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현장] 그들이 서초동에 ‘운집’한 이유

의회정치와 정당정치가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거리의 정치’가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극우 성향 정치인들은 ‘서초동 집회’를 막말로 비난하는 데 앞장서고, 기성언론은 ‘검찰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 목소리가 높은데도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비영리 대안언론 <단비뉴스>가 시민정치의 현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한다. <편집자>

 
서초역 네거리에서 동서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촛불 집회. ⓒ 이정헌

‘조국수호 검찰개혁’ ‘공수처를 설치하라’

‘정치검찰 물러나라’ ‘언론개혁, 기레기 OUT'

수십만개 손팻말과 구호가 난무하는 서초 네거리 집회 현장은 운집한 인파로 오후 6시 공식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집회를 시작할 무렵에는 서초역에서 내려 무대 인근으로 다가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지하철 2호선에서는 인근 교대역 밖에도 인파가 몰려 있다며 강남역에서 내려 현장으로 걸어갈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저녁 7시 무렵 남북 방향 반포대로에는 서초경찰서에서부터 예술의 전당 인근까지 1.6km, 동서 방향 서초대로에는 교대역 너머에서 대법원 앞까지 1.4km 길이로 인파가 몰려 어림잡아도 1백만을 훨씬 넘는 인파가 운집한 듯했다. 주최측인 사법적폐청산범국민시민연대는 늘어날 인파를 예상해 서초 네거리에서 동서남북 방향으로 4개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시민들은 멀리서 화면을 지켜보며 도로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구호를 따라 외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촛불문화제’처럼 진행된 현장에서는 지난주 집회처럼 ‘검찰개혁’ ‘조국수호’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수십만개 손팻말이 물결쳤다. '마약보다 무서운 표창장' 같은 개인이 만들어온 손팻말도 많았다. 이번에는 유독 ‘태극기 팻말’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앞면에 태극문양, 뒷면에 건곤감리의 4괘 중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태극기 팻말을 들고 파도타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가로 20m, 세로 10m짜리 대형 태극기를 머리 위로 전달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태극기부대’로부터 ‘태극기를 되찾자’

▲ 주최측이 촛불시민들에게 태극기 손팻말을 나눠주고 있다. ⓒ 이정헌

서초동 집회 참가자들은 보수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의 의미를 훼손했다고 여긴다.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되찾자”고 외치며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했다. 단상에서 서기호 변호사는 집회의 태극기 퍼포먼스를 “가짜 태극기를 몰아내고 진짜 태극기 물결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의 의미를 보수의 상징이 아닌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되돌리고 싶어했다. 정영훈 촛불혁명완성시민연대 상임대표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보수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같이 드는 행동은 태극기를 모독하는 행위”라며 “우리가 진정한 태극기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개혁’과 함께 터져 나온 ‘언론개혁’

▲ ‘언론개혁’과 ‘기레기 OUT’을 쓴 손팻말을 들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이 많았다. ⓒ 이봉수

집회 참가자들이 ‘검찰개혁’만큼 강력히 외친 구호는 ‘언론개혁’이었다. 단상에 오른 이들 중 대부분이 한국 언론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외수 작가는 “기레기 언론이 부패한 정치와 검찰에 결탁했다”며 “기레기 언론이 있는 한 대한민국 국민은 결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검찰을 개혁하면 언론적폐, 정치적폐, 경제적폐를 모두 청산할 수 있다”며 언론을 적폐의 하나로 비판했다.

단상 아래서도 언론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주에 이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밝힌 김호나(30) 씨는 “지난주 집회에 많은 인파가 참여했는데도 언론이 이를 축소보도했다”며 집회에 다시 참여한 이유로 언론을 맨 먼저 꼽았다. 그는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로 기사를 ‘포털 메인’에 띄우려 한다”며 “의혹만으로 조 장관과 그의 가족을 매장시킬 정도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 김호나(30) 씨는 큰 깃발을 들고 홀로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 ⓒ 이정헌

검증 없이 받아쓰고, 정정도 안 하고

▲ 서초 네거리에서 북쪽 법조청사를 향해 설치된 주무대에서 네 방향 대로에 운집한 참가자들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이봉수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은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 구분없이 출입처와 유력 정치인에 의존하는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을 비판했다. 시민들 중 일부는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혹시 이상하게 쓰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언론을 향한 시민들의 뿌리깊은 불신이 느껴졌다.

▲ 기독교 신앙·예배 공동체 ‘능선’ 회원들. ⓒ 이정헌

기독교 신앙·예배 공동체 ‘능선’의 송무학(50) 씨는 언론이 “출입처 제도의 특성상 검찰에서 주는 정보를 우선 받아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그것이 검찰과 정치권의 의도에 말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속보 경쟁에 매몰돼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정정보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 중랑구에서 온 김상유(42) 씨는 조 장관 관련 언론 보도는 “‘~라면 문제다’는 식의 의혹 보도가 많았다”면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추측을 사실화해 일방적으로 보도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자들 스스로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또 문제에 저항하면서 조직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화집회’에 시비 건 ‘맞불집회’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서초경찰서 앞에서는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의 맞불집회가 열렸다. 맞불집회 참가자 일부와 촛불집회 참가자 일부 사이에서는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 중 일부는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오가는 시민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편집 : 정소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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