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박지영 기자

캄캄한 밤을 밝힐 전등도, 전염병 백신을 보관할 냉장고도 없었던 마을. 전기가 없어 가난과 질병을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웠던 아프리카 케냐 빈민가 등에 태양광 패널이 속속 설치되고 있다. 외신 인터뷰에서 “이제 해 진 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빛났다.

돈이 없어 발전소와 송전시설을 지을 엄두를 못 냈지만 뜨거운 햇볕만은 지구상 어느 곳보다 풍부한 땅. 집집마다, 혹은 마을마다 설치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이 아프리카에 ‘에너지 접근’과 ‘에너지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케냐도 독일도 햇빛발전으로 도약

대규모 시설투자와 값비싼 연료공급을 요구하는 화력·원자력과 달리 ‘소규모 설비’와 ‘공짜 연료(햇빛·바람)’로 가동할 수 있는 태양광·풍력 발전은 전 세계 에너지 지형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빈곤과 절망이 자욱했던 아프리카의 밤이 밝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변덕스런 국제 원유가 등에 골머리를 앓았던 선진국들도 에너지 자립의 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있는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거주민들. © Solafrica

독일은 오는 2022년 ‘탈원전 완료’를 목표로 핵발전소를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생산의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석유 등 해외 에너지 수입도 2014년 기준 전년대비 약 80억유로(약 10조원)나 줄였다. 독일 연구기관들은 ‘재생에너지 생산 증가로 에너지 안보가 강해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만으로 그날 전국의 전기수요량 100%를 충당하는 놀라운 기록도 여러 차례 세웠다.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 자급률이 고작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최하위다.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등 화력발전과 원전 연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국제 시장에서 원자재 가격이 요동치면 그 충격이 그대로 국내 경제를 뒤흔든다. ‘에너지 자립’이 안되니 ‘에너지 안보’가 늘 불안하다.

만일 독일처럼 보수·진보 상관없이 정부가 일관되게 에너지전환을 이끌고, 환경의식이 투철한 국민들이 강력하게 지지해준다면 우리도 달라질 수 있다. 국토 곳곳에서 ‘연료비 공짜’로 활용할 수 있는 햇빛과 바람을 반도체와 조선해양 기술 등에 접목하면 ‘자원 거지’ 신세에서 ‘에너지 자립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가짜 뉴스’로 에너지전환 발목 잡는 세력

문재인 정부도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오는 2030년까지 우선 전체 발전량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원자력·석탄화력 등 기존 발전산업 이해관계자들의 저항과 일부 언론의 사실 왜곡, 재생에너지 시설을 둘러싼 지역 갈등 등으로 앞길이 불투명하다. 사실에 엄격해야 할 전문가들과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태양광 패널의 중금속 오염과 전자파 위험 등 이미 ‘가짜 뉴스’로 판명 난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 여러 나라에서 태양광·풍력의 경제성이 원전·화력을 앞질렀고 우리보다 일조량이 적은 나라에서도 태양광이 급성장하는데, ‘재생에너지는 비싸다’ ‘우리 국토는 태양광·풍력에 부적합하다’ 등 한물간 주장을 계속 되풀이한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인식과 실천도 뒤처져 있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세계 정상급 기업 154곳은 사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에서 얻겠다며 ‘RE(Renewable Energy)100 이니셔티브’를 결성했다. 반면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해외 사업장은 몰라도 국내에선 여건이 안 된다’며 소극적 행보에 그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각국에서 ‘혁신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는 것도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은 광산 등 기존 연료분야 일자리가 2005년 17만5000개에서 2014년 3만5000개로 줄어든 대신 재생에너지 일자리는 같은 기간 17만개에서 35만5000개로 늘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혁신성장을 위한 에너지 전환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도 재생에너지 관련 일자리가 2012년 714만개에서 2017년 1034만개로 5년 사이 4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 발전기와 전기자동차에 연결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기술산업의 매출이 눈부시게 늘고 있고, 새로운 에너지 금융상품도 등장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같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도 에너지전환 투자로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국산 에너지’ 시민이 요구해야

우리나라가 햇빛, 바람, 지열 등을 활용해 에너지 자립과 혁신 성장을 이루려면 정부·기업·주민이 새로운 협업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주민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업자 소유의 태양광·풍력발전소를 세우는 게 아니라 생태환경을 보전하면서 주민과 이익을 나누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바람은 모두의 것’이라는 공풍화(共風化) 개념을 도입한 제주도의 이익공유제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언론의 역할과 시민의 각성도 중요하다. 폭염·혹한 등 기상재난으로 현실화하고 있는 기후변화, 체르노빌·후쿠시마에서 확인된 원전사고의 위험성, 그리고 숨 쉬는 것조차 두려운 일로 만들어버린 미세먼지를 모두 극복하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깨달아야 한다. 재생에너지라는 대안에 충분히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각국 사례와 실증 자료를 통해 알려야 한다.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식의 ‘혹세무민(惑世誣民)’은 박살을 내야 한다.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수입 연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국산 에너지로 가자고 시민들이 나서서 요구해야 한다.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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