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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깨뜨려 버린 ‘통계의 금기’
[이재형의 통계이야기] ➅
2018년 11월 28일 (수) 22:15:10 이재형 박사 jhlee01@kdi.re.kr
   
▲ 이재형 박사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곧 홀로코스트(holocaust)는 20세기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학살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 숫자는 600만명이라고도 하고, 많게는 1,100만명에 이른다는 연구도 있다고 한다. 나치는 독일 본국뿐 아니라 폴란드, 체코, 프랑스 등 점령지에서도 유대인을 색출해 상당수를 학살했다. 

나치는 유대인을 어떻게 색출했을까

나치는 유대인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유대인은 로마시대부터 유럽 각지로 이주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아왔다. 유대인은 짧게는 수백년, 길게는 천년 이상 나라 없이 살면서도 자기네 고유문화를 지켜왔지만, 그 나라 문화에 동화하면서 살아온 이들도 많았다. 타민족과 결혼한 이도 많아 혼혈도 꽤 이루어졌다. 그들은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내세우는 이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많았다. 우리나라처럼 호적이나 주민등록 같은 제도가 있는 나라도 많지 않은데 나치는 어떻게 유대인을 색출했을까?

나치가 한 일은 통계를 악용하는 거였다. 나치는 독일 연방통계청에 유대인 거주지 관련 정보를 제공하도록 명령했다. 통계청은 인구센서스로 독일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개별 정보와 실거주지 실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통계청은 센서스의 원자료를 나치에 제공했고, 나치는 이를 토대로 독일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거주지를 파악해 이들을 체포했다. 나치는 다른 점령국에도 유대인 거주지를 파악하기 위해 인구등록자료 등 여러 행정자료를 악용했다. 

   
▲ 통계청이 제공한 센서스의 원자료를 토대로 나치는 독일 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거주지를 파악해 이들을 체포했다. ⓒ Pixabay

독일 통계청, ‘홀로코스트 협력’ 오명

그 결과 독일 통계청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협력했다는 지울 수 없는 오명을 쓰게 된다. 2차세계대전에서 나치가 패해 역사의 심판을 받았지만, 통계청의 과오는 독일 국민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기관으로서 통계기관을 꼽지만, 이 비율이 독일에서는 아주 낮다고 한다. 통계조사에 대한 국민의 호응도 다른 선진국들보다 낮다고 한다. 통계기관의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이처럼 회복하기 힘들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습을 받은 미군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고, 미국인 사이에 일본인에 대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일부 일본계 미국인의 일본군 지원 행위였다. 이민 2세대는 이미 미국사회에 동화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민 1세대는 여전히 조국에 충성심이 강하여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일본을 도우려 한 것이다. 하와이에서는 폭격에 가담했다가 불시착한 일본인 조종사를 지키기 위해 일본계 미국인이 하와이 원주민에게 해를 입히는 사건도 발생했다. 일본군에게 재정 지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일본 군인연맹에 소속된 1만명 안팎의 일본계 미국인은 일본군에게 기부금을 보내고 있었으며 미군에 대한 협조를 거부하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미국 센서스국, 2차대전 때 일본계 미국인 정보 제출 거부 

미국은 국민의 반일감정을 달래고, 일본계 미국인에 의한 전쟁수행 방해와 스파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일본계 미국인을 격리수용했다. 1942년부터 일본계가 많은 하와이와 미국 서부지역에서 약 12만의 일본계 미국인이 수용소에 강제로 격리수용되었다. 전쟁의 승패가 확연해진 1944년부터 수용소가 조금씩 폐쇄되기 시작해 수용자들도 자유를 되찾았다. 이들은 수용되면서 대부분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석방 뒤에도 재산을 다시 찾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많은 일본계 미국인이 단지 그가 일본계란 이유로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2~3년간 강제로 수용되었고, 재산도 대부분 몰수당해 생활기반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 미국이 과거에 저지른 자기 잘못을 사과하는 사례는 좀처럼 없는데, 이 사건에 대해서는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이 사과하고, 개인당 2만 달러 정도 보상금을 지급했다.

미군이 일본인들을 강제수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주로 어디에 거주하는지 알아야 했고 개인별 거주지를 파악해야 했다. 이런 정보를 가진 유일한 국가기관이 바로 인구센서스 통계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상무부의 센서스국이었다. 인구센서스 응답 자료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의 개인별 국적관계과 거주지 등 상세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국방부는 센서스국에 일본인의 개인별 주거지 정보를 제공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센서스국은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통계기관의 의무에 어긋나므로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국방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정보라며 거듭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이에 센서스국은 응답자의 개인별 정보제공은 불가능하며 그 대신 일정 단위로 지역을 구분하여 지역별로 원국적별 인구분포에 관한 통계를 만들어 제공했다. 이렇게 하여 센서스국은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부터도 통계응답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었다.

통계기관이 통계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사대상자의 정확한 응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조사대상자는 통계조사에 사실대로 응답했다가 혹시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로 이용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국가기관이기에 통계기관에 응답한 내용이 다른 국가기관으로 흘러 들어가 이것이 나에게 불이익을 초래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통계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쉽게 쌓이지 않는다.

통계 조사과정에서 응답자의 살인 증거를 알았다면... 

통계의 정확성은 조사대상자인 국민들의 절대적인 협조 아래서 비로소 가능하며, 통계기관은 통계조사에서 진실한 응답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조사대상자들이 통계기관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통계기관이 그 비밀을 어느 누구로부터도 반드시 지켜준다는 확신이 있을 때 국민들은 비로소 올바른 대답을 하게 된다. 이 점에서 조사대상자의 개인정보 보호는 통계기관이 지켜야 할 가장 큰 가치다. 이것이 무너질 때 통계기관의 신뢰성은 기반을 잃게 되며, ‘진실의 추구’라는 통계의 목적은 실현 불가능해진다.

10여 년 전쯤 어떤 통계담당공무원으로부터 “만약 통계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조사 대상자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그래도 개별 정보를 보호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 답했다. “만약 통계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살인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거나 살인의 증거가 발견됐다면 이는 통계조사 내용과는 직접 관계가 없으므로 보호받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의 통계조사 응답내용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 정보는 보호되어야 한다.”

국가기관 간에도 개인정보 방화벽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국가기관이 수집한 정보들이 정부 내에서 서로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기관들이 직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정보들은 다른 기관으로 그것이 넘어갔을 때 개인정보의 목적 외 사용에 따른 개인의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세금징수를 위해 국세청은 사업자의 회계정보에 관해 상당히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 자료들이 다른 국가기관으로 넘어가면 그 사업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 사업자가 환경 담당 기관에 폐수처리를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고했는데, 국세청이 보유한 실제 회계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다고 치자. 이 자료가 만약 환경담당 기관에 넘어가면 그 사업자는 환경 문제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국세청은 세금 관련 자료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개인정보를 엄격히 보호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세청은 세금징수 행정 자체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개인에게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자료들은 정부기관 간에도 목적 외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기관 간 자료제공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정부업무 간, 정부기관 간, 정보 간에 방화벽을 설치하여 자료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가 보유한 개인정보에 엄격한 방화벽을 두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한 국가의 의무다. 정부 보유 자료 가운데 자료 이동이 가장 엄격하게 통제받는 것이 바로 통계응답자의 개별응답 내용이다.

응답자의 개인 정보 보호는 통계기관의 철칙

최근에는 통계행정의 효율화와 아울러 좀 더 정확하고 다양한 통계 작성을 위해 통계작성에 각종 행정자료를 활용하는데 이는 세계적 조류이기도 하다. 통계작성에서 행정자료를 활용할 때 철칙은 ‘다른 행정기관 자료는 통계청으로 넘어오지만 통계청 자료는 다른 행정기관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국세청의 세금 관련 자료 등 많은 국가기관 자료가 통계청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통계청 보유 자료는 국세청 등 다른 국가기관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통계작성과 관련해서는 정부기관 간 자료 이동은 일방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공론장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론장이 건전해지려면 객관적 현실 인식을 공유해야 하며 그 바탕이 되는 게 통계다. 통계가 흔들리면 정책도 여론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도 통계 왜곡에서 출발한다. 언론인은 통계 해석을 잘못하면 ‘사회의 공적’이 될 수 있지만 잘하면 ‘해석특종’을 할 수 있다. 통계전문가인 이재형 박사가 통계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풀어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일하는 그는 <국가통계시스템발전방안> <한국의 산업조직과 시장구조> 등 많은 연구와 저술을 해왔고 통계청 통계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편집자]

편집: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단비뉴스 국제부 박경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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