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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봉수 칼럼] 학계·언론보다 여론 반영해 가짜뉴스 적극 규제해야
2019년 02월 18일 (월) 18:27:47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백성 입 막는 것은 물 막는 것보다 심각합니다.”
“진리와 거짓이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없다.”
“일부 유해한 가지를 잘라 냄으로써 좋은 과일을 생산하는 가지의 생장력을 해치기보다는 유해한 가지를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낫다.”

위에서부터 사마천의 <사기>와 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에 나오는 말, 그리고 미국 헌법을 기초한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말이다. 모두가 표현의 자유에 관한 헌사들이다. 표현의 자유는 수많은 선각자와 대중의 투쟁, 그리고 희생 덕분에 기본권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어 여전히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으로 강조된다.

극우정치 득세의 온상

   
▲ 왼쪽부터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 남소연

그러나 자유권에는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내재적 한계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가짜뉴스도 그중 하나다. 가짜뉴스가 워낙 극성을 부리자 이를 규제할 거냐 말 거냐로 의견이 분분하다. 청와대와 민주당에서는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많지만 언론학계와 언론계에서는 대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이에 낀 방송통신위원회는 위원회 구성의 구조적 문제와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겹쳐 가짜뉴스 생산자와 전달자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5.18 북한군 배후설’이 국회에서까지 터져 나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엄연한 사실과 역사를 부정하는 가짜뉴스가 창궐하면서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정치세력을 규합해 나라를 두 쪽 낼지도 모른다. 파시즘의 광기를 처참하게 겪은 유럽에서도 극우 정치가 득세하고 있으니 민주주의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인가?

‘5.18 망언’ 국회의원 징계가 놓치고 있는 점

지금 비판은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세 의원과 지만원 씨, 비호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지도부에 집중되고 있으나, 비판과 제재의 과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가짜뉴스 생산자와 플랫폼이다. 세 의원은 징계와 수사를 받게 됐고 지만원 씨도 몇 년 전 같은 망언으로 소송에서 패해 거액을 배상하게 됐지만, 지 씨의 망언을 퍼뜨린 극우 매체들은 오히려 급성장했다. 그들 매체는 소위 ‘5.18 공청회’를 생중계하는가 하면 조악하고 왜곡된 콘텐츠를 만들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가짜뉴스 규제에 관해 보수세력은 ‘보수 언론 재갈 물리기’로 규정했고, 그동안 위기에 처한 한국언론에 쓴소리를 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온 언론학자들과 진보성향 미디어 전문지까지 대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무한한 자유는 다른 누군가의 부자유와 권리침해를 뜻한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자식 등을 잃고 피눈물로 한 세월 살아온 이들에게 이번 ‘5.18 망언’은 명예는 물론이고 인격을 죽이는 명백한 권리 침해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날조된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로 이중의 슬픔을 겪어야 했다. 혐오 발언은 주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향하기에 무슬림 예멘 난민,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등이 겪은 고통도 엄청났을 것이다.

지연된 정정은 정정이 아니다

   
▲ 범람하는 가짜뉴스. ⓒ unsplash

학자들은 기존 법을 이용하면 가짜뉴스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개인이 언론권력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허언증 환자로 매도됐던 홍가혜 씨가 <조선일보>에서 손해배상을 받은 것은 5년 만이었다. 검색해보면 언론이 쏟아낸 홍가혜 씨 관련 기사는 수 천 건에 이르렀지만 다른 언론에는 소송을 걸 엄두도 못 냈고 판결이 나왔는데도 정정기사를 실어준 데가 거의 없었다. 그는 6천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소송비가 2억원 가량 들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하며 확인되지 않은 김대업 주장을 크게 보도했다가 허위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는데, 대선 몇 년 뒤 정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연된 정의가 정의가 아니듯, 지연된 정정도 정정이 아니다. 가짜뉴스 대응도 신속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언론의 오보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없다고 보지만 명백한 허위조작정보에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건 자유의 가치를 오히려 폄하하는 것이다.

미국의 올리버 홈즈 판사는 ”누군가 말을 하거나 글로 쓴 것이 사회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주지 않는 한 자유로운 말 또는 언론은 보호돼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판결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 가짜뉴스 중에는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으로 봐야 할 게 많다. 반인권적, 반공동체적 허위 사실 전파가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야말로 위험하다. 유명한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 재판에서는 ‘현실적 악의’가 없는 언론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극우매체뿐 아니라 기성언론 보도 중에도 정권에 ‘현실적 악의’를 갖고 왜곡보도한 사례가 많다.

미국은 헌법 1조에 천명할 정도로 언론 자유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다. 자유시장에 맡겨진 미국 언론은 <폭스TV> 등이 약진한 데서 나타나듯이 유럽보다 바람직하지 못한 언론 지형을 보여주고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미 2003년에 “독일·프랑스·스페인에서는 아직도 고급 정론지를 중심으로 토론문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경로가 막혀 민중의식의 빈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버마스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영국을 비롯한 북유럽국가들도 좋은 언론 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자유주의 언론 사상에 지나치게 집착

자유주의 언론 사상에 대한 우리 언론학자들의 집착은 그들 대부분이 미국 유학파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경쟁 언론은 많을수록 좋다’며 종합편성채널을 대거 허용하는 데 기여한 ‘종편 이데올로그’도 그들이었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1인 미디어를 방송 서비스로 보는 건 아이러니”라며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도 있고 유튜브가 우리나라 회사도 아니어서 실제 규제가 가능할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이제 언론의 기준은 종업원수나 발행부수 같은 것뿐 아니라 영향력도 포함해서 파워 유튜버들은 당연히 언론으로 보고 가짜뉴스 생산을 막아야 한다.

데이터 서버를 법인세가 낮은 나라에 둔 것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다국적 IT 기업의 농간인데,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그 농간에 영합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서버가 자국에 없지만 ‘구글세’를 받기로 했다. 우리 공무원들은 ‘구글세’를 도입하면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IT 서비스에 관한 한 미국으로 넘어가는 이익이 훨씬 많다.

프랑스 규제 담당 공무원들은 혐오 발언 등을 없애기 위해 페이스북 법인에 올 1월부터 6개월 상주하면서 현장조사를 한다. 인종 차별 등 증오가 실린 언급을 페이스북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감시하고 구글 등으로도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견주면 한국의 페이스북과 구글은 조세천국에서 치외법권을 누리는 듯하다.

구글·페이스북, 민원 무시하고 확증편향 강화

   
▲ 더불어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별위원장인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가짜뉴스대책특위 주최 '가짜뉴스 허위조작정보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2018.10.17 ⓒ 남소연

박광온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구글코리아를 방문해 명백한 가짜뉴스들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위반 콘텐츠가 없다”는 면박을 받아야 했다. 나도 2년 전 페이스북이 삭제돼 1천 명이 넘는 페친을 복구할 수 있을까 문의하려고 제천에서 서울 강남의 페이스북코리아까지 달려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적이 있다. 용역경비로부터 “직원은 이용자를 만나주지 않는 게 페이스북의 정책”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유튜브의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의 시청기록을 분석해 관심있는 영상을 계속 추천하기 때문에 확증편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유튜브로서는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해 수익을 올리지만 그만큼 허위정보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다. 구글코리아는 ‘노회찬 타살’ ‘문재인 뇌출혈’ 등 허위정보가 깔렸을 때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배열한 것”이라고 발뺌했는데, 그 알고리즘을 설계한 사람은 구글 직원이 아니고 누구인가? 학자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를 가짜뉴스 대책으로 제시하는데, 필요하긴 하지만 이용자가 ‘알고리즘의 유혹’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제 우리도 플랫폼에 의무를 부과해 허위정보 유통을 저지하고 그것을 조작해내는 유튜버도 규제해야 마땅하다. 흔히 외국에 없는 제도는 도입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없는 제도도 만들어야 하는 게 한국의 유별난 언론 환경이다. 재벌언론과 언론재벌, 그리고 극악스러운 가짜뉴스 생산자가 한국처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외국의 규제 사례가 없지도 않다. 유튜브·페이스북·애플은 미국에서 혐오 표현을 계속해온 알렉스 존스의 극우매체 <인포워스>를 삭제했다. 한국에서 이들이 꿈쩍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공적 감시와 시민사회의 압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학자의 이론보다 여론의 진정성을 믿는다

   
▲ 유튜브 가짜뉴스. ⓒ 한겨레

기존 법규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기존 조직을 이용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위원회는 정치권이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돼 심의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민언련 발표에 따르면 시민방송심의위원회가 편파·왜곡·오보 방송이라며 ‘법정제재’ 의견을 붙여 민원을 제기한 8건 가운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법정제재’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1건에 불과했다.

전문성 면에서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정치권이 구성한 위원회보다 자유롭게 참여한 시민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더 믿음이 간다. 가변적인 게 여론이지만 나는 학자들의 ‘이론’보다 현장의 목소리와 ‘여론’의 진정성을 믿는다. 지난 10월 5일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가짜뉴스 방지법 도입에 63.5%가 찬성하고 반대는 20.7%에 그쳤다. 10월 21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국민 90%는 허위조작정보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했으며 81%가 엄정한 대응에 공감했다.

기성언론에 의한 사실확인(팩트체크)이 가짜뉴스 방지책으로 거론되는데 미디어 자체비평과 상호비평 기능이 미약한 한국 언론에는 한계가 있다. 기성언론 중에는 가짜뉴스 감시자를 자처하지만 생산자인 동시에 대량전달자인 곳도 있다. 독립언론과 미디어 전문 매체, 시민단체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지만,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는 데는 힘에 부친다. 또 가짜뉴스로 확인되더라도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전혀 개의치 않는 게 극우매체의 특성이다. 극우매체와 김진태 의원 등이 ‘5.18 망언’을 오히려 세 결집에 활용하는 게 바로 그런 사례다.

‘표현의 자유’는 너무 중요해 ‘자유’에 맡겨둘 수 없다

가짜뉴스의 속성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허위조작정보 유통금지법을 제정해 놓고 유명 유튜버든 플랫폼이든 위법 사실이 적발됐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과 처벌을 하지 않으면 ‘가짜뉴스 소굴’을 소탕할 수 없다. 독일은 허위로 조작된 증오 표현 등을 삭제하지 않으면 640억원의 과징금을 물린다.

자율에 맡기자고 주장하려면 피싱으로 금융사기 치는 것도 자율에 맡기자고 해야 한다. 피싱보다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훨씬 큰데 방관하자고?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중요해서 ‘자유’에 맡겨둘 수 없다.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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