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책] 노인 ①

강남 살며 탑골공원 매일 찾는 80대 박 노인(가명) 이야기

탑골공원?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오지. 내가 서울 강남에 사는데, 전철 타면 금방 와. 여기 나온 지 일 년 반쯤 됐나? 재작년에 처음 왔어. 3년 전에 일을 그만두고 일 년 동안 집에만 있었는데, 너무 심심해서 안 되겠는 거야. 그래서 처음엔 강남에 있는 복지관에 나갔지. 보통 아침 먹고 집 밖으로 나오는데, 오전엔 복지관에 사람이 없어요. 오후에만 있고. 탑골공원은 노인들이 이야기도 하고 바둑도 두는데, 복지관은 붓글씨나 쓰고 교류도 없었어. 글씨 쓰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종일 말도 안 하면 무슨 재미야. 그렇다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고. 나중엔 답답해서 안 나갔어.

▲ 탑골공원에 모여 여가 시간을 보내는 노인 세대. ⓒ 경향신문

탑골공원에 다니면서 친해진 사람들도 대여섯 있지. 걔들도 원래 거의 매일 오는데 오늘 비가 와서 안 오네. 전화하니까 추워서 안 온대. 난 비 온다고 집에 있으면 답답해. 내가 아들네랑 같이 살고 있는데, 어제부터 일요일까지 휴일이잖아. 집이 넓은 빌라여도 손자 둘, 아들 내외에 나까지 있으면 답답해. 손자들한테 용돈 2만원씩 쥐여주고 나는 밖으로 나와 버렸어. 애들은 삼성동 코엑스에 갔다 왔대. 내가 안 가는 거야. 저들끼리 놀아야지. 나이 든 사람이 끼면 놀지도 못하고 서로 답답해. 서운할 것도 없지. 저들은 저대로 놀고 나는 나대로 놀고.누가 나한테 종묘에 가면 노인들이 많다고 알려줬어. 오전에 나와서 있을 데가 없잖아. 그래서 한번 가봤지. 근데 막상 가보니까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대낮부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싸우고 별거 다 해. 점잖게 있으면 좋은데 너무 시끄러워. 한 4~5개월쯤 종묘로 다니다가 탑골공원으로 옮겼지. 여기 와 보니까 한결 낫더라.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어선지 조용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없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어. 종묘에 있는 노인들과는 생각이 달라. 여기 나온 사람들은 젊잖아. 물론 노인들이 좋은 얘기도 하고 나쁜 얘기도 하는데, 그걸 이해 못 하면 여길 나오지 말아야지.

▲ 속 이야기를 나눌 데 없는 노인 세대. ⓒ 경향신문

나는 혼자 뭐 먹고 싶으면 오이도에 가고 그래. 여기서 1시간 반이면 가. 심심하니까. 한 달에 두 번도 가. 혼자 가면 보통 산낙지 1만원어치 사서 먹는 거야. 그날 잡은 걸 파니까 싱싱해. 송도 가는 전철 다리 밑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에게 횟감 가져가면 끓여 주고 비벼 주고 오만 걸 다해줘. 요즘은 추우니까 소래포구에 자주 가. 차비도 많이 안 들어. 노인은 전철이 공짜잖아. 그래서 노인들이 온양온천 같은 데 많이 다녀. 온양온천은 순댓국 같은 게 정말 싸요. 뚝배기에 고기를 엄청 준단 말이야. 난 거기보다 바닷가를 좋아해. 겨울에도 바바리 하나 걸치고 가서 회 먹고 오고 그래.

여기 나오기 전엔 직장생활을 했어. 28년간 한 직장에서 일하다 3년 전에 그만뒀지. 나이에 비해 오래 일한 편이지. 힘든 일은 아니었거든. 그전엔 식당도 오래 했어. 그 지역에선 제일 컸지. 우여곡절이 많았어. 젊을 적엔 시골에 살다가 스물네 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한 사립대에서 일했어. 4년간 다니다가 병역 문제로 그만두고 군대 갔어. 1960년쯤 됐을 거야. 제대 후엔 학교로 다시 안 돌아가고 다른 일을 했지. 이것저것 이야기하면 내가 골치가 아파. 거기까지만 해. 너무 사생활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안 되니까.

말하자면 길어. 7~8년 전에 아들이 갑작스럽게 재정 문제로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아파트를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오겠다는 거야. 나는 반대했지. 한번 나갔으니까 들어오지 말고 사글세든 전세든 구해서 살라며 못 들어오게 했어. 아내는 아들이 말하니까 못 이기고 들어오라 했지. 아들이 며느리랑 손자 둘을 데리고 들어왔어.

아내가 원래 당뇨를 앓았는데 대학병원에 갔더니 암이래. 병원 생활을 일 년 하다가 재작년 이맘때 죽었어. 아는 주지스님이 있는 절의 납골당에 안치했지. 아무래도 혼자가 되니까 외롭기도 하지. 외로우면 어쩔 거야.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아내한테 의지했지. 딴 사람한테 의지하면 외로움이야 달래지겠지만 내 평이 안 좋아져. 그러니까 남한테 의지하지 않는 거지.

아들이 결혼을 늦게 해서 손자들이 어려. 큰 손자가 이제 중학생이야. 며느리는 애들 교육 때문에 집에 있지. 아침은 며느리가 차려주는 거 먹고 오전 9시면 집에서 나와. 탑골공원에 나와서 놀다가 점심은 나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오후 2시가 되면 꼭 집에 가. 그 시간쯤 되면 공원에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에 들어가거든. 집에서 저녁을 항상 6시에 해. 펑펑 놀면서 며느리보고 시아버지 밥 새로 해달라고 하기 미안하니까 남 먹을 때 같이 먹으려고 해. 손자들은 학원을 세 군데나 다니기 때문에 같이 안 먹을 때가 많아.

애들한테 손 안 벌리고 내가 가진 돈으로 생활해. 최근에 몸이 안 좋았는데 치료비랑 보험료도 다 내가 냈어. 일할 때는 귀찮으니까 건강검진을 잘 안 받았어. 계속 속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암 2기래. 의사가 늦게 왔다고 뭐라 하더라고. 벌써 많이 전이됐다고 해서 재작년 가을에 수술받았어. 작년에 완치됐는지 보려고 검사했더니 혹이 생겼대. 그래서 다시 수술하고 일주일간 입원했어. 입원해선 아들이랑 있었지. 그렇다고 못 걷거나 밥 못 먹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지. 수술비도 많이 나왔어. 종합검진이라 검사를 여러 번 하는데, 검사 때마다 20만원씩 내야 해. 청구서를 보니까 검사비만 73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더라고.

근데 나 때문에 시간 다 썼지? 학교는 어디 다녀? 우리 큰딸은 ○○대학교 나왔어. 자식이 넷 있는데, 전부 서울에 있는 명문대 나왔어. 아들이 대학 두 번 떨어지고 동생들이랑 같이 다녀서 한집에 대학생이 네 명이나 있었어. 애들 엄마라도 같이 벌었어야 했는데, 남의 집에서 일하라고 할 수도 없고. 나 혼자 버는 거랑 시골에 있는 거 팔아서 살았지.

서울도 애들 때문에 올라온 거야. 서울에 있는 대학에 근무할 때 보니까 서울과 시골은 하늘과 땅 차이야. 시골에서 논 몇 평 사주느니 애들 공부시키는 게 낫겠더라고. 학군 좋은 데로 간다고 강남에 자리 잡았어. 자식들한테 많이 투자했지. 처음엔 세 들어 살았는데 집주인이 일 년이 지날 때마다 세 올려달라고 해서 고생 많았지. 나중엔 집주인이 집을 헐고 다시 짓는다며 나가래. 돈 5000만원 융자받아서 강남에 집을 샀지. 일 년 안에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갚는 데 4~5년이 걸렸어. 그래도 현재는 자식들이 다 잘살아. 다들 대기업, 공기업에 다녀. 큰애는 외국에 살아서 자주는 못 봐. 2년에 한 번 한국에 오려나. 그래도 애들이 다 잘 커서 부모한테 손 벌리고 그러진 않아. 다들 잘사니까.

나 때문에 괜히 시간 뺏기는 거 아냐? 학생들이랑 생각지도 못했는데 인연이 되어버렸네. 근 2년 중에 제일 많이 말해보네. 원래 말을 잘 안 해. 이런 얘기는 처음 하는 거야. 돈 있다고 자랑한다고 할까 봐 친구들한테도 안 해. 학생들이 따라주니까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되네. 진짜 고마워. 나는 이렇게 살았다는 거야. 딴 사람은 또 다르잖아. 열 명한테 물으면 열 명의 삶이 달라. 괜히 나 때문에 오늘 시간 썼네. 이제 학생들도 돌아가. 나는 다시 탑골공원으로 가야지. 비 안 오잖아. 나 혼자 알아서 갈게. 다음에 올 때 좋은 거 또 사줄게. 진짜 고마워, 진짜.


단비뉴스팀은 (사)다른백년과 함께 ‘사랑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6편에 걸쳐 우리 주변의 삶을 들여다본다. 장시간 노동자, 청년 실업자, 경쟁에 시달리는 직장인, 노인, 청소년들이 그들이다.

노인은 말동무를 찾아 매일같이 탑골공원에 간다. 취업 못한 청년은 안전한 직장을 가질 때까지 스스로 고립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은 연인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사치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기사는 총 7부로 1부(프롤로그)를 제외한 각 부는 사람책과 기획기사로 구성된다. [사람책]에선 한 사람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전한다면 [기획기사]는 현실을 진단하고 원인과 대안을 보여준다.

당신은 사랑하고 계십니까. (편집자) 

이 기사는 (사)다른백년(http://thetomorrow.kr)과 경향신문(www.khan.co.kr)에도 실립니다. 

 편집 : 김소영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