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

기후변화는 오늘날 해당 분야 과학자 거의 모두와 유엔(UN) 등 국제기구가 인정하는 지구적 난제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는 중국이 지어 낸 사기”라고 말했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미국의 탈퇴를 강행했다.

기후변화 대응이 늦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환경운동가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한편으로, 여전히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열은 세계적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에 차질을 빚고 있다. 대기과학자인 마이클 만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와 <워싱턴포스트> 시사만평가 톰 톨스가 <누가 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가>를 펴낸 것은 이런 갑갑한 현실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다.

해당 분야 과학자 97% 이상이 인정하는 사실

▲ 마이클 만 등 저자들은 “기후변화는 해당 분야의 과학자 거의 대부분이 인정하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단언한다. ⓒ 출판사 미래인

지구온난화 추세를 입증한 ‘하키스틱 곡선’으로 유명한 마이클 만 교수는 “기후변화는 연구자 공동체가 인정하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단언하고 이를 촘촘하게 설명한다. 과학자들이 100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공식과 가설을 증명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실들을 상호 검토한 결과 기후변화의 추세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졌고, 공격과 방어를 거쳐 같은 결론이 재확인됐다. 지금까지 학술지에 발표된 해당분야의 논문을 모두 분석한 결과, 관련 연구자 중 97% 이상이 기후변화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극소수의 과학자들과 경제단체, 정치인 등 화석연료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은  그때그때 논리를 수정해 가며 줄기차게 기후변화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처음에 이들은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다가,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자 ‘이는 자연스런 현상이지 인간 활동의 결과가 아니다’고 우겼다. 인간 활동의 영향이라는 것이 명확해지자 이번에는 지구 기온이 올라가면 지역별로 수확 가능한 작물이 늘어나는 등 이익도 있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또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비용이 너무 비싸서 지구촌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탄소세 등으로 에너지가격이 오르면 가난한 사람들의 ‘에너지 빈곤’이 더 심해질 것이란 논리도 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태양빛을 반사하거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가두는 등의 지구공학, 혹은 기후공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떠벌리고 있다. 석유와 석탄,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저자들은 다양한 논거를 동원해 이런 주장의 오류를 공박하면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체제를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손 쓸 수 없는 수준으로 지구온도가 상승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살충제와 담배 옹호하다 기후변화 부정론 선두에

▲ <워싱턴포스트> 시사만평가 톰 톨스의 그림. 기후부정론의 배후에 막강한 자본이 있다. ⓒ 출판사 미래인

기후변화의 과학이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회의론, 부정론이 기세를 떨치는 것은 막강한 자본이 그 뒤에 있기 때문이다. 거대 석유재벌인 코크 형제가 대표적인 예다. 화석연료소비가 계속돼야 돈을 버는 이들은 석유사업으로 축적한 부를 활용해서  막대한 기부금을 풀어 정치인과 관료, 과학전문가, 연구소, 언론을 조종하고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미국국립과학원장, 록펠러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프레더릭 사이츠는 학계에서 은퇴한 후 ‘담배의 무해성’을 옹호해 담배회사 알 제이 레이놀즈로부터 50만 달러 이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이후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싱크탱크인 조지 마셜 연구소(GMI)의 수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유회사 엑손모빌 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 버지니아대 환경과학과 교수였던 물리학자 프레드 싱어도 학계를 은퇴한 후 과학·환경정책 프로젝트(SEPP)라는 싱크탱크를 설립해 오존층 파괴, 기후변화, 담배의 유해성 등을 부정하는 활동을 했다.  그는 그 대가로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와 농업생물공학기업 몬산토, 정유회사 텍사코 등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다. 자칭 ‘쓰레기과학 청소전문가’인 스티븐 제이 밀로이는 칼럼과 방송 등을 통해 ‘담배는 인체에 무해하다’, ‘살충제는 환경에 무해하다’,  ‘화석연료도 지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필립모리스와 신젠타(농약회사), 엑손모빌 등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저자들은 또 미국 언론들이 ‘중립’이라는 명목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반론을 비슷한 비중으로 보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진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기후변화는 명백한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기계적 균형 논리에 빠져 찬반양론을 비슷하게 싣다보니 독자들은 ‘아직 논쟁 중인 사안’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거꾸로 가고 있지만

▲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점점 줄면서 생태계 변화로 먹이를 찾지 못해 앙상하게 마른 북극곰. 기후변화는 수많은 동식물의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다. ⓒ Wikimedia commons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 부정론자인 라이언 징크와 스콧 프루잇, 릭 페리를 각각 내무장관, 환경청장, 에너지청장으로 기용해 환경운동진영을 경악하게 했다. 그는 전임 오바마 정부가 추진해온 청정전력계획, 석유·가스 시추 금지안, 배기가스 감축안 등도 줄줄이 뒤집었다. 그러나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미국 정부가 떼먹은 2018년분 파리협약분담금을 개인적으로 내겠다고 공언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이에 반하는 움직임이 만만치 않다. 캘리포니아 등 주 단위에서 독자적인 기후변화 대응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지도자들과 시진핑 중국 주석 등은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으면서 서식지와 먹이를 잃고 헤매는 펭귄과 북극곰, 해수면 상승으로 주거지를 잃고 이민 길에 오르는 섬나라 주민들, 기상이변으로 가뭄과 홍수가 심해지면서 식량난에 시달리는 내륙 주민 등 기후변화의 재앙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저자들은 정부·풀뿌리단체·국제기구·개인 등 다양한 차원의 행동을 촉구했다. 핵심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재생에너지투자를 가속화하고 자동차연비제고 등 에너지절감 대책을 추진하는 것, 탄소가격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것, 그리고 기후변화대응 의지가 투철한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저자들은 역설한다. 기후변화의 과학은 명백하다. 문제는 대안을 실현할 정치다.


편집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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