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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수도부터 정수장까지... ‘맑은 물’ 관리
[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㊺ 상수도2
2019년 07월 16일 (화) 12:01:48 김문환 kimunan2724@hanmail.net

백제 왕궁리 유적에도 토관(土管)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 시기 왕궁으로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전북 익산시 왕궁리 유적지로 가보자. 기단부 계단에 올라서면 드넓은 궁궐터가 직사각형으로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 국보 289호 왕궁리 5층 석탑이 한국 석탑의 단아한 조형미를 뽐낸다. 이곳 궁궐터에서 땅에 묻힌 채 발굴된 특이한 유물이 눈길을 끈다. 진흙을 구워 만든 토관(土管)이다. 토관의 일부가 맞은편 왕궁리 유적전시관에서 탐방객을 기다린다. 상수도관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백제 시대 궁성에서 상수도관을 통해 맑은 물을 공급받아 썼다는 얘기다.

   
▲ 전북 익산시 왕궁리 유적 출토 백제 토관. 왕궁리 유적 전시관. ⓒ 김문환

최근 서울 문래동과 인천의 붉은 수돗물, 충남 청양의 우라늄 수돗물이 파문을 일으켰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까지 나서 아리수를 나눠주는 긴급조치에 나섰고, 서울시의회는 727억 원의 노후 수도관 긴급 교체 자금을 추경예산에 포함시켰다. 급기야 환경부가 지난 8일 5∼10년 주기로 수도관을 청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수돗물 종합대책을 연말까지 마련한다며 민심을 달랬다. 그만큼 수돗물은 민감한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북한 인구의 3분의 1이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한다는 보고서를 지난달 냈다. 깨끗한 물에 대한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요즘, 백제도 사용했던 상수도관, 인류의 수도 풍속을 들여다본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진실의 입

미남 배우 그레고리 펙과 세기의 연인으로 칭송되던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 ‘로마의 휴일’. 1955년 제작된 이 영화를 1980년대 초반 안방극장을 통해 보며 멋진 로맨스를 꿈꾼 청춘은 필자만이 아니었으리라. 로마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던 미국 기자 역의 그레고리 펙과 지중해 가상 소왕국의 왕녀로 분한 오드리 헵번이 데이트를 즐기던 로마 스페인 계단 등엔 지금도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 60년이 훌쩍 넘은 명화의 추억을 되살려낸다.

그중 한 곳이 로마 관광의 중심지, 로마 포럼에서 도보로 30분여 거리에 있는 티베르 강가의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다. 여기에 그리스·로마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 혹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을 상징하는 얼굴 조각이 놓였다. 일명 진실의 입. 라틴어로 라 보카 델라 베리타(La Voca della Verita). 손을 넣었다 빼며 잘린 것처럼 엄살을 떠는 그레고리 펙의 능청에 속은 오드리 헵번이 품에 안기고,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의 가슴은 덩달아 뛰었는데…. 흔히 로마 시대 하수구 뚜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반대로 상수도의 물이 나오는 수도 주둥이일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폼페이 골목 수도 주둥이 ‘진실의 입’과 같은 형태

   
▲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해 우리에게 익숙한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진실의 입(오른쪽)과 폼페이 골목에 자리한 비슷한 모양의 유적(왼쪽). 이들은 모두 상수도 물이 나오는 수도 주둥이일 가능성이 높다. ⓒ 김문환

무대를 로마의 생활 풍속이 그대로 배어 있는 폼페이로 옮겨보자. 79년 나폴리 근교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화산재와 돌덩이에 묻혔다 발굴된 폼페이의 주택과 골목 풍경은 2000년 전 그대로다. 시가지 곳곳에 미로처럼 난 어느 골목을 가더라도 마주하는 시설이 수도다. 도시 외곽 수원지에서 수도교를 통해 시가지로 온 물은 정수장에 일단 머문다. 폼페이 정수장은 시가지 북쪽 성벽에 자리한다. 정수장부터는 각 골목으로 상수도관을 묻는다. 이 수도관을 통해 공급된 수돗물이 집집마다 부엌이나 화장실로 들어갔을까? 

폼페이 유적을 보면 그렇지 않다. 비록 로마가 뛰어난 위생 문화를 자랑했지만, 집집마다 수도관을 묻어 공급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도는 골목까지였다. 골목에 설치한 공동수도에서 물을 받아 썼다. 폼페이 골목 수도를 보면 진실의 입보다 작지만, 유사한 형태의 조각이 수도 주둥이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골목 공동수도는 폼페이 근처 로마 도시 에르콜라노는 물론, 수도 로마의 지중해 관문이자 항구도시 오스티아로 가도 온전한 형태로 탐방객을 맞는다. 

루브르, 그리스 수도 사자 형상 주둥이 도자기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킨다. 목욕을 비롯한 상수도 위생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 문명의 우물 유적은 그리스의 코린토스, 키프로스의 아마투스, 터키의 페르게 유적지에서 만날 수 있지만, 폼페이나 오스티아처럼 수도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아쉬움을 달래주는 유물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기다린다. 바로 도자기에 그린 당시 풍속도. 아낙들이 물 받는 장면이 도자기에 그림으로 살아남았다.

BC 510년에 제작된 적색인물기법 도자기에는 진실의 입과 비슷한 형태로 사자 머리 조각을 한 공동수도 주둥이가 보인다. 여기서 떨어지는 물을 히드라(Hydra)라는 단지에 담거나, 히드라를 머리에 이고 떠나는 여인들 모습이 웬일인지 친숙하다. 1970년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던 시골 아낙들 모습과 판박이다. 물 긷는 여인들 입담으로 왁자지껄한 정경까지 닮았다. 루브르의 BC 480년경 제작된 백색인물기법 도자기에도 여인 1명이 공동수도 주둥이에서 떨어지는 물을 히드라에 받는 모습이 담겼다.

대영박물관, 그리스 수도와 물탱크 물 긷는 도자기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가보자. 이탈리아 반도 중부의 고대 에트루리아 도시 불치에서 출토한 BC 510년경 그리스 도자기가 루브르에 전시 중인 동시대 적색인물기법 도자기와 똑같은 수돗가 풍경을 연출한다. 공동수도의 기둥을 중심으로 좌우 양쪽에 사자 머리 형상을 한 수도 주둥이가 달려 있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여인들이 히드라에 담는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또 이탈리아 반도 남단 놀라에서 출토한 BC 430년경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이 그리스 상수도 문화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BC 3세기까지 이탈리아 반도 남단엔 로마인이 아닌 그리스인이 살았다. 그들이 각지에 도시국가를 건설했고, 이들을 합쳐서 대그리스 연방, 마그나 그레키아(Magna Graecia)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탈리아 남단에 많은 그리스 신전을 비롯한 유적이 남아 있고, 유물이 출토되는 이유다. 놀라 출토 그리스 도자기는 물탱크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넓적한 물단지 칼피스(Kalpis)로 물을 받는 여인 2명의 모습을 담았다. 수도꼭지에 해당하는 주둥이가 화려한 조각은 아니지만, 여러 개 달린 모습이 이채롭다. 

피스톤 장치 갖춘 로마 청동 물 펌프와 납관

   
▲ 로마 청동 물펌프. 3세기 대영박물관. ⓒ 김문환

대영박물관은 로마 수도 문화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특이한 수도관도 전시 중이다. 흙을 구워 빚은 수도관 사이로 청동 수도관이 탐방객을 맞는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중간 지점인 볼세나에서 출토한 3세기 로마 시대 청동 수도관은 피스톤 2개와 밸브를 갖춘 물 펌프의 일부다. 로마 시대 수도관이 단순히 물을 흘려보내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물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조절하는 고도의 기능을 갖춘 시설이었음을 보여준다.

로마에서 주로 활용한 수도관의 재질은 납이었다. 지금도 지중해 연안 로마 도시 곳곳의 유적에서 땅속에 매설된 형태의 납관이 출토된다. 폼페이에 가도 골목에 묻혀 있는 납 수도관을 확인할 수 있다. 대영박물관은 물론 영국 체스터 박물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등 각지 박물관에서도 납 수도관을 만날 수 있다. 일설에는 로마인들이 납을 수도관으로 활용해 납 중독에 걸렸다고도 한다. 청동이나 납 외에 돌로 수도관을 만들기도 했고, 가장 흔한 것은 흙을 구워 만든 토관이었다. 흑해 연안 케르치의 로마 도시를 비롯해 지중해 각지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다. 

로마의 수도 문화는 중앙아시아로도 퍼져, 알렉산더의 처가 동네인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아브 궁정 유적 박물관으로 가도 10세기경 수도관들을 접할 수 있다. 

터키 이스탄불 예레바탄 저수장

   
▲ 터키 이스탄불 예레바탄. 6세기. ⓒ 김문환

2016년 10월 개봉한 톰 행크스 주연 영화 ‘인페르노’.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의미하는 인페르노에서 톰 행크스는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 교수 역을 맡아 흥미진진한 추리 액션의 정수를 선보인다. 영화 마지막에 긴박한 수중 액션을 찍은 곳은 어디일까? 터키의 역사문화도시 이스탄불의 ‘예레바탄 사라이(지하 궁전)’다. 모두 336개의 아름다운 코린트 양식, 도리아 양식 기둥으로 받쳐진 이 실내공간은 다름 아닌 로마 시대 저수장이었다. 6세기 동로마 제국을 절정의 번영으로 이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7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만들었다.

시가지 북쪽으로 약 20㎞ 떨어진 베오그라드숲에서 수도교를 통해 끌어온 수돗물을 보관하던 저수장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길이 143m, 폭 65m, 높이 9m에 달한다. 최대 8만t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 메두사 머리 조각을 받침대로 쓴 기둥도 2개나 있어 많은 탐방객에게 신비한 이미지를 선사하는 저수장에서 로마의 위생 문화, 수도 문화의 진면목을 들여다본다. 

카르타고 거대한 격납고형 정수장

   
▲ 튀니지 카르타고 로마시대 저수장. ⓒ 김문환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가보자. 한니발의 카르타고 유적이나 유물도 볼 수 있지만, 카이사르 이후 로마 도시로 발전하며 로마 유적도 많이 남겼다. 그중 지중해 전역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드넓은 규모의 터널형 로마 저수장은 압도적이다. 마치 비행기 격납고를 보는 듯한 이 저수장 가득 수돗물을 채웠다가 시내 각지로 보냈다. 카르타고 저수장 물은 무려 80㎞ 떨어져 있는 수원지 자구안에서 왔다. 지금도 군데군데 남아 있는 거대한 수도교를 통해서다. 

격납고형 저수장은 카르타고뿐 아니라 튀니지에 있는 로마 도시들(마크타르, 불라 레지아 등)에도 규모는 작지만 똑같은 형태로 남아 로마의 수도 문화를 증언한다. 

중국 은허, 상나라 시대부터 상수도관

   
▲ 중국 상(은)나라 수도관. 은허 박물관. ⓒ 김문환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보자. 백제 왕궁리처럼 동양권인 중국에도 상수도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이 남아 있을까? 중국 역사고도 서안 섬서성 박물관으로 가면 춘추시대(BC 770∼BC 403)와 전국시대(BC 403∼BC 221) 진흙을 구워 만든 수도관 유물이 기다린다. 이곳만이 아니다. 북경의 국가박물관은 물론, 북경 교외 유리하 서주연도유지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중국 갑골문자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상나라(은나라·BC 16세기∼BC 11세기)의 수도 은허에도 수도관 유물이 남아 유구한 중국의 상수도 문화에 새삼 놀란다. 맑은 물을 마시고 사용하려는 인류의 오랜 욕구와 상수도 문화를 되짚으며 당국의 깨끗한 수돗물 관리 정책을 기대해 본다.


<문화일보>에 3주마다 실리는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풍속문화사]를 <단비뉴스>에도 공동 연재합니다. 김문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서양문명과 미디어리터러시' '방송취재 보도실습' 등을 강의합니다. (편집자)

편집 : 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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