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풍속문화사] ㉟ 금관문화5

1936년 8월 1일 독일 베를린. 제 11회 현대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히틀러가 체제 선전용으로 기획한 성화 봉송과 점화는 이 때 처음 도입됐다. 16일 폐회식까지 중간 여정인 9일 마라톤 경기가 열렸다. 대한의 청년 손기정이 ‘손 기테이’라는 일본이름으로 우승했다. 2시간 29분 2초.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2등을 차지한 영국 선수를 건너 역시 대한의 남승룡이 3위라는 쾌거를 일궜다. 물론 시상식에서 일장기를 달았다. 식민지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보도한 국내 신문들은 달랐다. 베를린 시상식장과 달리 가슴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내보냈다.

민족지사 몽양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신문>이 먼저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했지만, 인쇄 상태가 좋지 않은 탓에 총독부 검열관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빈처>의 현진건이 문화부장으로 있던 <동아일보>가 일장기를 지운 것은 그만 인쇄상태가 좋아 총독부 사후 검열에 걸렸다. 기자들은 체포됐고, <조선중앙신문>과 <동아일보>는 정간됐다. <동아일보>는 10달 뒤 복간돼 오늘에 이르지만, <조선중앙신문>은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시상직장의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 사진을 보자. 머리에 나뭇잎 관을 썼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도 이런 나뭇잎관을 수여하는 풍습이 있었을까? 나뭇잎관은 월계관일까, 올리브관일까?

▲ 1936년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손기정과 3등 남승룡 모습. ⓒ 위키피디아

고대 그리스 올림픽 체육분야 우승 올리브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보자. B.C6세기 그리스 도자기에 레슬링 선수 2명이 머리에 나뭇잎으로 만든 관을 쓰고 나온다. B.C776년 시작된 고대 올림픽 우승자에게는 요즘처럼 메달이 아닌 나뭇잎으로 만든 관을 씌웠다. 흔히 월계수 잎으로 만든 월계관(Laurel Wreath)을 떠올린다. 하지만, 올리브관(Olive Wreath)이다. 올림픽의 발상지 올림피아로 가면 올림피아의 최고신 제우스를 섬기는 제우스신전 터가 남았다. 올리브나무가 신전 주변을 에워싼다. 여기서 올리브가지를 잘라 올리브관을 만들었다. 금으로 만든 올리브관은 테살로니키 박물관에서 탐방객을 기다린다. 부장품으로 썼다는 얘기다. 야자수 잎 역시 승리와 우승을 상징하는 기념물이었다. 올리브관과 야자수 가지를 든 선수는 로마시대 주화의 주된 모델이었다. 불가리아 소피아 고고학 박물관에서 이를 확인한다. 올리브관을 쓰는 사람은 올림픽 우승자만이 아니었다. 그리스에서는 평소 청소년 교육의 대부분을 체력단련에 쏟았다. 체육교사에게 제자들이 올리브관을 씌워주는 조각에서 스승존경의 정신이 묻어난다.

▲ 월계관을 쓴 올림픽 레슬링 선수 도자기 그림. B.C6세기. 루브르박물관 ⓒ 김문환
▲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과 올리브 나무. 여기서 만든 올리브관을 수여했다. ⓒ 김문환
▲ 황금 올리브관. B.C4세기. 그리스 테살로니키 박물관 ⓒ 김문환
▲ 올리브관과 야자수 가지를 손에 든 올림픽 선수 주화. 3세기 초. 불가리아 소피아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 올리브관과 야자수 가지를 든 2명의 젊은이가 스승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묘지석. 3세기 초.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여성경기에서도 올리브관, 로마시대 화관

영화 <대부(Godfather)>에서 알파치노가 분한 주인공 마이클이 총을 메고 낭만적인 주제음악을 배경으로 사냥을 다니던 목가적 풍경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일찍부터 그리스인과 카르타고인들이 문명의 꽃을 피우던 시칠리아 내륙 한가운데 로마시대 대저택인 빌라(Villa) 유적이 남았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로마시대 바닥 장식기법으로 널리 쓰였던 4세기 모자이크가 대저택 바닥을 가득 메운다. 그중 ‘비키니의 방’에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꽃으로 만든 화관을 머리에 쓰고, 야자수 가지를 손에 든 모자이크가 눈길을 모은다. 체육경기 우승자다.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면 B.C 6세기 초부터 올림픽에 여자경기가 생겼다. 헤라여신을 기념해 헤라이아(Heraia)로 불렸다. 여성 올림픽 우승자는 소고기(희생의식 때 잡은 소)와 함께 올리브 관을 받았다. 그 올리브관이 로마시대 모자이크에 장미화관으로 바뀌어 등장한 거다. 야자수 가지는 현대에도 이어진다. 프랑스 칸 영화제의 대상인 팔므 도르(Palme d'Or, 황금 종려상)는, 금으로 만든 야자나무 잎을 가리킨다. 프랑스어 팔므(Palme)는 야자수(종려, 棕櫚)다. 그렇다면 월계관은 무엇일까? 올림픽에서 월계관도 썼는지 궁금하다.

▲ 화관을 쓰고 야자수 가지를 든 여자선수. 4세기. 시칠리아 피아짜 아르메리나 ⓒ 김문환

고대 올림픽 문학분야의 월계관, 기원은 아폴론

월계관도 올림픽에서 수여했지만, 대상이 달랐다. 체육경기가 아니라 시낭송분야 즉 문학분야 우승자에게 줬다. 1616년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1세가 시작한 영국 계관시인(Poet Laureate, 桂冠詩人) 전통도 여기서 나왔다. 나폴레옹도 공화정을 몰아내고 스스로 황제가 됐을 때 대관식에서 월계관을 사용할 만큼 서양에서 최고의 영예를 상징할 때 월계관을 쓰는 전통의 기원은 올림픽이다. 왜 월계관일까?

고대 그리스에서 문학과 예술을 수호하는 신은 아폴론이다. 바람둥이 아폴론이 요정 다프네를 사랑했다. 그녀와 합방을 원했지만, 다프네는 순결을 지키고 싶었다. 아폴론이 욕망을 이루고자 다프네에게 달려들고, 다프네는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이때 다프네의 아버지인 강의 신 라돈(페이오네스)이 사랑스런 딸의 순결을 위해 딸을 나무로 바꿔 버렸다. 그 나무가 월계수다. 요즘 같으면 강력한 사법처리 대상이 될 아폴론은 다프네를 잊지 못하고 월계수를 자신의 성수(聖樹)로 삼았다. 영화 <글라디에이터(Gladiator)>를 촬영한 장소, 튀니지의 엘젬은 로마시대 만든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이름 높다. 로마의 콜로세움 다음으로 큰데, 콜로세움과 달리 바닥이 원형대로 남아 영화촬영에 제격이다. 엘젬에 로마 모자이크 전시관도 있는데, 이곳에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이 담긴 애달픈 사연의 모자이크가 탐방객을 맞는다.

아폴론을 섬기던 델포이 아폴론 신전 신탁소의 피티아(여신관)가 주관하는 피티아 제전이 B.C590년 시작되면서 문학분야 우승자에게 월계수 잎으로 만든 관을 씌워줬다. 이 풍습이 문학과 체육분야로 나뉜 올림피아의 올림픽으로 전파돼, 문학분야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주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영예를 상징하는 월계수관은 일상에서도 활용됐다. 연극공연, 신전행사, 심포지온 등 행사장에 최고위 신분이나 공직자들은 월계관을 쓰고 나타났다. 이런 풍습을 로마인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다프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다프네가 급히 도망치다 아버지 강의 신 라돈의 도움으로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 로마시대 모자이크. 튀니지 엘젬 박물관 ⓒ 김문환

로마 독재자 카이사르, 월계관으로 대머리 가려

영국의 고대 로마 도시 사이렌세스터(Cirencester, 키렌케스터)로 가보자. 영국에서 지명 뒤에 ‘세스터(-cester)’, ‘체스터(-chester)’가 붙으면 로마시대 만들어진 유서깊은 도시라고 보면 틀림없다. 축구의 도시 맨체스터를 비롯해 도르체스터, 윈체스터, 체스터가 그렇다. 사이렌세스터 박물관은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로마시대 유물을 전시중이다. 그중 흥미로운 유물이 로마의 공화정을 뒤엎고 종신 독재정 시대를 열었던 카이사르 주화다. B.C45년 1월 종신독재관을 선언해 공화정에 종지부를 찍자마자, 3월 공화정을 지키려는 원로원 공화파 의원들에게 암살된 카이사르 얼굴을 보자. 머리에 월계관을 쓴 모습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염문을 비롯해 바람둥이로 소문난 카이사르는 해가 지고 밤의 행사가 시작될 무렵이면 월계관으로 대머리를 가리고, 로마의 여인들을 만나러 다녔다고 한다.

▲ 카이사르 주화. 로마에 독재정을 도입했다가 공화파에 암살된 인물이다. 머리에 월계관을 쓴 모습이다. B.C1세기 말. 영국 사이렌세스터 박물관 ⓒ 김문환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부부 월계관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 후계자는 안토니우스로 여겨졌다. 하지만, 베스타 신전에서 꺼낸 카이사르 유언장 속 후계자는 18살짜리 애송이 옥타비아누스였다. 카이사르 누나의 손자다. 체구도 작고 병약했던 옥타비아누스는 피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카이사르도 못했던 실질적 황제 자리에 오른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처럼 분방하게 로마 여인들을 만나고 다니지는 못했다. 재혼한 아내 리비아와 해로하는데, 둘의 조각을 파리 루브르에서 만나보면 역시 머리에 월계관을 썼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결혼하며 그리스문명을 지키고자 했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클레오파트라를 B.C31년 악티움해전에서 물리치고, B.C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붕괴시킨다. 그 결과 B.C331년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를 2번째 격파하며 문을 연 그리스 주도의 헬레니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옥타비아누스는 비록 그리스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문화는 그대로 이어받은 거다.

▲ 월계관을 쓴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조각. B.C1세기 말. 루브르 ⓒ 김문환
▲ 월계관을 쓴 옥타비아누스의 황후 리비아. B.C1세기 말. 루브르 ⓒ 김문환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월계관

로마 팔라쪼 마시모 박물관으로 무대를 옮겨보자. 역대 로마 황제들의 얼굴을 담은 주화를 다수 소장하고 일반에 전시중이다. 이 중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3년-305년) 금화에 눈길을 건넨다. 금빛 번쩍이는 주화 속 황제는 머리에 관을 썼다. 월계관이다. 해방노예출신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테트라키(Tetrarchy)’라는 정치 용어와 뗄 수 없다. 3세기 로마제국은 내부적으로 군인황제의 잇따른 쿠데타와 권력투쟁으로 극도의 혼란과 침체를 겪는다. 외부적으로는 게르만족의 이동이 격화되고 동부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등장해 로마의 국경을 위협했다. 이때 황제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적의 침략에 신속한 대응을 위해 제국을 4분할 통치한다.

▲ 월계관을 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금화. 3세기 말. 로마 팔라쪼 마시모 박물관 ⓒ 김문환

동서로마로 나눠 황제(아우구스투스) 2명이 다스리고, 그 아래 각각 부황제(카이사르)를 둬 실질적으로 4분할 통치한 체제다. 그리스어 4를 가리키는 테트라(tetra)를 넣어 4인 정치체제라는 뜻의 ‘테트라키’가 나왔다. 테트라키 아래서 동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부황제로 갈레리우스를 임명하고 테살로니키를 거점 삼아 통치하도록 했다. 오늘날 테살로니키에 많은 로마 유적과 유물이 남은 이유다. 테트라키 아래서 로마는 잠시 부흥의 날갯짓을 편다.

트라키아, 그리스, 로마의 일상 속 금관

불가리아 카잔룩의 트라키아 고분으로 발길을 돌린다. B.C5세기-B.C4세기 만들어진 석실묘 내부는 당시 무덤에 묻힌 주인공의 일상 삶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무덤 주인공 부부가 정다운 포즈로 호화로운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자. 남편은 오른손에 그릇을 들고 음료를 마시는 중이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아내나 남편 모두 머리에 반짝이는 노란색 관을 썼다. 금관일 가능성이 높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분명한 것은 일상은 몰라도 부장품으로 화려한 금관이나 금동관을 넣은 점이다.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으로 가면 카잔룩의 트라키아 고분과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도자기 그림이 반겨준다. 침대에 앉아 옷을 벗고 있는 여인이 머리에 쓴 관이 반짝인다. 역시 금관으로 추정된다. 로마 시대로 넘어가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폼페이에서 발굴한 프레스코 그림을 보면 로마 여인들은 머리에 금으로 만든 망사를 써 멋을 냈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바르도 박물관에 전시중인 로마 모자이크는 귀족 부인의 치장모습을 담았다. 귀걸이는 물론 진주목걸이와 여러 개의 금팔찌를 찼다. 머리에는 노란색 관을 썼는데, 금관으로 보인다. 이렇게 실제 썼을 가능성이 있는 금관들이 남아 있을까?

▲ 트라키아 석실 무덤. B.C5세기-B.C4세기. 불가리아 카잔룩 ⓒ 김문환
▲ 금관 추정 관을 쓴 부부 프레스코. B.C5세기-B.C4세기. 불가리아 카잔룩 ⓒ 김문환
▲ 금관 추정 관을 쓴 그리스 여인 도자기그림. B.C410년. 아테네 고고학박물관 ⓒ 김문환
▲ 금관으로 추정되는 관을 쓴 로마 여인 모자이크. 4세기. 튀니지 바르도 박물관 ⓒ 김문환

헬레니즘 시대 만개한 금관문화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그리스문명이 꽃폈던 지역에서 리쓰(Wreath)와 디아뎀(Diadem) 형태 황금관들이 출토된다. 참나무와 도금양, 올리브 형태 나뭇잎 관들이 주를 이룬다. 테살로니키 박물관을 수놓는 화려한 나뭇잎 금관들의 찬란한 빛은 탐방객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특히, 도금양 황금관은 무성한 잎은 물론 꽃송이에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까지 금과 라피스라줄리 같은 보석으로 표현해 더욱 아름답다. 초화(草花)를 넘어 정원을 금관에 구현해 놓은 모습이다. 나뭇잎 형태를 좀 더 추상화시킨 디아뎀 형태 관들도 발굴된다. 귀족 여성들이 실생활에서도 사용했을 가능성은 벽화나 도자기, 모자이크에서 보듯 높아 보인다.

▲ 도금양 금관(Wreath). B.C4세기. 마케도니아. 테살로니키 박물관. ⓒ 김문환
▲ 도금양 금관(Wreath). B.C4세기. 마케도니아. 테살로니키 박물관. ⓒ 김문환
▲ 금관(Diadem). B.C325년-B.C300년.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김문환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금관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발굴된 금관 8개(신라 6개, 가야 2개)를 비롯해 여러 금동관의 특징과 기원을 짚어본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금관문화를 현장유적과 박물관 유물취재를 통해 문명교류 관점에서 5회에 걸쳐 들춰본다.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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