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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기에게 책 꾸러미와 사랑을
[단비인터뷰] ‘북스타트’ 10년 강정아 제천기적의도서관장
2015년 12월 19일 (토) 21:33:33 이수진 기자 sujin.sue.lee@gmail.com

충북 제천시 고암동의 한적한 주택가. 옥수수, 조, 감자, 고구마 등이 자라는 넓은 텃밭 옆에 꽃과 그림으로 아기자기 장식된 벽돌 건물이 ‘제천기적의도서관’이란 간판을 걸고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상 1층, 지하 1층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강정아(47) 관장과 직원 6명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제천의 ‘북스타트’ 운동을 이끌고 있는 강 관장을 지난 6월 만난 데 이어 18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해 지난 10년간 ‘책 읽는 아이들’을 키워온 이야기를 들었다.

   
▲ 제천기적의도서관 외관. ⓒ 이수진

처음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강 관장은 노란 표지에 ‘북스타트 10년사’라고 적힌 450여 쪽짜리 책을 뿌듯한 표정으로 보여줬다. 제천북스타트 10주년을 맞아 사업 시행처와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하려 발간한 자료다. 제천북스타트를 거쳐 간 아기와 엄마 1,329쌍의 이야기를 담았다. 강 관장은 “10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 중 정말 중요한 것만 골라 담았는데도 이렇게 두껍다”고 말했다.

‘책과 함께 출발하는 인생’ 위해 부모 교육도

제천북스타트는 지난 2005년 시작됐다. 당시 제천기적의도서관 사서였던 강 관장이 김수연 대원대 육아교육과 교수(전 제천북스타트위원장), 최진봉 전 도서관장 등과 함께 이 운동의 실무를 맡았다. 원래 북스타트는 1992년 영국에서 도서관 사서 웬디 클링의 제안으로 출발했는데 한국에서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대표 도정일)'의 주도로 2003년 북스타트코리아가 출범했다. 사서로서 제천북스타트를 시작했던 강 관장은 지난 2012년 도서관장에 임명됐고 10년 넘게 이 운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북스타트는 말 그대로 책(Book)과 함께 인생을 시작(Start)하자는 운동이죠. 인생의 시작단계인 1세 아기 때부터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지역사회 문화운동 프로그램입니다.”

제천북스타트는 먼저 이 지역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첫 선물로 그림책 두 권, 손수건, 가방, 안내 책자로 꾸려진 북스타트 꾸러미를 나눠준다. 생후 6개월에서 만 12개월 미만 아기의 가족은 제천기적의도서관, 제천시보건소, 여성도서관, 신백아동복지관, 하소아동복지관 등에서 북스타트 꾸러미를 받을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12시에 나눠주고 있다. 그림책과 손수건은 제천시가, 가방과 안내 책자는 북스타트코리아가 구매비용을 지원한다. 충청북도도 이 프로그램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4,971명이 꾸러미를 받아갔다. 매년 제천에서 태어나는 아기의 절반 이상이 꾸러미를 받는다고 한다.

“시민들이 조금씩 내는 세금과 아이를 모르는 이들이 낸 후원금으로 마련된 꾸러미에 ‘당신의 아이를 모르는 참 많은 사람이 책과 함께 아이가 성장하길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북스타트는 책 선물에 그치지 않고 부모교육으로 이어진다.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읽어주고 양육해야 할지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사업 초기에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특강 형식으로 부모교육을 진행하다가 2006년 이후에는 2개월 과정의 정규 부모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유아교육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영아를 위한 그림책 선택, 부모·자녀 간의 상호작용, 영아의 감각을 자극하는 미술놀이 등 다양한 강의로 육아에 도움을 준다. 강 관장은 “북스타트를 한다고 해서 갓난아기에게 바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는 양육자를 먼저 변화시키는 게 중요한 취지”라고 말했다.

제천시민 ‘열망 띠 운동’이 어린이 전용 도서관 만들어

인구 13만 명의 작은 도시인 제천에서 북스타트와 같은 문화운동이 10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기 엄마들의 열의 덕분이라고 강 관장은 강조했다. 기적의도서관이 건립된 2003년 당시만 해도 제천은 문화적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엄마들의 갈증이 도서관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당시 제천 시민 3천여 명은 도서관 유치를 열망하는 메시지를 적은 천으로 의림지를 둘러싸는 ‘열망 띠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시민단체 책읽는사회만들기운동과 제천시의 지원, 시민들의 기금으로 어린이 전용 도서관인 제천기적의도서관이 탄생했다.

   
▲ 제천기적의도서관 열람실. ⓒ 이수진

도서관이 생기자 책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모였다. 강 관장은 “인적 인프라가 풍부하지 않다 보니 우리 안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 공동체가 끈끈해졌다”고 회고했다. 예를 들어 미술을 전공한 엄마는 그리기 등을 접목한 교육 방법을 공유했다. 또 전문적 기능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터득한 육아의 노하우를 서로서로 나누었다.

부모교육에 이어 ‘지역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워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을 지향하는 도서관과 공동 육아를 원하는 엄마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품앗이 육아 동아리가 생겼다. 엄마와 아이들이 기수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모여 자율적으로 정한 동화책을 함께 읽는다. 낭독은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한다. 아이들은 다양한 목소리와 여러 방식의 책 읽기를 경험하며 즐거워한다. 발달 단계가 같은 아이들이 모이다 보니 엄마들끼리 육아 정보도 자연스럽게 나눈다. 보통 생후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아이가 공동육아의 대상인데, 참가자 중에는 ‘황혼 육아’를 맡은 할머니들도 있다.

공동육아에 아빠들 참여도 늘어

최근에는 아빠들의 참여가 늘고 있었다. 강 관장은 “초창기랑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아빠들이 양육에 참여하기 시작한 점”이라며 “요즘은 부모교육이나 책 놀이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아빠들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천북스타트는 1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젊은 아빠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특별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은 3회에 걸쳐 매주 토요일에 진행됐다. 아빠들의 참여를 더 적극적으로 늘리기 위해서였다. 5~6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문종훈(먹다 먹힌 호랑이), 전민걸(바삭바삭 갈매기), 유진(똑같아요)씨 등 동화작가들을 강사로 초빙했다. 60쌍의 아빠와 아이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아빠가 무섭다며 안 하겠다는 아이, 못 견디고 중간에 가는 아빠들도 있었는데 3주가 지나니 아이와 아빠들이 무척 가까워진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올 연말에는 아빠 동아리도 만들 계획입니다.”

강 관장은 이런 공동육아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중요한 사회성, 정서적 안정, 자존감을 키울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이모·누나·친구가 되면서 사회성을 키우게 되고, 사람들과 어울려져 긍정적인 경험을 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며,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경쟁 없는 평등한 공간에서 함께 키우다 보니 내 아이와 노는 다른 아이들도 생각하면서 어른들 간의 공동체 의식도 더 끈끈해진다고 한다.

   
▲ 강정아 제천기적의도서관장. ⓒ 이수진

함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생각도 실천한다. 1기는 2기에게, 2기는 3기에게 공동육아 노하우를 전승하면서 도움을 주는 전통이 현재 69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에 아이를 함께 키웠던 1기는 지금 자원활동가로 일한다.

소외지역 아기에겐 찾아가는 서비스

북스타트는 더 많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덕산면, 수산면, 한수면, 송학면, 미당면, 봉양읍, 금성면, 청풍면 등 행정구역상 제천시에 속하지만 외곽지역에 있어 북스타트 꾸러미를 받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자 등이 직접 찾아가 그림책을 전달하고 읽어준다.

“책과 출발이란 단어를 조합한 북스타트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출발입니다. 모든 아이가 평등한 위치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환경적·경제적·지리적인 이유로 서로 다른 출발 선상에 놓이게 되죠. 그래서 찾아가는 북스타트를 통해 거리가 멀어 찾아올 수 없거나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도 책으로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합니다.”

영국 북스타트의 연구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책과 친해진 아기들은 성인이 돼서도 책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집중력이 높고 언어습득도 빨랐다고 한다. 북스타트 경험을 가진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성취도가 높았다.

강 관장은 제천 외곽지역인 수산면에 갔을 때 만난 세 형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당시 타고 갔던 소형승용차가 못 올라가고 멈춰 설 정도로 비탈진 산꼭대기 외길 끝에 하나밖에 없는 집이었는데, 갓난아기와 함께 올망졸망한 세 형제가 너무 행복하게 맞이해줬다.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먼 길을 찾아간 피로가 다 풀렸다고 한다.

가슴 아픈 기억도 있었다. 아주 외진 마을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름과 주소만 들고 찾아갔는데 동네 사람들도 누가 사는지 잘 모르는 집이었다. 시어머니가 이주민 출신 며느리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아 동네 주민들과 별 교류 없이 사는 집이었다. 강 관장은 “아이가 사랑과 행복 대신 엄마의 슬픔을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도서관 개관 때 어린이 사서는 지금 유아교육 전공 대학생

처음 북스타트로 공동양육했던 아이들은 이제 훌쩍 자랐다. 2006년 처음 공동육아동아리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됐고, 그중 2명이 현재 어린이 사서로 활동 중이다. 2003년 도서관 개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으로 어린이 사서를 했던 아이는 유아교육을 전공하는 대학교 3학년생이 됐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위해 어린이 사서나 책 읽어주는 언니 등의 활동을 한다. 강 관장은 “부모들이 나눔과 공동체 활동을 하는 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말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나눔을 실천하는 아이로 커간다”고 말했다.

강 관장은 대학교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 후 2003년 제천기적의도서관에서 꿈꿔왔던 사서가 됐다. 어린이와 함께한 사서의 삶이 곧 그의 인생이다. 엄마 품에 안겨 떨어질 줄 모르던 갓난아기가 걷기 시작하더니 자신을 ‘강땜’, ‘강쌤’, ‘강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성장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는 나날이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북스타트 서비스를 더욱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제천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이 지역에서 자리 잡고 다음 세대에 배운 것들을 전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약 9만 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는 제천기적의도서관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북스타트 프로그램 외에도 유아, 초등학생, 가족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있다.


편집 : 서혜미 기자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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