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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셋집'과 래퍼들의 '자택'
[상상사전] '세'
2018년 03월 08일 (목) 21:08:26 반수현 PD suhyunban53@gmail.com
   
▲ 반수현 PD

앞선 현자가 생각으로 지은 집에 내가 들어가 사는 것이 철학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내는 월세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월세를 냈다. 선행하는 현인에게 꽤 오랜 기간 월세를 치르고 나서야 그들은 월셋집이 결국 남의 집이고 빌려야만 하는 삶은 피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세에 시달린 끝에 그들은 기존 집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자기 집을 지었다.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힙합 음악에 ‘플로우’라는 말이 있다. 자신만의 랩 스타일을 총칭하는 것이다. ‘흐름을 탄다’는 이 말은 단순히 박자를 어떻게 타는가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박자를 어떻게 타는가에 깃들어있는 자신다움으로 음악의 승부를 보는 것이다. 늘어지게 박자를 타는 해쉬스완은 한낮의 졸음 같이 여유로운 사람이고, 변칙적인 엇박을 구사하는 이센스는 형식을 정해두지 않은 것이 나만의 형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다.

물론 랩을 처음 익힐 때는 카피를 한다. 기존 노래와 남이 하던 ‘플로우’를 그대로 따라 해본다. 숨 쉬는 부분, 특유의 발음법, 음의 길이, 강세 같은 것들을 모두. 이것은 글쓰기에서 말하는 필사와 같다. 모두 남이 지은 집에 세 들어 사는 삶이다. 힙합이라는 범주 안에서 통용되는 기본 문법을 익히는 일이 끝나면 이제 할 일은 그 문법을 창조적으로 파괴할만한 뾰족한 수가 무엇일지 고민해보는 것이다. 기술점수를 넘어 예술점수를 겨냥하는 단계다.

   
▲ <쇼미더머니>는 국내 최초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 쇼미더머니 홈페이지

예술점수는 예술가가 끊임없는 자기인식과 자기정립을 거친 뒤 남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일과 관련된다. 예술이란 자기가 어떤 인간형이며 세상에 그 인간형은 둘도 없다는 걸 평생 입증해내는 일일 뿐이다. 이것이 예술가의 숙제다. 때때로 변신도 보여줘야 한다. 이전의 자신조차 스스로 파괴하는 모습이 요구된다. 자신의 옛 집까지도 허무는 것이다.

랩 경연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6’에서 지난해 단연 화제가 된 인물은 우원재일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매력의 사람이란 걸 멋지게 증명해냈다. 그는 우기와 건기를 수시로 오가는 변화무쌍한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 통찰을 감정선의 완벽한 기승전결에 투영해 극적으로 그려냈다. 머릿속 요동치는 생각들을 진자운동에 빗댄 노래 ‘진자’가 그러하다. 희망과 중압감 열망과 절망을 교대로 경험하며 마침내 파멸하게 되는 인간의 심리상태를, 어떤 래퍼가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작 스물둘인 그는 이미 자기가 살 집을 마련해놓았다. 그 또래 래퍼들이 이미 있어온 리듬을 답습하는 데만 머무를 때. 그러니까 대다수 애들이 남의 집에 월세를 내면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갈 때 이미.

다 똑같은 ‘양아치’들이 저희들만의 리그에서 잘들 논다, 어른들이 보기에 어쩌면 그럴 것이다. 되도 않는 저속한 소리나 지껄이는 것 같아도 그런 짓은 제가 ‘양아치’라는 인식이 바로 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절대로 그런 작업을 해낼 수 없다.

“가끔은 별 이유 없이 한쪽 발을 절어, 태생이 병신이니까 뭐 부담 없이 걸어.” 차붐의 노래 <쌈마이>는 래퍼들의 바로 이런 정신을 잘 보여준다. 진짜로 잘나가는 ‘양아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런 집, 이런 플로우를 갖고 있는 나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진짜배기이고 원조임을 주장한다. 랩 가사에 ‘real recognize real’이란 말이 유독 많고 래퍼들이 copycat을 지독하게 까 내리는 이유, 저희들 딴엔 정말로 진지한 진짜 논쟁이 불붙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아무리 저속해 보여도 래퍼들은 셋방살이를 거부하고 끝내 남의 집을 허물어버리는 종자들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장르가 무엇이 되든, 세 들어 살지 않는다. 그들은 자택에서 산다.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려면 월세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미나 기자

[반수현 PD]
단비뉴스 미디어콘텐츠부 반수현입니다.
"나만의 찌질함으로 세상을 움직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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