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서혜미 기자

▲ 서혜미 기자

2008년 5월 광장에서 밤을 새운 건 우연이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같이 가자고 한 친구가 집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댄 탓이었다. 친구 없이 혼자 의경들 사이를 비집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벽에 길바닥에 빈 상자를 깔고 웅크린 채 꾸벅꾸벅 졸았다. 아침이 되자 살수차는 우리에게 물을 뿌려댔다. 대학생 언니 3명은 ‘애기들’이 다치면 안 된다며 우리 앞에 섰지만 물대포에 속절없이 뒷걸음질만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목숨만 겨우 건진 패잔병 같았다. 정강이에 시퍼런 멍을 달고 구겨진 교복을 입은 내 몰골도 초라하긴 마찬가지였다.

8년이 흘렀다. 여전히 광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패배감을 느낀다. 2011년 반값등록금, 2014년 세월호 추모, 2015년 노동개악 반대 민중총궐기까지. 원하는 것을 100% 얻을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광장의 요구는 늘 핵심을 성취하지 못했다. 정부는 국가장학금 도입 뒤 반값등록금을 실현했다지만 모든 세대 가운데 20대의 대출 연체자 발생률이 가장 높다. 세월호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특조위는 정부와 여당의 조직적 방해로 조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성과연봉제는 끝내 공공기관에 확대 도입됐고, 검찰은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8년을 구형했다. 수백억대 기업범죄를 저지른 최태원·정운호 회장에게는 각각 4년과 3년을 구형했을 뿐이다.

▲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의사를 표현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정치권은 이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 flickr

각양각색인 광장의 목소리는 결국 두 문장으로 수렴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가 주권자다.” 대의민주주의 핵심은 반응성과 책임성이다. 시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엘리트는 주권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수천만 명을 대리하는 대표자가 져야 할 책임이다. 그러나 이론상 시민의 대리인인 ‘높으신 분’들은 시민의 목소리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듣는 시늉에 그쳤다. 10여 년간 우리의 삶은 더 나빠졌고 한국 사회에는 체념과 무기력, 허무함이 축적됐다. 고통받는 이를 보듬기는커녕 집요하게 괴롭힌 나라, 자격 없는 사람들이 온갖 이권을 챙기도록 예산과 정책을 집행한 나라, 죄를 지어도 권력이 있다면 처벌받지 않는 나라에서, ‘이게 나라냐’는 울분은 참다못해 터진 단말마다.

시민들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에 이르렀다. 초인적 인내심으로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국정농단 주범 처벌은 한국사회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경복궁 앞에서 덕수궁까지 세종대로를 꽉 메운 백만도 넘는 인파는 이렇게 경고한다. 정치권이 이 외침을 무시했을 때 벌어질 혼란상은 가늠하기 어렵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광장 민주주의가 의회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가 4선한 국민의 대표자라면 광장과 엘리트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고 반성하는 게 먼저다. 지난주 광화문 광장에서 가수 한영애는 “조율 한 번은 해냅시다”라고 노래를 마무리했다. 그가 말한 조율 앞에는 ‘광장이 이기는’, ‘우리가 이기는’이 생략돼있을 테다. 이제 더 이상 지고 싶지 않다. 한 번쯤은 광장의 요구가 제대로 수용되는 조율을 보고 싶다.


편집 :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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