 진화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강우를 위해 산불지역 상공에 4,700kg의 강우용 화학약품을 뿌리는 등 기상조절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9월 하순에는 스모그 농도를 줄이기 위해 2만kg의 산화칼슘(CaO)을 칼리만탄과 수마트라섬의 리아우주에 보냈다.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아르요노 디다 PD


편집 : 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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