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MBC ‘강원도 화재보도’ 분석

4월 4일 밤부터 5일까지 강원도 고성-속초, 강릉-동해지역에서 산불이 날 동안 KBS에는 시청자들의 불만으로 ‘다른 불’이 났다. 화재 상황인데도 일정변경 없이 정규편성된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한 탓이다. 11시 25분에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특보체제’로 전환했지만, ‘재난 주관방송’으로서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방송 내용도 재난 주관방송의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경향신문>은 KBS가 ‘관찰자 시점의 화재 상황 중계에만 치중했다’고 비판했고, <한국일보>는 KBS 기자가 ‘고성이 아닌 강릉에 있으면서 고성군이라고 보도했던 것’을 지적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는 KBS가 재난 속보 때 ‘수어 통역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재난방송을 하지 않는 KBS에 왜 수신료를 내야 하나”라며 KBS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는 청원이 올라올 정도로 KBS를 향한 여론은 나빠졌다.

KBS가 지탄받을 동안 MBC는 어땠나? MBC는 지상파 3사 중 가장 이른 시간인 11시 5분부터 특보체제에 들어갔다. 얼핏 보면 공영방송으로서 체면은 지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MBC의 재난보도 역시 질적 측면에서 KBS와 같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 4~5일 방영된 MBC 화재특보에서 다룬 정보들을 프레임으로 분류한 도표. 단순히 화재 상황을 전하는 정보들이 대피에 유용한 정보, 화재 원인, 사후 화재 대응책 등을 다루는 정보들보다 훨씬 많다. © 김현균

이재민은 안 돕고 ‘먼 산 불구경’만 한 MBC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40조에 따라 지상파방송은 재난 발생을 예비하거나 대피∙구조∙복구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재난방송을 해야 한다. 재난주관방송인 KBS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을 때, 같은 지상파방송이자 같은 공영방송으로서 MBC는 KBS의 공백을 메워줄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MBC의 화재특보는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전달하는 것에만 그쳐, KBS 화재특보와 질적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 유튜브 ‘MBC 화재특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보도는 총 174건이다. 그중 화재 진행 상황, 화재 진압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실 전달 정보’는 146건(84%)이다. 대피소∙대피 관련 정보나 화재 원인 등의 정보는 19건(11%), 화재를 겪은 현지 주민의 심정 등을 다루는 보도는 6건(3%), 화재 사건 대응의 적절성과 사후 대책 등을 다루는 정보는 3건(2%)이었다.

단순 사실 전달이 내용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도 행태는 세월호 사건 당시와 매우 비슷하다. 임연희의 논문 ‘세월호 참사에 대한 텔레비전 뉴스의 보도행태’에 따르면 세월호 사건 때 보도들은 사건 현황을 다루는 단순 현장 보도가 전체의 62%, 원인과 책임규명을 다루는 보도가 25.7%, 사후 대책을 논의하는 보도는 2.3%였다.

▲ 2016년 11월 22일 NHK 재난 방송. 후쿠시마, 미야기, 이바라키, 이와테, 치바 등 각 현과, 쿠주쿠리 외방의 지진해일 도달 예상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 NHK

이는 일본 공영방송 NHK의 ‘2016년 11월 22일 재난 보도’와 전혀 다르다. NHK는 ‘재난을 맞이하게 될’ 주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했다. 후쿠시마 지진이 발생했을 때 NHK는 방송 시작 몇 분 만에 지진이 발생한 위치, 지진 여파가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지진해일 예상 도달 시각을 표와 지도를 이용해 보여줬다. 반면 MBC 재난특보 방송에서 얻을 수 있는 대피 관련 정보는 글로 쓴 대피소 목록, 산불 때 대피하는 요령을 기자의 멘트로 언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긴급한 상황’에 ‘반복된 오보’

▲ MBC 재난특보 방송과 같은 시각 올라온 유튜브 실시간 채팅. MBC는 화재특보에서 대피소 이름을 오기했고, 누리꾼이 제보한 기능을 상실한 대피소 목록은 제보한지 45분이 지난 뒤 자막에 반영해 내보냈다. © MBC

대형 화재와 같은 응급상황에서 잘못된 선택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강원도 화재 같은 대형 재난 때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MBC 재난특보에서는 오보가 많았다. 재난특보를 내보내면서 MBC는 대피소 이름을 잘못 전달했다. 영랑초는 영남초로, 온정초는 운정초로 표기했다. 재난특보가 이어진 2시간쯤 뒤에는 유튜브 생중계 중에 기능을 상실한 대피소를 알려주는 실시간 채팅이 있었지만, 변경된 대피소를 알리는 자막이 나온 것은 45분 뒤였다.

▲ MBC 재난특보. 이 보도를 내보내고 약 40분이 지난 뒤 앵커가 보도를 정정했다. © MBC

MBC 재난특보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해 대피 과정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 5일 새벽 1시쯤 MBC는 ‘속초 가스충전소가 폭발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보도 이후 이어진 속초시민 최우진 씨 인터뷰에서 ‘가스충전소 방향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말을 내보내면서 보도한 내용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재난상황실은 폭발한 가스충전소가 없다고 밝혔고, 그 내용은 가스충전소 폭발 보도를 한 지 40여 분이 지나서 앵커의 짧은 멘트로만 다뤄졌다.

MBC 재난 보도에서도 ‘소외된 장애인’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재난 보도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MBC가 ‘수화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한 것은 각 지역의 주불이 고성∙속초지역은 60%, 옥계지역은 20% 진화됐다는 보도가 나오던 5일 아침부터였다. 화재가 급격히 진행되던 새벽녘이 한참 지난 뒤였다. 대피소 목록보다는 화재 현황을 알리는 앵커∙기자 멘트와 자막이 더 자주 나와 운영중인 대피소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KBS는 ‘저널리즘 J’를 통해 자사의 강원도 화재 늑장 대응, 질 낮은 재난특보를 비판하며 그런대로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MBC는 자사 재난특보를 반성하는 모습을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KBS가 뒤늦게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동안, MBC는 그나마도 하지 않고 있으니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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