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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안전의 역설
[상상사전] ‘부수적 피해’
2017년 08월 23일 (수) 21:32:55 곽호룡 기자 avoidapuddle@daum.net
   
▲ 곽호룡 기자

'부수적 피해'는 언론이 군사 행동을 보도하면서 쓰게 된 용어다. '예측 못한 피해' 또는 '예상은 되지만 목적을 위해 감수할 만한 피해'라는 뜻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 때 민간인 피해나 딕 체니 전 부통령의 “강력한 고문기술이 테러공격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부수적 피해’는 ‘부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많다. 핵전쟁의 ‘부수적 피해’는 무엇일까? 어쩌면 한 국가를 넘어 인류의 멸망일지도 모른다. 미국이나 북한의 강경파들이 자국의 안전을 위해 선제공격이나 예방전쟁을 들먹이는 것은 ‘부수적 피해’의 심각성을 너무 가볍게 여긴 탓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용어를 사회에 적용했다. 다리가 평균 무게를 버티지 못해 무너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오해다. 다리는 가장 약한 경간 하나가 버티지 못할 때 무너진다. 그는 “사회 현황을 점검할 때 소득, 생활수준, 건강 등에 관한 지수로 평균화한다”고 지적한다. ‘평균화’는 다수가 만족하면 그 사회는 행복하다는 공리주의와 통한다. 사회취약층은 ‘부수적 피해자’로 치부될 위험이 있다.

   
▲ 만족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 Gettyimages

군사용어 ‘부수적 피해’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가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 사회문제는 지나치게 자유를 강조할 때 발생한다.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지상주의는 경제적 불행을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 자유지상주의 사회는 가난과 실업에 내몰린 사람들을 돌보려 하지 않는다. 자유 앞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삶은 불안하다. 자유의 방임이 오히려 개인이 선택할 자유를 막으면서 ‘헬조선’이 만들어졌다.

기존 정치는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의 심리에 둔감했다. 극우파는 그 빈자리를 파고들어 '사회안정’ 이슈를 선점해 사회취약층의 지지를 이끌어 낸다. 미국에서는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받고 트럼프가 당선 됐고,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적'으로 규정한 극우정당들이 힘을 얻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전 정권의 스캔들에도 북한 이슈를 내세워 24% 표를 얻었다.

하지만 극우정당은 불평등의 본질을 왜곡한다. 사람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민자나 북한이 아니다. ‘주적’은 경제적 불평등이다. 공동체의 유대를 파괴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식의 자본주의는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이었다.

박태원은 1930년대 자본주의 초기의 모습을 다룬 소설 <천변풍경>에서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눈길을 끄는 등장인물은 일거리를 찾아 시골에서 상경한 십대 아이들이다. 그들은 당시 새롭게 들어선 오락시설인 당구장 등을 노닐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현금화한 선물의 가치에도 주목할 만하다. 여급 기미꼬는 동료 영이의 만류에도 몇 달치 월급을 털어 백화점에서 구입한 거울대를 혼수 선물로 준다. 돈은 상품으로 전달될 때 상대에 대한 미안함, 감사함 등 보이지 않는 감정이 상품을 통해 즉시 측정할 수 있는 가치로 변한다. ‘돈’은 잘못이 없다.

사회정의는 다수의 만족을 위해 소수는 희생해도 좋다는 공리주의나 불평등을 긍정하는 자유의 방임으로 실현될 수 없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세워주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수적 피해자’인 개인의 행복을 중시해야 한다. 이 문제는 정치이념과 관계없다. 영국에서 위험한 굴뚝 청소를 어린 아이에게 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굴뚝법은 보수 기독교의 요구로 제정됐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은 베버리지는 자유주의자였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미나 기자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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