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유물전’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철부지의 해외여행기>에서 폼페이 유적을 거니는 것이 ‘기묘하고 멋스러운 유희였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 중 화산재 속에 남아있는 폼페이의 모습을 보고 “오래전에 죽은 주민들을 상기시켜 주고, 우리 눈앞에서 산 사람들을 등장시킨다”고 감탄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부근의 항구도시였던 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다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멸망했는데, 마크 트웨인처럼 그 흔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한국인들을 찾아왔다.  

▲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전 매표소 입구.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의 최후순간이 그려져 있다. ⓒ 홍연

서울로 찾아 온 로마제국의 도시문화 유산  

지난 9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작된 기획특별전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는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과 폼페이·헤르클라네움·스타비아 문화유산관리국의 소장품 30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폼페이는 물론 헤르클라네움 등 인근 도시에서 발견된 유물도 포함돼 있다.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앞부분에서는 당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 대저택에서의 삶과 예술, 경제활동, 식생활, 신과 숭배의식, 의술과 장례문화 등을 차례로 보여준다. ‘폼페이 최후의 날’을 주제로 한 후반부에는 화산폭발로 희생된 사람과 동물들의 캐스트 모형이 전시돼 있다. 캐스트는 화산재 덩어리 속 빈 공간에 액체로 된 석고를 부어 유적을 복원한 것이다. 전시물들은 폼페이의 ‘향락’과 ‘파멸’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며 관람객들을 2천여년전 ‘그 순간’으로 데려간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폭 1028센터미터(cm), 높이 510cm에 달하는 벽화다. ‘황금팔찌의 집(House of the Golden Bracelet)’에 있었던 ‘정원이 그려진 프레스코(Fresco with garden scene)’라는 작자미상의 유물이다.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기둥, 초록빛 나무와 풀, 한가로이 앉아 있는 새, 물이 담긴 분수대 등이 그려져 있다. 당시 상류층은 정원을 꾸미는데 공을 들였고, 회반죽이 마르기 전 물에 녹인 안료로 그린 프레스코 벽화에 꽃, 나무, 새를 세밀하게 묘사해 집안을 장식했다고 한다. 폼페이의 대저택들은 방에 창을 거의 만들지 않은 대신 중정(안뜰)과 천창(天窓)으로 구성된 아트리움(artrium)을 통해 빛이 들어오게 했다. 방들은 아트리움을 둘러싸는 모양으로 배치됐다. 

▲ <정원이 그려진 프레스코(Fresco with garden scene)> 작자미상. ⓒ 폼페이전 공식홈페이지

아름다운 장신구들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한 팔찌에는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의 비늘까지 정교하게 표현됐다. 이 팔찌 안쪽에는 ‘노예에게 주인으로부터(DOMINUS ANCILLAE SU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여자 노예들도 장신구를 착용할 수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이 외에도 머리띠, 머리핀, 팔찌, 귀걸이, 목걸이 등이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을 뽐냈다. 과도한 장식보다는 재료의 특성을 살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높이 95cm의 ‘바커스 청동상’도 볼 만하다. 머리에는 포도잎으로 된 화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술의 신’답게 술잔을 들고 있다.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폼페이의 주요 소득원이자 수출품이었고, 바커스는 이 때문에 특별히 숭배 받는 신 중 하나였다고 한다. 바커스 외에도 비너스, 주피터 등 다양한 신들의 조각상과 그림이 전시돼 있다. 폼페이 사람들은 그리스 신뿐 아니라 동양의 신과 고대의 토착신도 섬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식생활과 의술, 장례문화를 볼 수 있는 유골항아리, 과일정물화, 수술도구, 저울, 동전 등 을 볼 수 있다. 폼페이가 매우 발달한 도시였고,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 술의 신 '바커스' 상. 작자미상. ⓒ 폼페이전 공식홈페이지

갑자기 닥친 ‘최후의 날’, 극한의 고통 

평화롭고 화려했던 도시의 일상을 돌아본 관람객들은 이제 ‘최후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기원후 79년8월24일의 모습이다.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epe Fiorelli)교수 등은 캐스트 제작기법으로 당시 희생자들이 죽어가던 순간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특히 목줄에 묶여 도망갈 수 없었던 경비견은 캐스트로 만들기도 힘들 만큼 심하게 뒤틀린 자세를 하고 있어 당시의 고통을 웅변했다.  

▲ 개 캐스트. 뒤틀린 몸이 당시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자미상. ⓒ 폼페이전 공식홈페이지

해안가 캐스트아케이드 12구역에서는 아동을 포함, 총 32명의 마지막 모습이 복원돼 있다. 이들은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다가 변을 당했는데, 한 남자는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고 여자는 화산재를 막기 위해 옷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리고 있다. 지난 23일 전시회를 돌아본 이지은(25・여·서울동부이촌동)씨는 “폼페이 사람과 동물들이 죽어간 순간을 복원한 캐스트들이 특히 인상 깊었다”며, “폼페이 문화 전반을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전시였다”고 평했다. 

당시 폼페이에는 3200미터(m) 길이의 성벽이 도시를 에워쌌고, 7개의 성문이 있었다. 전시장 끝부분에 위치한 대형화면에 3초간 손을 대면 각 성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이런 장치로 당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전시회는 내년 4월5일(매주 월요일과 1월1일 휴관)까지 계속된다. 관람료는 성인 1만3000원, 대학생·청소년은 1만1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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