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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아닌 신이 쓰던 그리스금관의 기원
[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㊱ 금관문화6
2019년 04월 02일 (화) 11:06:52 김문환 kimunan2724@hanmail.net

구순을 눈앞에 둔 정진석 추기경이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로 일하실 때, 2012년 정진석 추기경으로부터 서울대교구 주교 자리를 물려받은 염수정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하실 때, 큼직한 관을 쓰신다. 천으로 만들지만, 금빛 실로 장식해 일견 화려해 보이는 주교관을 라틴어로 미트라(Mitra)라고 부른다. 근세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면 주교관은 각종 보석으로 장식해 휘황찬란하다. 물론 카톨릭(Catholic)이나 개신교(Protestant)를 떠나 기독교(Christianism)의 모태인 예수님은 이런 모자를 쓰신 적이 없다. 오히려 성경에는 가시관을 썼다고 나온다. 이는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로마병사들이 예수님에게 조롱조로 씌웠다는 것인데, 지난 글에도 살펴보았듯이 로마시대 최고지도자나 사회 상류층 인사들이 영예와 권위의 상징으로 쓰던 월계관을 비꼰 거다. 예수님 가시관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신에게 화려한 금관을 씌우던 풍속을 들여다본다. 고대 그리스 이야기다. 나아가 그리스에서는 언제부터 금관을 썼는지 거슬러 올라간다.

7대 불가사의 제우스 동상의 B.C 5세기 금관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올림피아로 발길을 옮긴다. 고대 올림픽이 4년에 한번 씩 열리던 곳으로 평소 사람이 살지 않고 올림픽 때만 선수와 관중이 몰렸다. 올림피아의 수호신은 제우스다. 올림피아를 관리하던 근처 폴리스 엘리스의 시민들은 B.C 470년-B.C 457년 사이 제우스 신전을 올림피아에 세운다. 길이 64m, 폭 27m, 높이 20m로 큰 규모였다. 하지만, 건축 당시부터 신전보다 신전 안에 안치한 동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울림피아 제우스 신전 터. ⓒ 김문환
   
▲제우스 신전 모형. 1997년 50분의 1 크기로 줄여 제작. 루브르. ⓒ 김문환
   
▲금관을 쓰고 있는 제우스 모형. B.C460년 전후에 제작된 12m 크기 조각을 1997년 50분의 1 크기로 줄여 제작. 루브르. ⓒ 김문환

훗날 B.C 2세기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인들이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정한 제우스 동상은 받침대를 포함해 높이 12m다. B.C 5세기 그리스문명권 최고의 조각가이던 아테네의 페이디아스가 조각을 책임졌다. 올림피아에는 당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이 발굴돼 있을 정도다. 지금은 터만 남은 제우스 신전과 완전히 사라진 제우스 조각을 1997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50분의 1 크기로 줄여 복원해 놓았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보면 흰 대리석으로 제작한 제우스 조각은 머리에 금관을 썼다. 다신교 사회인 고대 그리스에서 최고신 제우스에게만 금관을 씌웠을까?

그리스인, B.C6세기 태양신 아폴론 금관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서북 내륙으로 170여 km 가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구의 중심, 지구의 배꼽 옴팔로스(Omphalos)라고 여기던 델포이(Delphoi)가 나온다. 파르나소스산의 깎아지르는 산세 아래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의 뜻을 알아내는 최고의 신탁소로 여기던 델포이 아폴론 신전이 아늑하게 자리 잡았다. 비록 건물은 무너졌지만, 거대한 초석들은 오롯하다. 이 아폴론 신전 여신관 피티아(Pythia)가 지그시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물로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을 보며 낮게 읊조리는 한마디가 곧 개인이나 도시국가의 운명을 갈랐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가르는 중요한 정책결정이 이렇게 이뤄졌다. 세계사 시간에 자주 듣던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가 페르시아에 대응해 싸울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의 운명도 그렇게 결정됐다. 지중해 전역의 그리스문명권에서 가장 신성한 신탁소 역할을 한 아폴론 신전의 주신은 당연히 태양신 아폴론이다. 신전 폐허에서 관련유물이 나왔다.

   
▲델포이 그리스 극장과 그 아래 아폴론 신전 터 초석. ⓒ 김문환
   
▲옴팔로스. 델포이 박물관. ⓒ 김문환

신전 폐허 아래 델포이 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기자. 신전에서 출토한 돌 옴팔로스 옆으로 태양신 아폴론과 여동생인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두 쌍둥이 남매의 어머니인 레토. 이렇게 3명의 조각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레토가 제우스와 관계해 남매를 낳은 건 에게해 델로스 섬이지만, 아폴론을 모시는 최고 성역소는 이곳 델포이였다. 나무로 아폴론을 조각한 뒤, 각종 금과 도금장식물로 화려하게 꾸몄다. 머리에는 은판으로 틀을 만든 뒤, 금을 얇게 입힌 도금관을 씌웠다. 아폴론 뿐 아니라 여동생 아르테미스, 어머니 레토 역시 같은 기법으로 조각하고 금 장식물을 붙였다. B.C6세기 이오니아 스타일이라는 설명문이 붙었다. 앞서 살펴 본 마케도니아 왕국의 금관 제작 시기 신도 금관으로 장식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리스 문명권에서는 언제부터 금으로 관을 만들어 사용했을까?

   
▲왼쪽 아폴론, 가운데 아르테미스, 오른쪽 레토. 3명의 신을 나무로 조각한 뒤, 은제 도금관을 씌웠다. B.C6세기 델포이 박물관. ⓒ 김문환
   
▲오빠 아폴론. 은제 도금관을 쓴 모습. B.C6세기 델포이 박물관. ⓒ 김문환
   
▲여동생 아르테미스. 은제 도금한 관을 쓴 모습. B.C6세기 델포이 박물관. ⓒ 김문환
   
▲쌍둥이 남매의 어머니 레토. 은제 도금관을 쓴 모습. B.C6세기 델포이 박물관. ⓒ 김문환

미케네 문명 금관... 에게해 아이기나 섬 B.C 19세기-B.C 16세기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가보자. 세계 각지의 유물을 취합해 인류 문명사를 일별할 수 있도록 꾸민 유력한 박물관 가운데 유일하게 무료인 런던 대영박물관은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약탈이나 도굴 문화재를 놓고 비싼 입장료 받는 다른 박물관들에 비해 양심적이라고 칭찬해야 하는지... 입구에 놓인 대형 기부함에 잔돈을 넣고 왼쪽으로 꺾으면 물품보관실 지나 1층 그리스 전시실이 나온다. 그리스 문명은 에게해에서 닻을 올린다. 에게해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B.C3200년 경 싹튼 키클라데스 문명, 크레타와 산토리니 섬에서 융성한 미노아 문명(B.C2700년-B.C1500년)을 거쳐 미케네 문명(B.C1900년-B.C1200년)시기 마침내 그리스 본토 뭍으로 문명이 올라온다. 대영박물관 그리스 전시실에는 이시기 유물들을 시대별로 잘 정리해 놨다.

   
▲아이기나 섬 출토 황금관 테. B.C19세기-B.C16세기. 대영박물관. ⓒ 김문환
   
▲아이기나 섬 아파이아 신전. ⓒ 김문환

그 가운데 아테네 앞바다 아이기나 섬에서 출토한 B.C1850년-B.C1550년 미케네 시기(일부 미노아 문명설도 있음) 황금유물도 다수 전시중이다. 그중 금관(Diadem)의 일부를 이루던 얇은 금박 테 대륜(臺輪)이 눈길을 끈다. 아이기나 섬은 아테네 관문 피레우스 항에서 배를 타고 간다. B.C480년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살라미스 해전을 치러 승리를 거두던 살라미스 해협을 지나 1시간 20분여 거리다. 섬 북쪽에 위치한 도리아식 아파이아 신전은 아테네 동쪽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신전과 함께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경치가 일품인 신전으로 꼽힌다. 띠 형태로 남아 있는 아이기나 금관 테만 보면 이것이 어떻게 금관의 일부라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은 미케네 금관 유물을 더 찾아보면 자연스레 풀린다.

B.C 17세기...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 미케네성

미케네 문명의 상징 도시인 미케네(Mycene)로 가보자. 아테네에서 버스를 타고 코린토스(성경 고린도)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1시간여 더 달리면 나온다. 길가 버스 정류장에 내려 우리네 주막 같은 분위기의 식당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5분여 가면 일견 돌산처럼 보이는 미케네성이 나타난다. 사자 2마리가 포효하는 사자문의 위용에 잠시 눈길을 빼앗긴 뒤,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미케네 왕실 공동묘지다. 여기서 여러 종류의 황금유물이 쏟아졌다. 현장 박물관이 있지만, 황금유물들은 모두 수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겼다.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연합군(아카이아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이 왕으로 있었다는 미케네 성에서 트로인 전쟁의 감상에 잠시 젖은 뒤 황금유물을 보러 다시 아테네로 돌아가자.

   
▲미케네 사자문. 트로이 전쟁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이 왕으로 있던 곳. ⓒ 김문환

B.C 17세기... 미케네 문명의 황금관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1층 미케네 전시실로 가면 일단 입을 다물지 못한다. B.C17세기-B.C16세기 미케네 문명 유적지에서 출토한 황금유물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기 때문이다. 지구촌 황금유물의 보고(寶庫)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다수의 황금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은 여럿이지만, 이렇게 앞선 시기 그것도 이렇게 많은 분량의 황금유물을 소장한 곳은 지구촌 어디에도 없다. 이제 관심을 황금유물에서 금관에 집중시켜보자. 대영박물관에서 아이기나 금관 테처럼 조금은 넓은 금박 띠, 즉 금관의 원형 테두리인 대륜(臺輪)이 많이 보인다.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대륜 위에 세움 장식을 단 금관들도 눈에 들어온다. 신라 금관의 세움장식이 ‘출(出)’자 형 나뭇가지와 사슴뿔이고, 고구려 관모 세움장식이 새깃털이나 화염무늬라면 미케네 세움장식은 뾰족한 삼각형이다. 3개, 4개, 7개를 넘어 더 많은 장식도 보인다.

   
▲원형 테두리 대륜(臺輪)만 남은 미케네 금관. B.C17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원형 테두리 대륜(臺輪)과 세움장식 3개 달린 미케네 금관. B.C17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원형 테두리 대륜(臺輪)과 세움장식 4개 달린 금관. B.C17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원형 테두리 대륜(臺輪)과 세움장식 7개 달린 금관. B.C17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미케네 황금유물. B.C17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B.C17세기 미케네 금관, 초화형(草花型) 금관의 원조

이제 미케네 금관 가운데, 특이한 형태의 금관에 시선을 고정시키자. 뾰족한 삼각형 세움장식이 수십 개 촘촘하게 대륜 위에 붙었다. 세움장식은 나뭇잎이다. 일자로 펴진 대륜의 끝을 연결하면 원통형 금관의 모습이 나온다. 나뭇잎을 세운 원통형 금관(Diadem). 초화형(草花型) 모티프 금관의 원조다. 훗날 마케도니아, 헬레니즘 시기 그리스는 물론 월지, 훈(흉노), 신라, 가야, 일본에서 나타나는 바로 그 초화형이다. 미케네 금관을 실생활에서 머리에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크기로 볼 때 실생활보다는 장례식 부장품으로 특별 제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케네 금관이 금관의 가장 오래된 기원일까? 최종회로 한 번 더 살펴본다.

   
▲원형 테두리 대륜(臺輪)에 수십 개의 나뭇잎 세움장식을 단 미케네 금관. B.C17세기.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금관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발굴된 금관 8개(신라 6개, 가야 2개)를 비롯해 여러 금동관의 특징과 기원을 짚어본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금관문화를 현장유적과 박물관 유물취재를 통해 문명교류 관점에서 6회에 걸쳐 들춰본다.

편집 : 오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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