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촌이슈] ‘이방인 땅 100년’ 역사 딛고 선 부산시민공원

“진작 시민 품으로 돌아왔어야죠. 미군의 도움은 많이 받았지만, 미군이 주둔하면서 지역이 억압받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담벼락에 둘러싸여 구경도 못했던 공간이 시민에게 개방되니 기쁩니다.”

곽희영(64・부산 연제구 거제동)씨는 올해 5월 부산시민공원이 개장된 뒤 처음 공원을 방문했다. 곽 씨는 공원 역사관 외벽을 따라 전시된 일제강점기 당시 경마장과 군속훈련소, 미군주둔기 하야리아 캠프 사진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도시에 공원 하나 없이 아파트만 높이 들어서는 게 아쉬웠는데, 탁 트인 녹지공원이 생겨 좋다”고 말했다. 

인디언의 ‘아름다운 초원’ 하야리아는 공원이 될 운명? 

부산시 진구 범전동 부산시민공원 터는 원래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인 캠프 하야리아가 있던 자리다. 지역민들의 강력한 부지 반환 요구에 힘입어 2006년 기지가 폐쇄되고, 근린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하야리아(Hialeah)’는 미국 플로리다 주의 도시 이름인데, 인디언말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이다. 남의 나라 도시 이름으로 불리던 땅이 어엿한 ‘부산시민공원’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야리아 캠프는 주한미군의 군수물자 보급기지 구실을 했다. 부산항이 병력과 물자 수송의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 부산시민공원은 하야리아 부대 막사를 철거하지 않고 내부를 개조해 카페, 어린이도서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 부산시민공원 누리집

공원 곳곳에는 미군 기지 흔적이 남아 있다. ‘되찾은 땅’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남겨둔 것이다. 벤치는 유류탱크를 4분의 1로 쪼개 만들었고, 카페와 어린이도서관은 군 막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만 개조해 운영한다. 부대 안에 있던 나무 전봇대는 태양광 조명을 설치해 가로등으로 재활용했다. 하사관 숙소는 문화예술촌으로 변신해 목공예∙판화 등의 공방과 전시실로 사용되고, 사령관 관사는 북카페가 됐다. 

특히 눈에 띄는 공간은 역사관이다. 역사관은 미군 장교들의 식사와 연회 또는 부대 공식 행사가 열리던 장교클럽 건물을 활용했다. 여기에 미군정기 부산의 모습, 일제시대 서면경마장과 기마부대훈련소로 이용됐던 모습 등이 사진으로 전시돼있다. 주변 마을의 빨래터와 노점상, 빅토리아양복점 등 당시 인근 주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역사 유물들도 이용객의 눈길을 잡아 끈다. 

부산시민에게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 시야를 가렸던 ‘밀실’은 이제 사방으로 통하는 ‘광장’이 됐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서면경마장과 기마부대훈련소로 사용됐던 기간을 합친 100년간 이방인의 공간으로 남아있던 이 곳이 모든 이의 쉼터가 되기까지 그 자리를 묵묵히, 때로는 치열하게 지켜왔던 것은 역시 시민이었다. 

큰 나무들은 남겨뒀더라면 좋았을 걸

곽 씨는 미군이 주둔해있을 때 마음 놓고 산책하기도 어려웠다고 기억한다. 밤에는 술 취한 미군들이 쏟아져 나와, 자녀들이 외출을 할 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했다. 세월이 흐른 만큼 풍경도 달라졌지만, 8년 전 부대가 폐쇄되기 직전까지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동네 분위기였다. 부대가 문을 닫고 담벼락을 헐면서 주변 도로도 확장되기 시작했다. 시민공원으로 변신한 뒤, 곽 씨는 언제든지 집 밖을 나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 부산 시민의 염원에 힘입어 지난 2006년 8월 10일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 캠프 하야리아가 폐쇄됐다. 폐쇄식에서 성조기가 내려지고 있다. ⓒ 부산시민공원 누리집

강정수(90・부산 연제구 연산동) 씨는 미군부대에 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미국 독립기념일이면 미군들은 불꽃놀이를 하며 축제의 밤을 보냈다. 주민들은 불꽃이 터질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강 씨는 시민공원이 역사를 복원하는 것을 넘어 외국인 관광객도 자주 찾는 공원이 돼야 한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경만(75・부산 북구 구포동) 씨는 미군부대 앞을 지날 때마다 봤던 크고 울창한 아름드리나무를 기억한다. 2010년 하야리아 부지를 임시 개방했을 때도 부대 곳곳에 심어진 향나무,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미루나무 숲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부대를 폐쇄하고 공원을 조성한다면서 묵은 나무들은 다 뽑아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공원에는 넓은 잔디밭이 눈에 띄고, 새 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정 씨는 “울창한 숲에 돗자리 깔고 도시락도 까먹을 수 있는 공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원을 찾은 시민들 중에도 나무가 적어 그늘이 없는 점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새로 심은 나무가 자리를 잡아 공원 구실을 하려면 5~6년은 걸려야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으로 공원이 된 미군반환기지 

기지 반환은 미국의 주한미군 재편작업의 일환이었지만, 우리 땅을 되찾겠다는 부산시민의 열망이 큰 몫을 했다. 폐쇄 11년 전인 1995년 ‘우리 땅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대책위원회’가 조직돼 무상양여운동, 시민공원조성운동 등을 펼쳤다. 대책위는 집집마다 방문해 하야리아 반환운동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며 서명을 받았다. 시민공원 조성에 찬성한 집에는 스티커를 나눠줬다. ‘우리 집은 시민공원 조성을 찬성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티커가 일대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99년 7월에는 2천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부산진중학교에 모여 하야리아부대까지 부지반환 행진을 했다. 시민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부대를 에워싸고 구호를 외쳤고, 시위는 촛불집회로 이어져 1천m 촛불 대열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런 시민활동의 영향으로 부산시의회와 부산진구의회가 부지반환 결의문을 채택했고, 그해 12월 미군장교 숙소인 유솜(USOM) 부지가 반환됐다. 

▲ 하야리아 부대를 시민공원화 하자는 '50만 서명운동'은 당초 목표를 뛰어 넘어 152만 명의 서명을 받으며 시민의 호응을 얻었다. ⓒ 부산시민공원 누리집

2004년에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8차회의를 통해 ‘하야리아 부지 조기 반환’이 발표되면서 반환운동이 분수령을 이뤘다. 시민대책위 활동은 하야리아 부지 시민공원화 추진운동본부로 개편됐다. 그 결과 부산시민공원은 주한미군 반환기지 중 최초의 공원 조성 사례로 남게 됐다. 

2010년 캠프 하야리아 반환운동을 펼치고 시민공원 조성 논의에 참여한 박인호 경제살리기시민연대 대표는 “당시 정부와 부지 값 줄다리기를 하는 등 양여받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힘들게 반환받은 만큼, 그 뜻이 시민들에게 온전히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부산시민공원이 시민이 참여한 미군기지 반환 사례로 기억되고, 부산 역사 보존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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