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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한국 엘리트를 사랑한다
[교육 정의를 부탁해] ③ 계층 대물림 통로 된 명문대
2019년 06월 12일 (수) 12:17:18 곽영신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kwaaak@danbinews.com

한국의 학벌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 등 명문대에는 과연 어떤 학생이 입학할까? 두뇌회전이 빠르고 똑똑한 학생? 다양한 재능과 노력 의지, 성실한 태도를 다 갖춘 학생? 외우기를 잘하고 시험을 잘 보는 학생? 모두 높은 확률로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특성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부모가 부유하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가정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명문대 학생 70%는 ‘부잣집 자녀’

   
▲ 이른바 ‘명문대’에 최근 입학하는 학생들의 가장 주요한 공통점 중 하나는 ‘부유층 자녀’라는 점이다. 사진은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 정문 야경. ⓒ 서울대 홈페이지

그들의 부모는 대다수가 부자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2018년 1학기 서울고려연세대 재학생 소득분위 산출 현황’에 따르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스카이 재학생 중 소득 10분위(월소득 1200만원 이상) 비율이 30%, 9분위(730만원 이상) 비율이 16%로 ‘고소득층’ 비중이 46%나 됐다. 이들 학교의 저소득층(기초차상위계층) 비중은 6%에 불과했다.

반면 스카이를 제외한 전국 대학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중 910분위 고소득층 비율은 각각 13%, 12%였고, 기초·차상위계층 비율은 8%인 것으로 나타났다. 스카이의 고소득층 비중(46%)이 이들 대학을 제외한 전체 대학(25%)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장학재단 ‘2018년 1학기, 서울고려연세대 재학생 소득분위 산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스카이 재학생 중 고소득층 비중이 전국 대학의 고소득층 비중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 ⓒ 김해영 의원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이 한국장학재단의 ‘2014∼2016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에 국가장학금 미신청자 비중을 반영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서울·성균관·이화·연세·고려·서강 등 6개 대학의 고소득층(910분위) 학생 비중이 70% 내외(69.3~73.6%)에 이르렀다. 미신청자는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외부 장학금 수혜자 또는 B학점 미만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대학 등록금이 부담스럽지 않거나 소득 수준이 드러나길 원치 않는 부유층으로 추정됐다.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 절반은 전문직 또는 관리직

명문대생들의 부모는 또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매년 실시하는 ‘신입생특성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 비율은 의사‧변호사‧판검사‧연구원‧교수‧교사 등 전문직이 25~30%를 차지했다. 경영주‧대기업 간부‧고급 공무원‧사회단체 간부 등 경영관리직도 15~20%였다. 입학생 10명 중 4~5명의 아버지가 이른바 ‘상층’ 지위에 있는 셈이다. 반면에 서울대생 중 아버지 직업이 농축수산업인 학생은 1~3%, 비숙련노동자는 1~2%, 무직은 1~3%에 그쳤다.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의 직업 중 전문직과 관리직 비중은 1980년대 20%에서 꾸준히 증가했고 농축수산업은 10% 중반 정도에서 꾸준히 감소해왔다. 지난 2000년 서울대 신입생 부모의 직업을 분석한 기획기사로 큰 반향을 일으킨 권선무 <문화일보> 기자는 2004년 펴낸 책 <서울대는 왜 있는 집 자녀만 다닐까>에서 “2000년 이후의 서울대, 특히 법대‧경영대‧의대 등에서는 서울에서 자라 스스로를 중‧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전문직‧관리직 집안 자녀들이 주류가 됐다”고 분석했다.

   
▲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의 ‘신입생특성조사’ 결과를 토대로 서울대 신입생의 가정 배경을 분석한 책 <서울대는 왜 있는 집 자녀만 다닐까>의 표지. © 바다출판사

명문대생 부모는 대체로 학력 수준이 높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3월 스카이 신입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아버지 학력이 4년제 대졸 이상인 경우가 77.5%, 어머니 학력이 4년제 대졸 이상은 71.5%에 달했다. 부모 양쪽이 모두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 소지자인 경우도 61%나 됐고, 모두 고졸 이하인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 이들 부모에 해당하는 연배가 대학에 진학한 1990년 고등교육기관(2년제 이상) 진학률은 남성이 25.7%, 여성이 19.1%였다. 스카이 신입생의 부모는 또래보다 대학진학률이 세배 가량 높았다는 얘기다.

성균관대 최성수(사회학) 교수는 지난해 논문 ‘한국에서 교육 기회는 점점 더 불평등해져 왔는가’에서 대졸 부모의 자녀와 고졸 부모의 자녀가 상위권대(상위 15개 대학 및 의약학 대학)를 졸업할 확률 격차가 1970년대 0.1에서 2000년대 이후 0.2로 2배 가량 커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학력 부모의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예전보다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부모 학력에 따른 교육 기회 불평등이 4년제 대학 졸업 여부에서 상위권 대학 졸업 여부로 이동해왔다”며 “앞으로는 기회 불평등이 대학서열 외에 전공 선택, 영어 연수, 대학원‧전문대학원 진학 등의 영역으로 이전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재능’, 미국 ‘노력’, 한국은 ‘부모 재력’이 성공요인

풍부한 경제사회문화자본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명문대에 많이 진학하는 게 뭐가 문제일까? 잘난 부모가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학생이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먼저 사회 구성원에게 교육 기회를 배분하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기회가 자기 실력이나 노력, 또는 ‘약자 배려’와 같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부모의 돈과 배경에 의해 주어진다면 결코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서울대 김세직‧류근관(경제학) 교수의 2016년 논문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에 따르면 고소득 지역인 서울 강남구와 저소득 지역인 강북구 학생의 지능·노력·유전 등 잠재력을 분석한 결과 둘 사이 서울대 추정 합격률은 1.7배 차이가 났지만, 2014년 실제 서울대 합격률은 20배 넘게 차이가 났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학생의 잠재력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것이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학생들의 대학 합격률 차이의 8~9할 이상이 타고난 잠재력 차이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치장법(사교육, 선행학습, 특수고 진학)’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잣집 학생이 진짜 실력보다 그것을 돈으로 ‘치장’했을 때 더 좋은 교육 기회와 학벌 자원을 얻을 수 있다면, 이런 교육은 불공정하다. 가난한 학생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부자 학생을 따라잡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면, 이런 교육은 불공정하다. 한국처럼 교육이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 사회에서 교육 기회를 얻기 위한 게임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면, 자기가 노력한 만큼 성취할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공동체는 불안해진다.

실제로 김희삼(기초교육학)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2017년 발표한 ‘청년의 성공요인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ㆍ중국ㆍ일본ㆍ미국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중국과 일본은 ‘재능’을 미국은 ‘노력’을 청년 성공 요인의 1순위로 꼽은 반면 한국은 압도적으로 ‘부모의 재력(50.5%)’을 꼽았다.

   
▲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은 ‘부모의 재력’을 성공 요소 중 5위로 꼽았지만 한국 대학생은 1위로 꼽았다. © KBS 명견만리

교육 격차로 정치·경제·사회적 불평등 심화

또 다른 문제는 사회 구성원이 교육의 결과로 누리는 성취와 보상 역시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상류층의 교육을 통한 계층 대물림으로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해진다는 뜻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격차 실태 종합분석(2017)’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할 뿐 아니라 첫 일자리에서 받는 임금 수준 또한 높다.

2014년 대학 졸업생 중 고소득 가정(월소득 700만원 이상)의 자녀는 첫 일자리 임금이 평균 242만원이었지만, 저소득 가정(월소득 300만원 이하) 자녀는 첫 임금이 평균 188만원에 그쳤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계층상승 사다리에 대한 국민인식 설문조사(2017)’에서 국민 80%가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기회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고 응답한 데는 이런 현실이 반영된 셈이다.

정치적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양질의 교육 기회를 거머쥔 상위계층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언어와 능력, 인맥을 갖추고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교육 기회를 누리지 못한 하위계층은 자기 의견을 관철할 도구와 자원이 부족해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교육이 계층 이동과 사회 평등에 기여하지 못한 채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사회적 격차를 더 벌린다면, 이런 교육은 두말 할 것 없이 불의하다.

“악마는 엘리트를 사랑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교황은 지난해 <바티칸 인사이더> 인터뷰에서 “사람들 안에 뿌리를 두지 않고 역사 속 대중과 연관 없이 사는 것은 병든 삶”이라며 “엘리트는 대중과 섞여 사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교황은 “여기서 엘리트는 사회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중과 동떨어져 자신만의 성을 쌓고 부와 권력, 명예, 문화자본을 독차지하는 게 ‘엘리트의 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승자독식 교육 시스템 속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신분제를 공고히 하는 데 몰두하면서, 평범한 대중과 소외된 계층을 위한 교육 기회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부유층 엘리트들이야말로 악마가 사랑하는 ‘대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좋은 사회는 가난하고 못 나고 배우지 못한 부모의 자녀들에게도 충분히 수준 높고 다양한 교육 기회를 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교육 기회를 분배할 때는 개인의 실력과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배려해 환경 차이로 인한 격차를 보정해 주어야 한다. 또 교육 결과에 따른 개인의 성취에 합당한 보상을 주되, 승자가 독식하지 않고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소외계층에 더 많은 입학기회와 장학금을 주고 대학 공공성 확대, 무상 교육 확대, 학교 서열 철폐, 임금 및 지위 격차 해소 등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처럼 승자가 계속 승리하기 위해 나머지를 들러리 세우는 교육은 이 땅을 더 ‘헬조선’으로 만들 뿐이다. 한국 사회를 살리려면 ‘교육 정의’부터 세워야 한다.


입시 점수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한국 교육은 불의(不義)하다. 진리를 탐구하고 사회를 개선할 인재를 키워내는 본연의 역할 대신 자원 쟁탈을 위한 경쟁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 경쟁마저 공정하지 못해, 교육은 ‘이미 가진 자’의 것을 더 공고하게 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교육 정의(正義) 회복’이다. 배움의 기회와 과정, 결과를 공평히 해서 학생 개개인이 모두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 교육 정의다. 곽영신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이 ‘한국 교육에서 어떻게 정의를 살려낼 수 있을까’ 모색하는 칼럼을 연재한다. 곽 연구원은 <단비뉴스>의 ‘지방대 위기와 혁신’ 탐사보도를 이끌고 있다. 한국 교회의 부패상을 고발한 책 <거룩한 코미디>의 저자이기도 하다. (편집자)

편집 : 오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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