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이민호 기자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소득동향에 따르면 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8%, 2분위도 4%나 떨어져 2003년 이후 최대 낙폭을 보였다. 반면 상위 20%(5분위) 소득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9.3%나 오르면서 월소득 1천만원을 돌파해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2분기 조사결과는 더 나쁜 상황을 보여주었다. 1·2분위에 더해 중산층인 3분위도 소득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5분위 소득은 1년 전보다 10.3%나 오르면서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소득분배지표를 기록했다. 

도규상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1분위에서 70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며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20~30%에 불과하다 보니 근로소득 감소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인구 구조적 요인이 소득분배 악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통계 오류 가능성을 지적하자 통계청은 펄쩍 뛰며 부정했다. 물론 통계의 표본이 달라져 전 분기와 직접 비교할 수 없는데도 그것을 비교해서 발표한 통계청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급작스런 소득분배 악화 원인을 인구 구조적 요인과 통계방식 변경에 따른 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전년 동기 대비 8%, 2분위도 4%나 떨어져 2003년 이후 최대 낙폭을 보였다. 반면 상위 20%(5분위) 소득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9.3%나 오르면서 월소득 1천만원을 돌파해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2분기 조사결과는 더 나쁜 상황을 보여주었다. 1·2분위에 더해 중산층인 3분위도 소득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5분위 소득은 1년 전보다 10.3%나 오르면서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소득분배지표를 기록했다. 

▲ 2016년 11월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촛불은 계속된다!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광화문 방면으로 전진하고 있다. © 이민호

광화문 촛불집회는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과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으로 민주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성과로 기록됐다. 2016년 10월 29일 시작된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자율적인 행동을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이끌었으나, 11월 9일 집회부터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구성되면서 이들이 집회를 기획하고 이끌었다. 시민행동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대학 운동권 출신,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 출신에다 전문직 또는 화이트칼라 시민, 대형 노조 간부와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시민들의 의지를 하나의 메시지로 결집시키고 일정을 기획했다. 시민들과 하나가 된 이들의 목표는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재벌에 이권을 안겨준 국정농단 세력의 행태를 심판하는 것이었다. 2016년 겨울, 시민들의 촛불이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다. 대한문 앞 광장에서는 태극기를 든 무리가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경찰은 차벽을 세워 이 두 집단을 갈라놓았다. 우리 사회에서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이 두 부류의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엘리트 진보와 가난한 보수 집단이다.

그들은 인권, 민주주의, 정치질서 영역에서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는 이런 가치들이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집단 구성에서 ‘엘리트’라는 한계가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만 그들의 진보적 행보가 계속되었다. 소득 하위 20%(1분위) 계층의 소득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상위 20%(5분위) 계층의 소득이 10분기 연속으로 늘었으나, 문재인 정부가 0.5% 최상위 계층에만 세금을 더 걷는 선택을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세율도 찔끔 올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엘리트 진보 계층의 대척점에 가난한 보수 세력이 있다.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무죄’를 외치던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중산층이었다가 노년에 저소득층으로 떨어진 사람이 다수다. 박정희 대통령 사진과 성조기를 들고 군복과 군화를 착용한 것을 보면 그들의 보수성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다.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군사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국민 동원과 통제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가난한 노년 보수 계층의 젊은 시절, 그들에게 요구된 근면·성실한 노동은 가족의 삶을 넘어, 국가의 경제적 발전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건너가고, 중동의 사막 대수로공사에 동원된 이들은 노동자이기 전에 국가의 산업역군이었다.

▲ 2017년 2월 18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에서 태극기를 든 시민들이 조원진 의원의 연설에 호응하고 있다. © 이민호

두 집단은 엇갈린 사회·경제 집단의 이득을 자신의 집단 이익과 동일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엘리트 진보는 하위계층과, 가난한 보수는 지배세력과 자신들을 각각 동일시한다. 그러나 엘리트 진보 집단은 소득격차를 줄일 수 있는 재분배 정책을 사실상 거부하고 자기 집단에 세금이 적게 부과되는 정책을 선택했다. 가난한 보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재벌 중심 경제발전을 찬성했다. 이들에게는 국가 발전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희생한 것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재벌의 유착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는 일이다. 노동자의 희생을 애국·애족으로 포장하는 가족주의가 통하던 시대였다. 나라를 이끄는 ‘국부’ 박정희도 그래서 탄생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후광을 업고 나라를 위해 한 몸을 희생하는 정치인으로 포장되었다. 가난한 보수 세대는 현재 내가 속한 계층의 이익보다 나라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이런 믿음 때문에 그들의 현재 상황과 동떨어진 사회·경제 집단의 이익을 지지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후진성이다.

광장에 나타난 두 집단의 대립은 결과적으로 하위 20% 계층의 경제적·정치적 소외로 나타났다. 하위 20% 집단은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그동안 배제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을 국회에 진입시킨 경험이 없다. 그들을 대변한다는 엘리트들은 많지만, 엘리트들은 태생적으로 그들과 다르며 결국 그들을 배신한다.

누가 하위계층의 삶을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옹호할 것인가? 엘리트 진보의 배신과 가난한 보수의 뒤처진 시대 인식이 우리 사회와 정치를 지배하는 한 하위계층의 소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편집 :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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