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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한 수제맥주도 챙긴 제주 ‘봉그깅’
[단비현장] 협재해수욕장 쓰레기수집 체험기
2019년 10월 04일 (금) 18:12:44 양안선 PD yasun2002@gmail.com

지난 27일 오전 11시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 구멍이 숭숭 뚫린 까만색 화산암과 보드라운 모래가 이어진 백사장 끝에서 옥색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여행객들, 모래장난이 한창인 꼬마들,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카우보이 모자의 남자까지, 모두 ‘맑고 깨끗한 바다’와 잘 어울려 보였다. 하지만 허리를 굽혀 해안을 찬찬히 살피자 이질적인 물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폭죽 껍데기, 부러진 셀카봉, 빈 컵라면 용기, 더러운 스티로폼 조각, 바위 사이에 낀 낚싯줄...

해변에서 도보 3분 거리인 수제맥주점 기영상회에서 조금 전 1000원을 주고 20리터(L)짜리 종량제봉투를 샀던 <단비뉴스> 취재진은 곧바로 쪼그려 앉아 그것들을 주워 담았다. ‘봉그깅’이 시작됐다.

어서와, 봉그깅은 처음이지?

   
▲ 지난 27일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에서 모래벌판의 쓰레기를 주워 종량제봉투에 담고 있는 양안선 <단비뉴스> 피디. ⓒ 오수진

봉그깅은 ‘줍다’를 뜻하는 제주어 ‘봉그다’와 뜀박질을 뜻하는 ‘조깅(jogging)’을 합친 조어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된 환경운동 플러깅(이삭줍기와 조깅의 합성어)을 제주식으로 응용한 말이다.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뜻이다. 취재진이 종량제봉투를 산 기영상회의 김지현(48) 대표가 협재해수욕장에서 봉그깅에 앞장서고 있다. 김 대표는 음반업계 직장생활을 지난 2013년 정리하고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왔다.

“바닷가에 나가서 맥주 한 잔 하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이 보이는 거예요.”

여덟 살까지 제주도에 살다 서울로 이사한 후 가끔씩 고향을 찾았던 김 대표는 90년대 후반까지 깨끗했던 바다가 2000년 이후 눈에 띄게 지저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제주에서 수제맥주점을 연 후 처음엔 혼자 쓰레기를 주우러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끼리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쓰레기를 한 봉지 주워오면 수제맥주 1병을 주겠다’고 하면서 봉그깅을 도입했다.

이날 취재진이 가장 많이 주운 쓰레기는 플라스틱이었다. 조개껍데기와 구별이 안가는 손톱만한 플라스틱 조각을 모래사장에서 골라냈다. 멀리서부터 눈에 띈 페트병은 얼마나 오래됐는지 심하게 오염돼 있었다.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두고 간 듯한 플라스틱 장난감도 주웠다.

해양 쓰레기 60%는 플라스틱

 
<단비뉴스> 취재진이 제주 협재해수욕장에서 주운 갖가지 쓰레기들. 30분 만에 20리터 종량제봉투가 가득 찼다. ⓒ 오수진, 양안선

지난해 제주환경운동연합과 제주자원순환사회연대가 공동으로 제주 김녕리 해안과 사계리 해안 두 정점을 조사한 결과, 수거된 해양쓰레기 중 플라스틱이 전체의 59%를 차지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김정도 정책팀장은 “밧줄, 그물과 같은 어업 쓰레기는 해양 생물들의 몸에 감기면서 직접 피해를 입힌다”며 “더 큰 문제는 해양 생물들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하고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제주도에서 방류된 붉은바다거북이가 10일 만에 죽은 채로 발견됐는데, 뱃속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오전 11시 30분. 20L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30분 만에 다 채웠다. 시작할 땐 1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김지현 대표는 “다들 오래 걸릴 줄 알고 시간 넉넉하게 비워두고 오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금방 채운다”며 “10분 만에 가득 넣어 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에 따르면 제주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지난 2016년 25톤(t) 덤프트럭 280대 분량인 약 7천t이었는데, 2017년 9천831t, 2018년은 9천622t으로 더 늘었다. 30년 동안 제주도에서 산 전영주(65‧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씨는 “관광객들은 버리고 가고 처리 비용은 제주도민이 감당 한다”며 “관광객들은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주도는) 자기 자식들도 올 곳”이라고 말했다.

물속 쓰레기는 ‘디프다’가 책임진다

제주의 해변 쓰레기를 ‘봉그깅족’이 처리한다면 물속 쓰레기는 프리다이빙 그룹 ‘디프다 제주’가 책임지고 있다. 주중엔 각자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 다이빙을 즐기는 디프다 회원 8명이 5~10분간 무호흡을 유지하는 프리다이빙을 통해 바다 속 쓰레기를 줍는다. 일주일에 1~2번 바다 청소에 나서는데, 4~5명이 하루 3~4시간 다이빙 하면서 틈틈이 쓰레기를 주워 많을 때는 50L 봉투 3개를 가득 채운다.

디프다 제주의 김송희(31‧서귀포시 서호동)씨는 예전에 바다에서 잃어버린 다이빙 마스크를 2일 만에 찾고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물고기들이 마스크를 쪼아 먹어 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버려진 쓰레기는 돌고 돌아 결국 인간에게 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바다 속 청소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프리다이빙 그룹 ‘디프다 제주’ 회원들이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해양 쓰레기를 줍고 있다. ⓒ 디프다 제주

철저한 분리수거로 마무리

 
기영상회 김지현 대표(왼쪽)가 쓰레기로 가득 찬 종량제봉투를 수제맥주 1병으로 바꿔주고 있다. 수거된 쓰레기 중 재활용 가능한 것은 협재해수욕장 클린하우스에서 분리해 버렸다. ⓒ 오수진, 양안선

30분 동안 채운 쓰레기봉투를 기영상회로 가져 가 보여주고 리치몬드 라거 1병을 받았다. 1만원에 판매되는 수제맥주였다. 맥주 고유의 알싸한 맛에 보리향과 솔향이 느껴지는 황금빛 액체로 잘 알려져 있다. 모아 온 쓰레기를 협재해수욕장에 있는 클린하우스에서 분리해 버리는 것으로 봉그깅 체험은 끝났다. 지금까지 참여한 사람은 20여 팀이라고 한다. 헤어질 때, 김 대표가 간곡하게 말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바다(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바다밖에 없잖아요.”


편집 : 유연지 PD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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