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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니 ‘고졸 명장’의 산실도 출렁
[고졸노동자] ④ 정권 따라 부침하는 마이스터고
2015년 12월 03일 (목) 17:42:10 문중현 박성희 전광준 기자 sunghee6546@hanmail.net

수십 개의 전선에도 각자의 길이 있었다. 박성준(18·가명)군의 손이 미로처럼 얽힌 전기선들을 헤집었다. 회로 단자를 빼고 끼우며 전류의 길을 뚫거나 끊었다.

서울로봇고등학교 학생들이 장비마다 붙어 앉아 회로와 씨름했다. 학교 건물 5층 시스템통합실에서 안전 시스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전사고 방지 장치인 자동 멈춤 회로를 직접 설계해보는 과정이었다. “교사가 일부러 고장내고 해당 부분을 찾으라고 하면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실에 남아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고 여수경 마이스터 기획부장은 전했다. 3학년 박성준 군은 멋쩍게 웃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갔다면 아마 공부 안 했을 거예요.” 그는 어릴 때부터 로봇 동아리에서 활동해왔다.

   
▲ 마이스터고등학교인 서울로봇고 학생들이 학교 시스템통합실에서 안전 시스템 실습 수업을 받고 있다. ⓒ 문중현

로봇 구경도 못하고 수업한 로봇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전문계 고교)였던 서울로봇고는 2013년 3월 마이스터고로 전환했다. 그해 입학한 박군은 6개월간 로봇을 구경도 못한 채 수업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마이스터고 지원 예산이 줄면서 실습 기자재를 제때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마이스터고 학생들은 입학금과 수업료, 기숙사비와 학교운영지원비를 면제받았다. 반면 서울로봇고는 2015학년도 전체 예산의 66.8%(13억여원)를 학부모가 감당했다. 학부모 1명당 연간 280만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해외 건설 분야로 특화해 올해 마이스터고로 전환할 예정이던 서울도시과학기술고는 필수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내년으로 일정을 연기했다.

마이스터고는 이명박 정부의 ‘취업 걱정 없는 고등학교’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젊은 명장을 기르는 전문적 실업교육 고등학교’를 표방하며 탄생했다. 학생·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은 낮추고 맞춤 기술 교육과 취업 지원으로 진로를 보장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2010년 21개로 시작한 마이스터고는 2015년 현재 총 41개교가 운영 중이다. 2013년 4월 기준 졸업 예정자 3341명 중 3017명(90.3%) 취업이란 통계 결과를 내기도 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젊은 명장의 산실’ 앞에 장벽이 솟았다. 마이스터고에 지원되는 예산이 줄면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마이스터고 예산은 한 해 300억원 규모였다. 박근혜 정부는 예산 규모는 그냥 두되 예산 배분 방식을 바꿨다. 이명박 정부 때 특별교부금(3년 동안 특정 목적에 한해 사용)이었던 마이스터고 예산이 정부 교체 뒤 일반교부금으로 바뀌었다. 시·도교육청이 마이스터고 예산을 필요에 따라 전용할 수 있게 됐다.

시·도교육청에 떠넘겨진 누리과정(3~5살 무상보육) 예산 등이 마이스터고를 흔들었다. ‘누리과정 국가 부담’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만 5살 누리과정(2012년 3월 도입)을 만 3~4살까지 확대(2013년 3월 시행)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던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부담시켰다. 최근 3년간 누리과정 예산을 책임지느라 전국 시·도교육청의 빚은 2012년 2조여원에서 2015년 10조여원으로 5배 급증했다. 마이스터고도 여파를 맞았다. 인천교육청의 마이스터고 예산은 2014년 12억5천만원에서 2015년 5억8천만원으로 감소했다. 인천교육청 관계자는 “예산을 누리과정에 우선 편성했기 때문에 마이스터고에 지원하는 돈도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예산이 부족해지자 대다수 마이스터고는 인력과 교육 프로그램을 축소했다. 학교들은 취업지원관(취업 상담·산학협력)과 산업체우수강사(현장 경험 바탕으로 실무 교육) 채용부터 포기했다. 인천전자마이스터고는 2013년까지만 해도 취업지원관 2명과 산업체우수강사 3명을 고용했으나, 2015년 현재 취업지원관을 1명으로 줄이고 산업체우수강사도 시간제로 1명만 고용하고 있다. 충남도교육청의 경우 도내 취업지원관 35명을 올해 들어 3명으로 대폭 줄였다. 도 단위의 취업지원센터에만 취업지원관을 두도록 한 충남도교육청 정책에 따라 공주마이스터고(2012년 마이스터고로 전환) 등의 일선 학교에선 취업지원관이 아예 사라졌다. 서울로봇고도 종일제였던 취업지원관 업무를 하루에 5시간만 일하는 시간제로 바꿨다.

박근혜 대선 공약 떠안으며 ‘연쇄 예산난’

‘선 취업 후 진학’ 제도는 이명박 정부 마이스터고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이었다. 마이스터고 졸업생이 기업에 취업하면 일정 기간 뒤 대학수학능력시험 없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재직자(산업체 근무 3년 이상) 특별전형을 활성화(거꾸로 졸업 뒤 3년간은 대학 진학 불가)한다는 계획이었다. 현실에선 대학과 지원자 간의 전공 불일치 등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고졸 취업자 후 진학 계속교육 실태 분석 및 내실화 방안’을 보면, 재직자특별전형은 2014년 87개교 모집 인원 5093명 중 등록 인원이 1348명(26.5%)에 그쳤다. 마이스터고의 지정 분야 대부분이 기계·자동차·설비·항공 등 공과 계열인 반면, 대학은 인문사회과학 계열(중앙대 지식경영학부·명지대 사회복지학과 등) 위주로 전형을 실시하는 탓이다.

취업에 성공해도 ‘젊은 명장’이 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많다. 지난 10월 학교에서 배운 자동 제어 기술 관련 회사에 입사가 결정됐을 때 최진철(서울로봇고 3학년·가명)군은 꿈을 이루는 것 같아 기뻤다. 그의 직장은 충남 천안에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하청업체였다. 방진복을 입고 디스플레이 필름이나 카메라 렌즈의 먼지 자국 등을 자동으로 검사하는 설비 일을 했다. 학교에서 배운 업무는 직급 높은 사람들이 맡았다. 새벽부터 출근해도 수당이 없었고 먼 도시까지 출장이 잦았다. 그는 한 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마이스터고 졸업생들도 불안정·저임금에 결박된 고졸 노동의 현실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마이스터고 정책은 ‘원조’인 독일과 달리 산업계와 노동계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했기 때문에 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육과정개발과 직무능력표준개발로 마이스터고 정책에 협력하는 기계·전자·철강 등 17개 산업별인적자원협의체(SC)는 정부 주도로 만들어졌고 소극적인 협력에 그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펼쳐지는 ‘잿빛 청춘’의 길이 있다. 그 길에 드리운 그늘은 짙고 넓고 길다. 졸업생 70%가 대학에 시간을 묻으며 잿빛으로의 진입을 유예할 때, ‘다수’에 끼지 못한 청춘들은 ‘초록의 꿈’을 접고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조기 유입된다. 대졸자의 취업난이 세대 갈등을 동반하며 사회적 조명을 받을 때도, 고졸 취업자·무직자들이 걷는 길은 시선 밖에서 외따롭고 황량하다. ‘잿빛 청춘’의 길을 연속 보도하고 있는 <한겨레21>과 <단비뉴스>는 외면받는 고졸 노동자들의 삶을 4차례에 걸쳐 살핀다.

편집 : 이명주 기자

 

[박성희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청년팀, 시사현안팀 박성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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