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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아이돌'을 사랑하는 법
[TV를 보니] '프로듀스 101'의 사회학
2019년 08월 22일 (목) 20:13:29 신수용 기자 sinsy77@naver.com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능력'은 매력적인 요소다. 돈, 명예 등 자본주의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 능력을 누가 어떻게 평가할까? 한국 사회에서는 시험을 통한 경쟁으로 측정된다. 오로지 성적에 따라 그 학생에게 등급을 매기고 평가하니 무조건 다른 이보다 나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좋은 대학이나 직업을 얻는 것이 ‘능력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그 부분에서 우월하지 못하면 실패자로 치부된다.

   
▲ 등급별로 나뉜 피라미드 무대에 선 연습생들이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 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는 Mnet의 간판 예능이다. 지난 2016년 시즌 1 이후 4개 시즌이 해마다 방영됐다. 국민 프로듀서인 시청자 투표로 총 101명 중 11명이 정식 데뷔한다. 시즌 1에선 걸그룹 '아이오아이(I.O.I)', 시즌 2에서는 보이그룹 '워너원(Wanna One)'이 탄생했다. 시즌 3은 한•일 합작 프로젝트로 포맷이 약간 변경됐다. 한•일 참가자 96명 중 12명이 선발되어 걸그룹 '아이즈 원(Iz*One)'으로 데뷔했다. 시즌 4는 해외시장 진출이 목표로 기획됐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101명 소년 중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많은 11명이 공식 데뷔 기회를 얻었다. 지난 7월 시즌 4가 끝났지만, 투표 조작 의혹으로 제작진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시험은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중매체에도 이런 자본주의적 방식이 이식됐다. ‘냉장고를 부탁해’, ‘나는 가수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가요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다른 출연자와 경쟁하며 자기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프로듀스 101'은 차별적 평가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의 포맷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청자는 이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사람에게 순위나 등급을 매기는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시즌 1의 대표곡 'PICK ME(나를 뽑아줘)'는 선거 캠페인 음악으로 사용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프로듀서' 시즌 1의 101명 연습생. Ⓒ Mnet

프로듀스 시리즈는 방송 때마다 숱한 논란을 몰고 왔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서바이벌 방식에서 오는 윤리적 문제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고정 배경 중 하나는 피라미드 무대다. A부터 F까지 등급 체계를 형상화한 피라미드에 연습생들이 차례대로 선다. 몇 층에 서있는지 여부가 이들의 희비를 가린다. 피라미드 상부에 오르지 못하는 90명은 '퇴출'당한다. 

알파벳 등급을 통한 구분 짓기

주된 진행 방식은 '승자독식'이다. 101명 연습생에게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기고, 일정 등급 이하 연습생은 탈락시킨다. 이런 진행 방식은 인간을 등급화한다는 윤리적 논란을 불렀다.

특히 시즌 4 '프로듀스X101'에서는 기존 5단계(A, B, C, D, F) 등급 중 F등급이 X등급으로 대체됐다. 다른 등급 평가는 그대로인데, 최하위 등급을 'F'에서 'X'로 더욱 강조한 모양새다. 지난 시즌에선 F등급 연습생들이 조명도 없는 무대 아래서 회색 옷을 입고 무대에 선 다른 등급의 연습생들을 올려보며 안무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인권침해 논란

시즌 1 당시 제작 총괄인 한동철 국장이 “남자들을 위한 건전한 야동을 만들고 싶었다”고 발언해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격한 댄스와 안무가 많다. 소녀 그룹의 복장 컨셉은 짧은 교복 치마다. 출연진 중 다수가 10대 후반 미성년자이거나 20대 초반 어린 소녀들이다.

제대로 된 근로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채, 새벽 연습을 하는 장면을 다루는 등 이들을 24시간 카메라에 노출해 노동 착취라는 비판도 받았다. 시즌 1에선 '보수 0' 과 '제작진에 대한 소송 금지'가 명시된 계약서가 유출됐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연출을 일삼는 일명 ‘악마의 편집’에도 비판이 제기됐다. 불이익을 당해도 연습생은 계약서 조항 때문에 제작진에게 공식적으로 항의하거나 시정요구를 하기 어렵다.

   
▲ 등급별로 다른 색과 로고 티셔츠를 입은 연습생들 모습. Ⓒ Mnet

꿈과 숫자

이들의 꿈은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수치화한다. 수치는 순위와 알파벳 등급으로 구체화한다. 연습생들 순위는 매주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각 연습생 프로필에 매주 이들의 순위 변동이 함께 표기된다. 등급과 순위는 꼬리표처럼 연습생들을 따라다닌다. 시청자들은 이런 방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시즌별로 많은 비판이 제기됐지만, 올해도 시즌 4가 나온 것은 여전히 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에 관한 시청자들의 몰입은 팬덤 현상까지 불러올 정도다. 이런 현상은 등급제로 이뤄진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즐기는 행동을 뜻한다. 혹독한 평가와 치열한 경쟁에 힘들어하는 출연자 뒤에는 환호하는 관객이 자리한다.

프로그램의 뒤틀린 지향점은 피라미드식 사회구조를 그대로 닮았다. 피라미드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올라가야 할 장소가 아니라, 사라져야 할 적폐가 아닐까?


편집 : 박서정 기자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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