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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1100주년 고려는 ‘포용’으로 통일
[역사인문산책] 대구 평화통일염원 걷기대회
2018년 10월 31일 (수) 21:27:22 최준혁 기자 silim5707@gmail.com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최준혁 기자

정몽주의 <단심가>다.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려보세”라는 <하여가>로 고려 충신의 마음을 떠보자 답가로 부른 것이다. 설득이 안 됨을 깨달은 이방원은 수하 조영무를 시켜 정몽주를 척살한다. 피로 물든 개성 선죽교를 뒤로 한 채 고려는 474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명나라에 나라 이름까지 낙점받은 사대의 조선과 달리 고려는 자주의 궤적을 그린 나라였다. 고려는 외세 개입 없이 자력으로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합쳤다. 올해는 918년 고려가 나라를 세운 지 1100년째다. 분단 73년 만에 남북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나 평화와 협력을 모색하는 지금, 대구 팔공산 일대에 남은 태조 왕건의 자취를 더듬으며 고려의 자주통일이 던지는 교훈을 짚어본다.

보수의 심장에서 시작하는 평화통일의

지난 27일 오전, 스산한 늦가을 바람에 낙엽이 뒹구는 대구시 불로동(不老洞)을 찾았다. 불로동은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전투하며 이곳을 지날 때 나이든 이들은 도망가고, 철부지 아이들만 남았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불로천(不老川)을 따라 걷다 보니 산책하는 노인들만 간간이 눈에 띈다. 지명은 세월에 묻히고, 노인들만 동네를 지키는 고령사회 탓이다.

   
▲ 제4회 평화통일염원 대구경북 시도민 걷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통일을 기원하며 걷고 있다. ⓒ 최준혁

정오를 넘기면서 불로천 주변으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이내 북적일 만큼 많아졌다. 아이들만 보였다는 지명처럼 청소년도 꽤 모였다. ‘평화통일 염원 대구경북 시도민 걷기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수백 명 시민들이 궂은 날씨에도 포기하지 않고, 4시간여 불로천변을 걸으며 통일의 의미를 되새겼다. 힘겹게 걷기대회를 마친 박윤경(17) 양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남북평화가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대회를 주최한 <오마이뉴스>의 조정훈 기자는 “가장 보수적인 대구에서 평화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남북화해가 이루어지고 많은 왕래가 이뤄진다면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행사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회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통일과 관련된 얘기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4회째를 맞은 평화통일 염원 걷기행사가 보수의 중심인 대구의 민심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기대해보며 발길을 팔공산으로 돌렸다.

고려 장군 8명의 충혼 기린 공산 전투에서 팔공산지명

대구시민의 쉼터이자 대구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해발 1193m 팔공산은 왕건과 고려 충신들에게서 이름이 나왔다. 927년 후백제 견훤은 고려와 연합하려는 신라에 침공해 경주를 유린하고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자결하게 했다. 아비규환의 경주로부터 구원요청을 받은 개성의 고려 왕건은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도우러 달려왔다. 왕건 군대가 경주에서 철군하던 후백제 견훤 군대를 맞닥뜨린 장소가 팔공산이다.

   
▲ 왕건과 견훤의 후삼국 패권전쟁을 다룬 드라마 ‘태조 왕건’의 한 장면. ⓒ KBS

공산전투로 기록된 이 싸움에서 견훤군을 먼저 공격한 쪽은 왕건군. 하지만 지역을 선점한 견훤 군대에게 개성에서 급히 달려온 고려군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고려군은 왕건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지며 참패하고 만다. 이때 8명의 충성스러운 고려 공신이 목숨을 잃었다 해서 팔공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왕건 복장으로 위장해 순절한 신숭겸 장군의

팔공산 일대에는 왕건과 고려 장군들의 자취가 밴 지명이 여럿이다. 대한불교조계종 9교구 본사인 팔공산 동화사 쪽으로 가다 보면 파군(破軍)재 삼거리가 나온다. 고려군이 패해 흩어진 고개라는 뜻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2km 지점, 왕산 아래에 신숭겸 장군 유적지가 있다. 신숭겸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왕건을 대신해 그의 옷을 입고 후백제군을 유인하다 죽은 충신이다.

신숭겸의 희생 덕에 살아남은 왕건은 신 장군이 전사한 자리에 신묘(神妙)한 지략(智略)을 펼쳤다는 의미로 지묘사(智妙寺)라는 절을 세워 그를 기렸다. 고려 멸망 뒤 없어졌지만, 1607년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그 자리에 표충사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지묘사라는 절 이름은 사라졌지만, 지묘동(智妙洞)이라는 행정구역과 유적으로 복원돼 지금까지 충절의 혼을 잇는다.

   
▲ 대구 동구 지묘동에 있는 신숭겸 장군 동상. ⓒ 최준혁

탐방객 장재광(57) 씨는 “대구에 살아도 시간 내서 오기는 쉽지 않은데, 마침 날씨도 좋고 단풍 구경할 겸 와 보니 역사적 의미도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정성표(65) 문화해설사는 “신숭겸 장군이 순절함으로써 고려의 밑거름이 됐는데, 그런 분을 모시는 유적지에서 일하는 게 뿌듯하다”고 고려와 관련된 대구 역사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독좌암, 반야월, 안심 왕건의 자취 스민 지명

파군재에서 불로동 방면으로 10분쯤 걸으면 큼직한 바위가 보인다. 신라를 도와주겠다고 기세 좋게 달려 왔지만, 많은 장군과 병사들을 잃고 자기 목숨마저 경각에 달린 순간, 실의에 빠진 왕건이 잠시 홀로 앉아 활로를 모색했다고 해서 독좌암(獨坐岩)이라 불린다.

독좌암에서 기운을 차린 왕건이 불로동을 지나 동남쪽으로 퇴각하는데 어느덧 하늘 한가운데 반달이 떠 길을 비췄다는 데서 ‘반야월(半夜月)’이란 지명이 나왔다. 달빛의 도움으로 힘을 얻어 전진한 왕건이 마침내 위험에서 벗어나 마음을 놓았다는 곳이 안심동(安心洞)이다.

오늘날 대구 지하철 1호선 반야월역과 안심역에 얽힌 왕건의 흔적이다. 대구시는 이런 왕건의 자취를 기려 팔공산 주변에 ‘용호상박길’을 포함한 37km 구간 8개 길을 합친 ‘팔공산 왕건길’을 조성해 고려 통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걸을 수 있게 했다.

남북철도 연결로 다시 꾸는 대륙의

지하철 반야월역과 안심역 사이에 있는 옛 반야월역사로 가봤다. 옛 반야월역은 경부선과 중앙선(청량리-경주)을 연결하는 대구선(대구 가천역 ~ 경북 영천역)의 한 역이었다. 2008년 대구선이 옮겨 가면서 지금은 기적소리가 멈췄다. 그 대신 반야월역사는 신서동으로 옮겨져 '반야월역사 작은도서관'으로 다시 시민에게 봉사하고 있다.

   
▲ 지금은 도서관으로 바뀐 구 반야월역사. ⓒ 문화재청

도서관에서 책을 펴보며 잠시 상상에 빠져본다. 80여 년 전만해도 반야월역에서도 기차를 타면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유럽으로 갈 수 있었다. 해방과 함께 드리운 분단의 38선, 6.25 뒤 생긴 휴전선은 대륙의 철길을 끊었다. 통일을 염원한 고려 개국의 꿈이 현재 논의중인 남북철도연결사업으로 실현돼 헛된 공상으로 끝나지 않기를 빌어본다.

고려 건국 1100주년 교훈, 인정과 포용

   
▲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 손을 맞잡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은 올해 3차례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연내 ‘종전선언’, 궁극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경제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북미회담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남북관계를 끌고 갈 동력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럴 때일수록 과거 역사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떠올린다.

왕건이 918년 고려 건국과 936년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지한 정책은 ‘호족 인정’과 ‘상대국 포용’이었다. 호족을 ‘지배’하고 상대국을 ‘공격’만 한 후백제 견훤과 달랐다. 고려 왕건은 지방호족의 세력권을 인정해줬다. 패권을 놓고 다툰 후백제의 견훤과 그 아들 신검마저 받아들여 벼슬과 식읍을 내렸다. 이런 ‘포용’ 덕에 신라 경순왕은 제발로 걸어와 나라를 바쳤다. 외세 개입 없이 고려가 갈라진 민족을 다시 합친 비결이다.

KBS 드라마 ‘태조 왕건’ 대사 한 토막에 역사적 전환점에 선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할 건국 1100년, 고려의 교훈이 담겼다.

“이 땅이 분열한 것은 서로의 욕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훗날 삼한의 주인이 될 사람은 그 욕심을 이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놓았을 때, 다 얻는 것입니다. 그 이치를 모르겠습니까? 강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유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를 놓고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치고 수강생은 한 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취재와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인데 첨삭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월요일 오후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도 첨삭을 거쳐 실립니다.

 편집: 고하늘 PD

[최준혁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지역농촌부, 청년부 최준혁입니다.
삶이 주는 우연과 모험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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