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것은) 국민감정으로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속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들 많이 하거든요.”

민간인 최초의 공정거래위원장이자 ‘원조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린 강철규(72)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8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 부패추방과 재벌개혁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강 전 위원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2심 재판부가 수십억 원의 뇌물제공을 인정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데 대해 ‘유전무죄’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간의 반복적인 정경유착을 근절할 대안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을 통한 권력 감시를 제시했다.

정경유착 고리 끊으려면 공수처 설치해야

김대중 정부에서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과거 부패방지법이 더 강력하게 마련됐더라면 지금과 같은 국정농단사태나 고위공직자들의 부패가 상당이 줄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강 전 위원장은 “결국 권력의 독점과 시장의 독점이 다 문제인데, 권력의 독점은 권력 안에 견제와 균형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며 “공수처가 설치된다면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권력에 대한 견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부패방지기구인 ‘탐오조사국’과 홍콩의 ‘염정공서’ 등의 성공사례를 봤을 때 우리나라도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부패가 줄어들고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강철규 전 위원장은 권력을 견제, 감시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했다. ⓒ SBSCNBC

강 전 위원장은 정경유착의 다른 한 축인 재벌에 대해서는 김상조 위원장이 이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스라엘의 경험을 참고해서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스라엘도 10대 재벌이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회사 등 피라미드식 계열사를 거느리며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게 문제였는데, 시민 30만여 명이 시위를 벌이자 정치권 합의로 재벌개혁안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주회사는 손자회사까지만 거느릴 수 있고 그 이상의 계열사는 모두 매각하게 됐다. 또 대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이사진의 선임과 보수 결정에 ‘소액주주의 다수결 원칙’을 적용하게 됐다. 강 전 위원장은 “이스라엘을 참고했을 때 우리도 (지나치게 비대한 기업을 강제로 쪼갤 수 있는) 기업분할명령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이스라엘은 재벌개혁의 결과 시장 경쟁이 촉진돼 가계 통신비가 10분의 1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투기방지 위해 부동산 보유세 강화해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창립해 ‘토지공개념’ 도입에도 앞장섰던 강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투기대책에도 진정되지 않는 집값과 임대료를 잡기 위해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부동산 보유세를 (연간) 시가의 1% 이상 징수하지만 우리나라는 0.2~0.3% 수준”이라며 “한꺼번에 올려 부담을 주면 곤란하겠지만 단계적으로 조금씩 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유세를 올리면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에 팔 것이고, 그러면 가격도 안정될 것이라는 취지다.

▲ 강 전 위원장은 부동산 투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유세를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SBSCNBC

양극화 해소 못하면 ‘강한 나라’ 불가능 

지난 2016년 출간한 저서 <강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가 해소돼야 성장도 가능하다고 주장한 강 전 위원장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양극화는 강한 나라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나라의 발전은 계층 이동, 소득과 부의 증가, 견제와 균형시스템, 법치가 있어야 가능한데, 98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이 4가지 요소를 전부 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중소벤처기업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풀뿌리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며 재벌개혁과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통해 혁신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강 전 위원장은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으면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4대 조건이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SBSCNBC

느닷없는 연행과 고문, 감옥살이로 바뀐 인생

강 전 위원장은 이날 방송에서 대학 졸업 후 한국은행에서 일하다 느닷없이 고문을 당하고 인생의 전기를 맞은 사건을 회고했다. 독서토론을 함께 하던 후배들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5년 서울의대 간첩단 조작 사건에 연루되자 그는 근무 중 보안사에 연행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윗선을 대라’며 한 달 이상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빠지는 고초를 겪고 1년 간 수감생활을 한 뒤 출소한 그는 은사의 도움으로 산업연구원의 전신인 국제경제연구원에 들어갔다가 유학을 거쳐 학문과 시민운동의 길을 걷게 됐다.


경제방송 SBSCNBC는 2월 22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8년 시즌 방송을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고하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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