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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도 보통 이웃”
[씨네토크] 게이의 삶 편견 없이 드러낸 <종로의 기적>
2011년 06월 14일 (화) 20:56:34 송지혜 기자 bangubung@gmail.com

“편견이 만들어 낸 ‘샤방샤방 꽃게이’나 ‘어머~’하는 여성스런 게이 말고 당신과 똑같이 일하고 연애하는 평범한 아저씨 게이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영화 <종로의 기적>을 만든 이혁상 감독의 말이다. 영화는 밤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골목에 모여드는 사람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스태프들에게 큰 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소심한 독립영화 감독 준문,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열혈 인권운동가 병권, 서울에 온 지 10년 만에 게이 커뮤니티를 만나 행복해하는 요리사 영수, 사랑을 통해 삶의 방향을 확인하는 회사원 욜이 그 주인공들이다.

 

   
▲ 영화 <종로의 기적> 포스터.

 

최근 TV 드라마에 동성애자들이 꽤 등장하면서 전보다는 거부감이 줄어든 편이지만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은 아직 사회적 편견, 혹은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동성애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여성적으로 희화 되거나, 잘생긴 전문직 남성이거나, 밤마다 클럽에 나가는 근육질 꽃미남이기 일쑤다. 그러나 게이 감독이 연출하고 네 명의 게이 배우가 등장하는 <종로의 기적>은 다르다. 그들이 주변의 평범한 이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역경과 고난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과장과 왜곡 없이 평범한 게이 이야기 담담하게 그려내 

 

특히 서른 살이 넘어 게이 커뮤니티를 만난 세 번째 주인공 영수는, 그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지금이 게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하며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웃는다. 이 장면은 성소수자가 아닌 관객들에게도 뿌듯함과 묘한 동질감을 준다. 담담하고 진지하되, 명랑하고 낙천적인 이야기가 영화 속에 흐른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 준문은 여러 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영화감독이다. <종로의 기적>은 그가 첫 장편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했다. 감독이 동성애자라고 연락을 두절하는 스태프가 생기고, “감독님, 감독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야, 게이야, 게이야" 로 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관객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병권은 집을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로 함께 쓰는 열혈 인권운동가다. 삶 자체가 인권운동과 맞닿아 있는 그를 보면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영화는 네 주인공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화면 밖에 있는 이혁상 감독에게도 눈길을 준다. 이 감독은 연출자로서 주인공들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다 마침내 주인공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카메라 뒤에 숨기를 포기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그 역시 이 영화를 통해 ‘커밍아웃(게이 임을 드러내기)’한다.

  

<종로의 기적> 마지막 주인공, 욜의 에피소드는 좀 더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이 감독은 원래 욜에 대해 ‘대기업 직장인 게이’로서 회사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커밍아웃의 두려움을 보여주려고 했단다. 그러나 HIV(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를 앓고 있는 애인을 위해 애쓰는 욜을 보며 이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영화 <종로의 기적> 장면들.

 

게이의 자기 역사 쓰기,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

 

실제로 ‘HIV는 동성애자가 퍼뜨린 병’이라는 낙인 때문에 동성애자들 스스로도 이 이야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 종로에서마저 배척당하면, 동성애자는 어디로 가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감독은 “누군가가 얘기를 해야 한다면, 동성애자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욜의 에피소드 콘셉트를 수정했다”고 말했다. HIV를 앓고 있는 욜의 애인과 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서로에 대한 애정, 확신이라는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이 감독에게 종로라는 공간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들과 오늘 손목을 그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여기, 이곳에 친구들이 있다, 연인이 있고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장소’이다. 그는 ‘게이 감독의 게이 영화 만들기’가 ‘편견과 왜곡에 맞선 게이의 자기 역사 쓰기’라며 영화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은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종로의 기적>은 이 감독의 데뷔작이다. 성적소수자 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의 활동가였던 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커밍아웃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드는 기획에 참여하며 영화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대상 수상에 이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하는 ‘2010올해의 독립영화’로 뽑혔다. 특히 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합의에 의한 사적인 동성간 성적 접촉’을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슈가 떠오르면서 더욱 눈길을 모았다. 

 

국내 최초 게이 커밍아웃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종로의 기적>은 지난 2일 개막한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영화제에서 상영됐고 같은 날 씨지브이(CGV)와 상상마당 등 전국 20개 영화관에서 개봉됐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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