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장은미 기자

한국 최초의 복권은 언제, 어떻게 나왔을까? 1947년 12월 발행된 최초 복권은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 경비를 마련하려고 발행했다. 올림픽 참가는 결정됐지만 경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던 정부가 꾀를 낸 것이다. 복권 한 장을 100원에 팔았는데, 당시 영화관람료가 40원, 이발료가 120원, 쇠고기 한 근이 260원이었으니 결코 싼값이 아니었다. 발행한 정부도 겸연쩍었는지 복권을 사면 기념우표도 줬다고 한다. ‘올림픽 참여’라는 국민적 열망을 돈으로 거둬들인 것이다. 요즘 국민적 열망은 부동산이다. 한탕주의, 투기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정부는 종종 그 열망을 제어하기보다는 이용하려 한다.

우리나라 가계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가계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73.6%로 미국 34.9%나 일본 43.7%보다 훨씬 높다. 같은 해 주거실태조사를 봐도 주택보급률이 102.4%인데 주택 자가보유율은 59.9%에 그친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여러 채 가진 이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집값으로 지출해야 한다.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에 일희일비하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지금 문재인 정부도 부동산 정책에서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함부로 건드렸다가 역풍이 불어 닥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참여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으로 지지율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마침 김수현 사회수석은 참여정부 때 종부세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힘을 못 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마치 쇠사슬에 매어 행동반경을 제약당한 코끼리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힘 쓰기를 포기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 문재인 정부는 홈페이지와 SNS 등에 올린 동영상 ‘친철한 청와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편을 통해 ‘8.2 부동산 대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집을 거주공간이 아니라 투기공간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발언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최근 추진한 주택임대사업자등록제는 과도한 세제상의 혜택으로 오히려 다주택자들에게 세금 부담 완화를 안겨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이 이렇게 집값으로 고통받게 된 건 결국 정부 정책 탓이다. 1970-80년대 주택공급 부족을 이유로 건설업체인 공급자들에게 유리한 선분양제를 허용했다. 이는 주기적으로 투기를 일으킨다. 분양권 전매를 통해 실제로 집에서 살 사람이 아닌 투기꾼이 재산 증식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선분양제의 특성상 공급 과잉 충격이 시차를 두고 일어난다는 점도 문제다. 박근혜 정부 때도 ‘빚내서 집 사라’며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완화하는 등 투기를 조장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종합부동산세율을 내리고 과세 대상자를 줄이는 정책을 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뼈아픈 실책을 반복하는 중이다. 주택임대사업자등록제가 대표적이다. 임대주택 등록자에게 과도한 세제상 혜택을 줌으로써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세금 부담을 완화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릇된 정책의 당연한 귀결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불완전한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며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인용해 국가의 역할을 정의한 적이 있다. ‘정당화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을 강조하며 존 롤스의 정의론도 인용했다. 그러나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 역시 부동산 문제에서 무기력증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이 부동산 문제의 고질적인 문제를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살기 위해 집을 사는 다수 서민을 외면하고 투기꾼들을 위한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집을 향하는 국민적 열망을 투기가 아닌 삶의 질을 향상하는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오락가락 하는 정부 정책은 열망을 절망으로 바꾼다.


편집 : 양영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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