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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는 끝나지 않았다
[단비발언대] 구은모 기자
2015년 09월 10일 (목) 19:36:38 구은모 기자 gooeunmo@gmail.com
   
▲ 구은모 기자

지난 여름의 메르스 사태는 잊고 있던 결핵의 기억을 되살렸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생이 결핵 검사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당장 보건소로 가보라고 했다. 보건소에서 정밀검사 끝에 결핵이란 통보를 받았다. 확진자는 학교에 나 혼자뿐이었는데, ‘법정전염병’이란 말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결핵은 내게 공공의료의 명과 암을 모두 보여주었다. 공공의료 덕에 결핵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었지만, 전염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얼마나 허술한가도 알게 됐다. 결핵은 확진 후 일주일가량 치료제를 복용해야 전염성이 누그러진다. 그때까지는 환자를 격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보건소는 나와 가족들에게 어떤 종류의 격리조치도 권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당시 나 때문에 누군가 결핵에 걸렸다면 몹시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우리나라 병원은 95%가량이 민간소유다. 보건소를 포함해서 국공립병원 등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기관 수가 전체 병·의원의 5% 남짓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병상 수를 기준으로 하면 공공 비중이 10%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5%와 까마득한 격차가 있다. 공공병상의 비중이 이처럼 낮다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 방역 등에 대한 투자가 국가 전체적으로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실상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메르스 의심환자와 격리대상자가 속출하는 동안 정부의 방역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보건소 등에서는 격리대상자에게 이렇다 할 행동지침을 주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 메르스를 치료할 수 있는 지역거점병원이 가까이 없어 몇 시간이나 구급차를 타고 헤맸던 환자, 유명한 ‘큰 병원’에 갔지만 치료를 거절당한 환자 등 기막힌 사연들이 속출했다. 국내에서 ‘가장 돈 잘 버는 병원’의 하나로 꼽히는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를 치료하는 역할 대신 응급실을 통해 대규모 감염을 유발한 진원지로 더 입길에 올랐다. 최고의 시설을 자랑해 온 이 병원에 보건복지부 기준에 맞는 음압격리병상이 하나도 없었던 것도 논란이 됐다.

   
▲ 정부가 의료를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공공의 과제’로 바라보지 않고 영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의료산업 선진화’를 밀어붙이는 동안 우리 사회는 메르스 같은 감염병 위협 앞에 속수무책이 돼 가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 YTN 뉴스화면 갈무리

메르스라는 ‘쓰나미’가 닥치고 보니, ‘시장’에 주로 맡긴 보건의료체제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뚜렷이 드러났다. 지역의 국공립병원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 전국의 환자들은 유명의료진과 최신 시설을 갖춘 서울 등의 민간대형병원으로 몰렸다. 응급실만 거치면 상급종합병원에 바로 입원할 수 있는 제도는 삼성과 같은 대형병원 응급실의 과밀화 지수가 최대 175%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이런 응급실 쏠림 현상이 메르스 급속 확산의 토양이 된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의료진과 병원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 주민들은 아이를 낳거나 응급수술할 병원 찾기도 힘든 게 현실인데,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정부가 의료를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공공의 과제’로 바라보지 않고 영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의료산업 선진화’를 밀어붙이는 동안 우리 사회는 메르스 같은 감염병 위협 앞에 속수무책이 돼 가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지구생태가 변하고 교통과 교역의 발달 등으로 ‘위험의 세계화’가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메르스나 에볼라 이상의 신종전염병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행히 메르스 파동은 이제 진정됐지만, 이것으로 끝이라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지금처럼 정부와 의료계가 병원의 영리자회사를 허용하고, 원격의료를 추진하고, 의료관광과 의료수출 등 ‘돈벌이 산업화’에 골몰하면서 OECD 꼴찌 수준의 공공의료를 방치한다면 또다시 감염병이 닥쳤을 때 우리는 큰 재앙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형화 경쟁에 밀려 경영난을 겪는 지역 민간병원을 인수하는 방법을 포함해서 공공병상이 전체의 30% 정도는 되게 늘리고, 국공립병원과 보건소의 인력과 장비, 훈련 등 방역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 특히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문을 닫은 것처럼 기존 공공병원을 없애거나 수익성 위주 경영을 강요하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지역 공공병원은 지금보다 대폭 늘려 의료 소외를 해소해야 하며, 공공의료를 위한 ‘착한 적자’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약속한 대로 허용해야 한다. 메르스는 잠잠해졌지만, 이런 개혁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여전히 위험 속에 있다.


[구은모 기자]
단비뉴스 환경팀 구은모입니다.
희망이 외롭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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