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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인적도 없는 폐사지에 꽂힌 이유
[청소년행복기자학교] 박수빈⋅유민균(세명고 2학년) 기자
2017년 12월 20일 (수) 21:35:21 박수빈 유민균 기자 fkfmvh@naver.com

사단법인 <단비뉴스>는 제천교육지원청·행복교육추진단·생태누리연구소와 함께 10월 28일부터 12월 23일까지 토요일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청소년행복기자학교를 운영해왔습니다. 이 학교는 미디어 제작 체험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미디어와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진학과 진로 모색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개설됐습니다. 이제 그 결과물들을 <단비뉴스>에 연재하니 청소년의 눈에 비친 학교와 한국사회를 기사나 영상으로 확인하세요.(편집자)

제천의 ‘숨은 보물’ 장락사지 답사기

고등학교에서 문화유산답사 동아리 활동을 해온 우리 둘이 충북 제천지역에서 첫 답사지로 잡은 곳은 장락사지와 칠층모전석탑이었다. 명성으로 따지면 제천에서 의림지를 덮을 데가 없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을 소개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장락사지는 제천 시민들조차 다녀온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로 숨겨진 곳이었다. 처음 본 순간 우리는 바로 탑의 자태에 매료돼 지난해 봄부터 올 겨울까지 십수 차례나 장락사를 찾았지만 다른 답사객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문헌을 찾아보다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의 안목도 우리와 같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남한강 편’에서 ‘제천 답사 1번지’로 장락사지와 칠층모전석탑을 꼽았다.

보물 459호인 이 모전석탑은 회흑색 점판암을 깎아 쌓은 높이 9.1m의 돌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다. 모전석탑은 한국 특유의 석탑 양식으로, 형태는 진흙으로 구운 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과 비슷하나 재료가 돌이다. 대표적인 게 신라 때 만들어진 국보 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다. 전탑과 비슷해 혼동하기도 하지만 돌을 벽돌처럼 깎아 쌓아 올린 모전석탑은 재료를 확인하면 쉽게 구분된다.

   
▲ 충북 제천 장락사지의 칠층모전석탑이 가을 하늘과 높이를 다투듯 꼿꼿하게 서있다. ⓒ 유민균

“이렇게 멋있는 탑이 알려지지 않았다니!”

올해는 장락사지 칠층모전석탑이 보물로 지정된 지 50주년 되는 해다. 하지만 유홍준 교수 말처럼 ‘이렇게 멋있는 탑’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시내 중심부와 외따로 떨어져 있는 데다, 안내판도 탑이 보일 무렵에야 나타난다. 실제로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길을 헤매는 경우가 잦다.

제천 제일고 앞에서 내토로를 따라 장락동 쪽으로 향하다 장락사지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고암천을 건너면 오른쪽으로 웅장한 칠층모전석탑이 보인다. 멀리서 봐도 넓은 들판에 홀로 서 있는 탑의 모습은 멋스럽고 신비롭다. 장락사지 안으로 들어가 탑을 마주하면 우선 엄청난 크기에 압도된다. 탑이 서 있는 지대가 높아 원래 높이인 9.1m보다 유난히 더 커 보인다.

   
▲ 장락사지 진입로에 장락사를 안내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모전석탑 옆에 있는 장락사는 장락사지와 관련이 없다. ⓒ 유민균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별다른 훼손 없이 훌륭하게 보존된 외형이다. 한마디로 이 탑은 ‘잘 생겼다.’ 대개 보물 이상으로 지정된 모전석탑은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국보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주춧돌 역할을 하는 기단부터 넓고 높으며 몸통에 해당하는 탑신부의 크기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현저히 줄어든다.

   
▲ 탑신부 1층에 켜켜이 쌓은 점판암 주위로 화강암 석주가 세워져 있어 장락사지 모전석탑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 유민균

이에 견주어 장락사지 칠층모전석탑은 기단이 단층으로 이루어져 낮은 편이다. 탑신부 1층 네 귀퉁이로는 화강암 석주가 위층을 단단히 지탱한다. 점판암과 화강암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돌이 이루는 조화는 장락사지 석탑만의 특징이다. 제천시와 문화재 전문가들은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역사·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장락사지 칠층모전석탑은 국보로 승격돼도 모자람이 없다고 평가한다.

신라 때부터 중창을 거듭해온 장락사의 운명

모전석탑 북쪽 너른 들판에는 장락사지가 있다. 장락사지는 제천 최초로 발견된 삼국 시대 절터다. 모전석탑 옆으로 지금도 장락사라는 절이 있지만 과거 절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유지다.

   
▲ 눈덮인 장락사지. 모전석탑 앞쪽 너른 들판으로 오뚝 솟아있는 돌들이 장락사 터의 흔적이다. ⓒ 유민균

장락사지는 그간 제천 지역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절터로 높이 평가받아왔다. 제천시는 장락사지의 역사적 가치를 확인하고자 2003년부터 충청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해 모전석탑 시굴조사와 세 차례 장락사지 발굴조사를 했다. 그 결과 34개 건물 터와 기와류, 토기류 등 삼국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됐다.

삼국 시대 이후 장락사는 다섯 차례 중창기(낡은 건물을 헐고 다시 지은 때)를 거쳤다. 통일신라 때 한 번, 고려·조선 때 두 번씩으로, 이는 같은 시대에 발굴된 유물을 시대별로 묶어 추정한 결과다. ‘장락사’라는 이름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 쓰인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유물 중 고려 후기 것으로 밝혀진 명문기와에 ‘장(長)’자가 적혀 있다. 아직까지 18세기 이후 유물은 발견된 게 드물어 학계에서는 18세기경 장락사가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한다.

   
   
▲ 장락사지 발굴 당시 모습(위쪽부터)과 출토된 유물. ⓒ 충청대학교 박물관

4차 발굴조사에서는 장락사의 비밀이 풀릴까?

장락사지는 제천을 넘어 충북지역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장락사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는 만큼 충북 일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적 위치 역시 이러한 평가에 신빙성을 더한다. 제천은 충청북도와 강원도 남서부, 경상북도를 잇는 과거 교통로의 요지였고,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해 서울을 지나 서해로 빠져나가는 남한강의 주요 길목이었다. 과거에는 교통과 운송이 주로 물길로 이뤄졌던 만큼, 장락사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중간 쉼터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장락사지 앞에 흐르는 고암천으로 과거에는 큰 물길이 흘렀다는 주장도 있다.

예로부터 높은 석탑은 강물이 흐르는 곳에 많이 세워졌다.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은 밤새도록 탑 주위를 도는 탑돌이 등을 하며 안녕을 기원했다. 탑이 신앙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장락사와 모전석탑 역시 제천지역에서 이러한 기능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제천시는 올해 장락사지 칠층모전석탑 보물 지정 50주년을 계기로 4차 발굴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전 조사에서 발굴하지 않았던 장락사지 남쪽 7천600㎡ 땅이 그 대상이다. 그간 발굴되지 않았던 새로운 유물이나 흔적이 나오면 제천지역은 물론 한국 불교 역사의 비밀이 조금 더 풀릴 전망이다.

* 취재·첨삭지도: 나혜인(단비뉴스 환경부장), 이봉수(단비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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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이민호 기자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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